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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8번 주사 맞는 네살 다온이…당뇨는 아이 울음도 앗아갔다 [1형 당뇨환자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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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형당뇨를 앓고 있는 정다온군이 15일 오전 인천 당하동의 한 어린이집 현관에서 어머니가 직접 놓는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다. 어머니는 점심 전, 낮잠 전 어린이집에 와 인슐린 주사를 아이에게 놓는다고 한다. 김경록 기자

1형당뇨를 앓고 있는 정다온군이 15일 오전 인천 당하동의 한 어린이집 현관에서 어머니가 직접 놓는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다. 어머니는 점심 전, 낮잠 전 어린이집에 와 인슐린 주사를 아이에게 놓는다고 한다. 김경록 기자

“다온아, 어린이집 가기 전 주사 맞자.”

지난 15일 오전 9시 30분 인천 서구의 한 빌라. 엄마 이린다(34)씨 말에 생후 6개월 동생과 장난치던 정다온(4)군은 능숙하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자세를 잡았다. 이씨는 다온이의 옷 목덜미를 내리고 인슐린 주사를 놨다. 다온이는 옷매무새를 고쳐입은 다음 외투를 챙겨입었다.

이씨가 연속혈당측정기를 통해 전송되는 다온이 혈당 상태를 시시각각 살펴보고 있다. 채혜선 기자

이씨가 연속혈당측정기를 통해 전송되는 다온이 혈당 상태를 시시각각 살펴보고 있다. 채혜선 기자

1형 당뇨(소아당뇨)가 있는 다온이는 1~2시간마다 하루 6~8번, 인슐린 주사를 놓아야 한다. 어린이집에 등원한 이후에도 점심 전과 낮잠 시간 전에 하루 2번씩 맞는다. 이씨가 어린이집으로 직접 가 주사를 놓는다.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이씨가 어린이집에 가서 “다온이 주사 맞으러 왔어요”라고 방문 사실을 알리자 다온이는 친구들과 춤을 추다 말고 현관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익숙하고 씩씩하게, 다온이는 자세를 잡는다. 이씨는 “다온이는 주사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너무 어릴 때부터 아파 주사를 맞지 않던 제 삶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충남 태안에서 1형 당뇨를 앓고 있는 자녀와 일가족이 사망한 비극이 발생하면서 환자와 가족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아 당뇨로 불리는 이 질환은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가 이뤄지지 않아 발생하는 병으로, 평생 완치되지 않는다. 혈당 체크와 인슐린 주사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치료비 부담은 물론 부모가 생업을 접고 24시간 자녀 간병에 매달려야 한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실제로 다온이 엄마의 하루도 온통 아이에게만 맞춰져 있다. 2022년 다온이가 1형 당뇨 진단을 받은 후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다온이 몸에 부착된 연속혈당측정기에서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에 전송되는 혈당수치를 온종일 살핀다. 새벽에도 1~2시간마다 일어나 혈당을 확인한다. 경제적 여건도 녹록지 않다. 외벌이가 된 아빠(32)는 치료비와 생활비를 위해 쓰리 잡을 뛴다. 평일 퇴근 후와 주말에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빠의 ‘30일 만근’으로 버는 한 달 생활비는 350만 원(월급 250만원+배달 아르바이트 100만 원). 다온이 치료비로 석 달에 최소 100만 원이 깨진다. 다행히 다온이도 엄마도 모두 씩씩하다.

“다온이 췌장은 변할 수 없으니 변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해야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어느 정도 스스로 관리할 나이가 돼도 부모들은 항상 노심초사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키우는 이지영(41)씨는 “혈당을 모니터하다가 혈당이 낮아지면 전화해서 간식을 먹으라고 이야기해줘야 한다”면서 “아직 아이다 보니까 놀다가 가끔, 그 지시를 놓칠 때가 있다. 단호하게 혼내면 ‘엄마, 내가 까먹어서 그랬어’라고 우는데 그럴 때마다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다온이가 혈당이 떨어지면 급하게 먹을 액상 포도당. 엄마는 어린이집에 이를 보낸다(왼쪽). 다 쓴 인슐린 주사는 금방 쌓여간다. 채혜선 기자

다온이가 혈당이 떨어지면 급하게 먹을 액상 포도당. 엄마는 어린이집에 이를 보낸다(왼쪽). 다 쓴 인슐린 주사는 금방 쌓여간다. 채혜선 기자

1형 당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다. 신가연(38)씨는 올해 중학교에 가는 아들을 키우고 있다. 아이는 5학년이던 2022년 12월에 진단을 받았다. 갑자기 저혈당이 오면 바로 학교에 가거나, 응급 이송이 필요해서 근거리 통학 지원 대상자 관할 교육청에 신청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질환도 아니고 당뇨인데 왜 근거리 배정을 해야 하느냐’며 학부모 심사위원들의 반대로 반려됐다고 한다. 신씨는 “해당 학교가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교라고 들었는데, 저희는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 혹시 모를 저혈당 쇼크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집과 가깝고 학교가 대로변에 있어 구급차 이송이 용이한 곳이라 배정받길 원했다”면서 “사람들이 1형(소아 당뇨)과 2형(일반 당뇨)의 차이를 잘 모를뿐더러 당뇨라고 하면 경증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속상해했다.

15일 오전 세종시 보람동 복합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린 (사)한국 1형당뇨병 환우회 회원들과 투병중인 소아·청소년 환우 2백 여명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어린이가 1형당뇨의 중증난치질환 지정과 연령구분 없는 의료비 지원을 촉구하는 동안 눈물 짓고 있다. 뉴스1

15일 오전 세종시 보람동 복합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린 (사)한국 1형당뇨병 환우회 회원들과 투병중인 소아·청소년 환우 2백 여명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어린이가 1형당뇨의 중증난치질환 지정과 연령구분 없는 의료비 지원을 촉구하는 동안 눈물 짓고 있다. 뉴스1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1형 당뇨병 환자는 2022년 기준 4만4555명이고, 이 가운데 19세 미만 환자는 3941명(8.8%)으로 집계됐다.

태안 일가족 사망을 계기로 보건복지부는 소아 환자의 인슐린 자동주입기(펌프) 등 당뇨 관리기기 구매 비용에 대한 건강보험 확대(본인 부담률 10%)를 2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환우회와 의료계는 추가 대책을 요구한다. 사단법인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는 지난 15일 “태안 일가족의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중증 난치질환(산정 특례) 인정 ▶췌장 장애 인정 ▶연령 구분 없이 의료비 본인 부담률 10% 이하로 조정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의료계에선 요양비로 분류된 펌프 등 관리기기를 요양급여로 전환하고, 병원에서 이를 교육하는 수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인슐린 펌프는 환자들이 인터넷이나 업체 등을 통해 직접 사고 영수증 등 증빙자료를 첨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해 환급을 받는 구조다. 김재현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대한당뇨병학회 췌도부전당뇨병 TFT팀장)는 “시범사업으로 수가를 운영 중이지만 대형병원 일부만 참여하게 돼 있어 한계가 있다”면서 “환자들이 서울까지 고생하며 올라와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당뇨병학회는 1형 당뇨병 환자 가운데 인슐린 펌프를 쓰는 인구를 0.4%로 파악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인슐린 펌프에 대한 지원 확대는 전문가 논의를 거쳐 정책적 의학적 요구를 따져 지난해에 결정한 것이다. 성인은 인슐린 주사 등을 통해 스스로 조절이 수월해서 우선순위가 낮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산정특례 요구에 대해서는 “산정특례는 뇌(30일)나 암(5년)처럼 질환별로 단기간에 의료비가 많이 발생하는 경우에 지정하므로 제도 취지와는 다소 맞지 않다고 본다. 소득에 따라 연간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는 본인부담상한제가 기본제도로 존재한다”고 했다. 다만 “환자와 의료계의 요구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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