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는 근래 봤던 영화 중 가장 완벽한 반전으로 막을 내린다. 만약 그 결말을 이야기한다면 ‘종신형’ 감이리라. 그래서 그 반전에 관한 부분은 최대한 피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것은 아마 만만치 않은 과정일 것이다.
검사보(檢事補)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벤야민이 주인공이다. 그는 25년 전 일어났던 두 개의 일에서 벗어나고자 소설을 쓰기로 한다. 하나는 범인을 잡고도 끝내 처벌하지 못했던 살인 사건, 다른 하나는 자신의 상관이던 검사 이레네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다.
기회는 있었다. 이레네는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벤야민이 자신을 피하자 “언제까지 피할 거냐?”고 묻는다. 벤야민은 퉁명스럽게 답한다. “그만합시다. 당신은 결혼하잖아요.” 그러자 이레네가 말한다. “이의 없어요? 내 인생에 이의를 제기해줘요. 내 약혼과 결혼 등에 대해서.”
아, ‘이의 제기’라는 용어가 이토록 도발적일 수 있다니…. 비단 사랑뿐이랴. 삶에 대해 가슴 설레는 이의를 제기 당해본 기억이 과연 언제던가. 몇 년이 지나도 다를 것 없을 매일매일이 반복되는 상황에 균열이 생긴다면 얼마나 속이 시원하게 트일까.
우린 대개 이의 제기를 당하는 걸 꺼려한다. 태클이 걸리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태클이 걸리는 건 기회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따져볼 수 있는 기회다. 그런 이의 제기 없이 가다 보면 전혀 원치 않던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 않은가.
“이의를 제기해달라”는 것은 자기중심을 지키면서도 ‘내가 틀리면 언제든 고치겠다’는 마음의 자세다. 이 얼마나 용기 있고 멋진가. 자신의 존재가 휘청거릴까 두려워하는 겁쟁이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부디 새해엔 이의 제기를 반기자. 그럴 때 조금 다른 하루가 열릴지 모른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