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늙어버린 제조업…60대 이상이 20대보다 많다

중앙일보

입력

#경기 광주에서 유리병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이모(66)씨가 최근 2년간 뽑은 직원 중 가장 어린 사람이 38세였다. 이씨의 공장에선 30명이 일하는데 절반은 외국인이고, 내국인은 대부분 50대가 넘는다. 이씨는 “60세 이상도 적지 않다. 젊은 사람을 뽑아 오래 일할 수 있게 교육하는 게 가장 좋지만 이제는 기대를 버린 지 오래”라며 “그나마 공장이 서울에서 멀지 않은 데다 업무강도도 약한 편이라 이 정도지, 다른 곳은 고령화가 더 심하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14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제조업 취업자 중 60세 이상은 59만9000명으로, 20대(54만5000명)를 넘어섰다. 제조업에서 고령층에 해당하는 60세 이상 취업자가 20대를 웃돈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제조업에서 고령층은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청년층 취업자는 감소하면서 결국 역전 현상까지 벌어졌다. 제조업 취업자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10%를 처음으로 넘어선 뒤 지난해는 13.4%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①인구 고령화

가파른 고령화의 영향으로 60세 이상 취업자가 전반적으로 늘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기준으로 5년 전인 2018년 1077만6000명이었던 60세 이상 인구는 지난해 1367만4000명으로 289만8000명(26.9%) 늘었다. 같은 기간 20대는 25만8000명이 감소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전체 취업자 수 증가세를 이끈 것도 고령층이다.

②제조업 기피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청년층의 선호도에서 제조업은 뒷순위로 밀려났다. 오랜 기간 20대가 가장 많이 취업한 업종이 제조업이었는데 지난해 처음으로 서비스업에 그 위치를 내줬다. 숙박·음식업 취업자 수가 제조업을 처음으로 추월하면서다. 20대 숙박·음식업 취업자 수는 지난해 57만4000명으로, 전년(53만7000명)보다 3만7000명 늘었다. 제조업 취업자보다 2만9000명 많다. 중소 제조업엔 빈 일자리가 많지만, 청년층은 별다른 기술이 필요없고 취업이 쉬운 음식점·카페 등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했다는 풀이가 나온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한국은행이 코로나19 이전(2019년 3분기) 대비 지난해 3분기 제조 현장직의 연령대별 구직 증가율을 조사한 결과 30대 이하는 –15%, 40대는 –5.2%였다. 60세 이상은 34.3%에 달했다.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고령층만 현장에 지원했다는 뜻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수도권 중소 제조업체는 청년층 구직자가 없는 수준”이라며 “구직자 대부분이 대졸자다 보니 중소 제조업은 외면받는다. 특성화고 졸업 후 중소기업에 들어가고 현장 마이스터(장인)로 성장하는 경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③제조업 둔화

1일 부산항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1일 부산항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하반기 들어 수출이 회복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전년부터 이어진 수출 부진은 제조업에 직격탄이 됐다. 광공업생산은 2022년 4분기(-6.4%)부터 지난해 3분기(-2%)까지 4개 분기 연속으로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업황이 둔화하다 보니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청년들이 취업하고 싶은 대기업은 국내보단 해외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국내 고용을 이전처럼 늘리기 어렵다는 뜻”이라며 “청년층이 서비스업에 몰리는데 음식점이나 배달 등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이 대부분이라 장기적 성장 측면에서 우려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