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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내 인생에 이의를 제기해 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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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는 근래 봤던 영화 중 가장 완벽한 반전으로 막을 내린다. 만약 그 결말을 이야기한다면 ‘종신형’ 감이리라. 그래서 그 반전에 관한 부분은 최대한 피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것은 아마 만만치 않은 과정일 것이다.

검사보(檢事補)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벤야민이 주인공이다. 그는 25년 전 일어났던 두 개의 일에서 벗어나고자 소설을 쓰기로 한다. 하나는 범인을 잡고도 끝내 처벌하지 못했던 살인 사건, 다른 하나는 자신의 상관이던 검사 이레네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다.

컷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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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있었다. 이레네는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벤야민이 자신을 피하자 “언제까지 피할 거냐?”고 묻는다. 벤야민은 퉁명스럽게 답한다. “그만합시다. 당신은 결혼하잖아요.” 그러자 이레네가 말한다. “이의 없어요? 내 인생에 이의를 제기해줘요. 내 약혼과 결혼 등에 대해서.”

아, ‘이의 제기’라는 용어가 이토록 도발적일 수 있다니…. 비단 사랑뿐이랴. 삶에 대해 가슴 설레는 이의를 제기 당해본 기억이 과연 언제던가. 몇 년이 지나도 다를 것 없을 매일매일이 반복되는 상황에 균열이 생긴다면 얼마나 속이 시원하게 트일까.

우린 대개 이의 제기를 당하는 걸 꺼려한다. 태클이 걸리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태클이 걸리는 건 기회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따져볼 수 있는 기회다. 그런 이의 제기 없이 가다 보면 전혀 원치 않던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 않은가.

“이의를 제기해달라”는 것은 자기중심을 지키면서도 ‘내가 틀리면 언제든 고치겠다’는 마음의 자세다. 이 얼마나 용기 있고 멋진가. 자신의 존재가 휘청거릴까 두려워하는 겁쟁이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부디 새해엔 이의 제기를 반기자. 그럴 때 조금 다른 하루가 열릴지 모른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