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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올 때 통장잔고 -63센트…에미상 받을 줄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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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성난 사람들’(BEEF)은 앨리 웡(사진, 에이미 역)과 스티븐 연(아래 사진, 대니 역)사이에서 벌어진 난폭 운전 사건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이민 2세대의 삶을 풍자로 담아내면서도, 보편적인 현대인들의 분노를 다룬 이야기로 호평받았다. [사진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BEEF)은 앨리 웡(사진, 에이미 역)과 스티븐 연(아래 사진, 대니 역)사이에서 벌어진 난폭 운전 사건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이민 2세대의 삶을 풍자로 담아내면서도, 보편적인 현대인들의 분노를 다룬 이야기로 호평받았다. [사진 넷플릭스]

“처음 LA에 왔을 때 돈이 없어서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 63센트였다. 그 무엇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던 제가 이런 것(트로피)을 들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피콕 극장에서 열린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8관왕을 차지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원제 BEEF)의 이성진(43) 감독은 수상 소감을 밝히며 이렇게 털어놨다.

‘성난 사람들’(BEEF)은 앨리 웡(위 사진, 에이미 역)과 스티븐 연(사진, 대니 역)사이에서 벌어진 난폭 운전 사건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이민 2세대의 삶을 풍자로 담아내면서도, 보편적인 현대인들의 분노를 다룬 이야기로 호평받았다. [사진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BEEF)은 앨리 웡(위 사진, 에이미 역)과 스티븐 연(사진, 대니 역)사이에서 벌어진 난폭 운전 사건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이민 2세대의 삶을 풍자로 담아내면서도, 보편적인 현대인들의 분노를 다룬 이야기로 호평받았다. [사진 넷플릭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이 감독은 “세상을 살다 보면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없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며 자신이 이 작품에 천착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작품 초반 등장인물(대니)의 자살 충동은 사실 제가 겪었던 감정들을 녹여낸 것”이라며 “작품을 보고 자신의 어려운 경험을 털어놔 주신 분들을 통해 제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과거 ‘소니 리’(Sonny Lee)라는 미국식 이름을 쓰던 그는 봉준호·박찬욱 등 한국 이름으로 국제 무대에 선 감독들을 보고 영향을 받아 자신의 원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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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각본을 쓰고 연출·제작까지 맡은 ‘성난 사람들’은 이날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8개 상을 받았다.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41)이 남우주연상을, 중국·베트남계 배우 앨리 웡(42)이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아시아계 배우 두 명이 동시에 남녀주연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감독상의 이성진 감독은 “‘성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조건 없이 사랑해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감독상의 이성진 감독은 “‘성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조건 없이 사랑해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뉴욕타임스, NBC 등 현지언론은 “압도했다” “싹쓸이했다” 등의 표현을 쓰며, ‘성난 사람들’의 수상소식을 앞다퉈 보도했다. 드라마 부문의 작품상은 HBO 시리즈 ‘석세션’에, 코미디 부문은 FX의 ‘더 베어’에 돌아갔다.

스티븐 연은 ‘성난 사람들’을 통해 골든글로브, 크리틱스초이스상에 이어 에미상에서도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5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판단을 하는 건 쉽지만, 남에게 공감하는 건 어렵다”고 수상 소감을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촬영 중 힘들어하던 자신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용기를 준 동료와의 일화를 언급하며 “솔직히 대니로서 살아가기 힘든 날들도 있었고, 그를 멋대로 판단하고 조롱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어 “편견과 수치심은 아주 외로운 것이지만, 동정과 은혜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븐 연은 골든글로브, 크리틱스초이스상 시상식에 이어 에미상까지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AFP=연합뉴스]

스티븐 연은 골든글로브, 크리틱스초이스상 시상식에 이어 에미상까지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AFP=연합뉴스]

‘성난 사람들’의 원제 ‘비프(BEEF)’는 불평 또는 불평해대는 것을 뜻한다. 드라마는 운전 중 벌어진 사소한 시비가 복수, 해코지로 이어지며 일파만파 커지는 과정을 10부작에 담았다. 지난해 4월 공개 후 넷플릭스 시청 시간 10위 안에 5주 연속 이름을 올리는 등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불평불만 가득한 두 주인공은 한국계 미국인 대니(스티븐 연)와 베트남계 미국인 에이미(앨리 웡), 모두 이민자들이다. 집 수리 일을 하는 대니가 극 중 가족이나 친척들과 한국어로 대화하거나, 한인 교회가 이야기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성공한 여성 사업가 에이미는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삶을 살지만, 남편을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부담감,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부채감 등에 짓눌려 있는 인물이다. 드라마는 이들을 통해 이민자들의 애환을 풍자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늘 우울과 분노로 차 있는 현대인의 보편적인 모습을 동시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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