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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73개 누락" 변호사 경악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전말 [사건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검사, 위법하게 수사권 남용”

지난 4일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피고인 A씨가 재심 개시와 형집행정지를 받고 석방돼 순천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지난 4일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피고인 A씨가 재심 개시와 형집행정지를 받고 석방돼 순천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2009년 전남 순천에서 발생한 이른바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부녀가 재심 결정으로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부녀는 12년 넘게 징역을 살다가 형집행정지로 출소했다. 이에 15년전 막걸리 살인사건이 주목받고 있다.

광주고법은 지난 4일 살인·존속살해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A씨(74)와 딸 B씨(40)의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생각을 주입해 유도신문을 하는 등 위법하게 수사권을 남용했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허위 자백 강요 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순천교도소에서 나온 A씨는 “마음이 무겁다.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A씨의 처제는 “형부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했다.

충격적인 살인사건 내막이 근친상간·존속살해?

광주고등법원. [뉴스1]

광주고등법원. [뉴스1]

이 사건은 2009년 7월 6일 전남 순천시에서 희망근로사업에 참여한 주민 4명이 휴식 시간 중 막걸리를 마시고 쓰러지면서 시작됐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2명이 중태에 빠졌다. 이들이 마신 막걸리에서 치사율이 높은 청산가리 성분이 검출됐다. 사망자 중에는 A씨 아내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범인을 찾지 못했다. 사건은 광주지검 순천지청으로 넘어갔고, 검찰은 피해자 남편과 딸인 A씨 부녀를 긴급체포했다. 이어 사건 발생 50여일 뒤인 그해 8월 구속했다. 검찰은 A씨 부녀가 15년간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오다 이 사실을 아내이자 엄마에게 들키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사건 발생 나흘 전인 7월 2일 딸이 순천 시내 한 시장에서 막걸리를 사 왔다. 이후 사건 발생일인 6일 새벽 창고에 보관 중이던 청산가리(청산염)를 막걸리에 넣어 마당에 놓았다. 남편은 일 나가는 피해자에게 막걸리를 가져갈 것을 권유했고 피해자는 이를 들고 나가 일터에서 동료들과 나눠마셨다.

1심 무죄에 석방됐지만…1년 9개월만에 법정 구속

지난 4일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피고인 A씨(왼쪽)가 재심 개시와 형집행정지를 받고 석방돼 순천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지난 4일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피고인 A씨(왼쪽)가 재심 개시와 형집행정지를 받고 석방돼 순천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A씨 부녀는 구속 이후 7개월 만에 석방됐다. 2010년 2월 1심 재판부가 피고인들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부적절한 관계가 살인 동기가 됐다는 내용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자백을 번복했지만, 중요한 진술은 서로 일치한다며 A씨에게 무기징역, B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대법원 역시 2012년 3월 2심 선고대로 형을 확정했다. 이후 막걸리 공급 장부 사본이 위조된 것으로 보이는 점, 청산가리 입수 시기·경위와 감정 결과가 명확하지 않았던 점 등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재심 전문 변호사 “주변인 권유에 맡아”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해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해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번 사건 재심 청구 재판은 박준영 변호사가 맡았다. 박 변호사는 당초 이 사건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2018년쯤 『부러진 화살』의 저자 서형 작가가 ‘부녀가 억울해 보인다’며 사건을 맡아달라고 요청한 데다 3년 뒤 한 방송작가가 권유하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2021년 순천지청을 찾은 박 변호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수사 기록을 살펴보니 폐쇄회로TV(CCTV) 영상과 당시 주변인 진술 등 법정에서 충분히 다툴 수 있을 증거 자료가 재판에 제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당시 검사가 73개에 달하는 증거를 의도적으로 제출하지 않고 자백을 강요해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제출하지 않은 증거가 A씨 부녀의 무죄를 입증할 유리한 증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결국 부녀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지 10년 만인 2022년 1월 박 변호사를 통해 정식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검사는 법정에서 "딸의 자백이 나오면서 원칙대로 수사했다.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다"며 청구 기각을 요청했다. 광주고검은 재심 결정에 항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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