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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공정성의 덫에 갇힌 대입 전형과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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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위원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위원

측정 오차는 실험물리학에서 처음에 다루는 내용이다. 이에 의하면 12m와 12.0m는 다르다. 12m는 11.5m 이상 12.5m 미만이고, 12.0m는 11.95m 이상 12.05m 미만이다. 12m는 11m나 13m와 다르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12.0m는 11.9m나 12.1m와 다르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측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오차의 범위를 표현하기 위해선 이런 구분을 해야 한다. 측정오차 혹은 정확도가 다르다는 점에서 12m와 12.0m는 다르다. 오차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믿을 수 없는 수치가 된다. 예를 들어 1㎜의 눈금자를 사용하면서 12.34㎜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1㎜의 눈금자가 측정할 수 없는 정확도를 근거 없이 추정한 것이다.

평가 편의 위한 객관식 수능 문제
학문적 능력 평가 취지와는 거리
공정성 위해 정당성을 희생한 꼴
교육의 목적 맞게 제도 개선해야

물리학에서만이 아니다. 관측과 측정에서 출발하는 경험과학(empirical science)의 수치는 모두 이런 측정 오차를 내포한다. 측정이 오차를 포함한다는 것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학능력과 같은 다차원적 평가는 1차원적인 길이 측정보다 훨씬 어렵다. 1차원적 측정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오차가 다차원적 평가에서 어떻게 사라질 수 있겠는가. 비행기와 기차와 자동차의 소음을 줄이면서 온 나라가 숨죽이며 8시간 동안 종일 시험을 본다고 하더라도 측정 오차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수능 성적으로 줄 세우는 일이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객관식이라는 것이다. 거기엔 주관식 평가도 없고 정성적인 평가도 없다. 이런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지식을 단편적으로 암기하고 문제 유형을 분석해서 오답을 피해 정답을 골라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 얄팍한 기술은 시험이 끝나고 나면 어디에도 쓸 수 없다. 정작 필요한 것은 학문을 논리적이고 심층적으로 이해하여 학문의 원리와 구조를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일이다. 학습량이 많은 학생에겐 사치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학문에 대한 열정이나 미래의 잠재력,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학문을 닦아나갈 능력을 평가하려는 수학능력시험의 본래 취지와는 멀어진다. 수학능력시험이 절차적으로 공정하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이 절차적 공정성이 정당성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교육 본연의 목적과 가치에서 상당 부분 유리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이 공정성의 덫에 갇힌 것이다.

수십만 명의 시험지를 짧은 시간에 채점하고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객관식 문제만을 출제해야 한다는 게 어쩔 수 없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체력 측정을 하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계량화를 하기 위해 쉽게 측정할 수 있는 키와 몸무게만 재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수능 점수가 대입 전형뿐 아니라 이후 대학 졸업 후에 어떤 사회경제적 보상을 받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때문에 중등교육은 수능에서 고득점을 얻어내는 파행적인 과정으로 전락하게 되고 개개인은 그 과정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제는 우리도 정당성을 희생하더라도 공정성만은 지켜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평가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위한 평가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미래 사회의 혁신을 선도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면에서 보면 대입 전형을 포함한 교육제도의 개혁은 더욱 절실하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는 이미 답이 알려진 문제를 틀리지 않고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건 AI가 아주 빠르게 실수하지 않고 할 수 있다. 물론 AI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인간이 언제나 피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영역으로 진입하는 배움의 단계에서는 알려진 문제를 풀어보는 훈련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다만, 이 단계에서 멈춰서는 안 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개념 체계를 이해한 바탕 위에서 이를 새로운 틀에 적용할 수도 있어야 하고, 이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열 수도 있어야 한다.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여는가?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를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미래만의 일이 아니다. 인류 역사의 진보는 늘 이런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다행인 것은 현 정부건 지난 정부건 미래 교육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아직도 만족스러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차적인 걸림돌은 공정성의 덫에서 탈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데 있다고 보인다. 그렇다고 본고사를 부활하자는 건 아니다. 논리적이면서 융합의 능력을 지닌 인재가 창의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기를 바란다면, 공정성의 덫에서 탈피하면서 대입 전형 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본연의 가치와 목적에 충실한 교육으로 미래 사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