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차이나 글로벌 아이

여전한 ‘겨울 왕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12년 전 일이다. 중국 하얼빈(哈爾濱)은 ‘겨울 왕국’ 그 자체였다. 영하 40도라는 기온을 난생 처음 마주했다. 한낮에도 영하 28도였다. 숨 쉴 때마다 한기가 폐를 얼리는 듯했다. 옷과 양말을 여러 겹으로 중무장하지 않으면 외출할 엄두도 안 났다. 웬만한 신발로는 차가운 돌바닥을 5분 이상 걷기도 힘들었다. 하얼빈 사람들은 죄다 운동복 차림이었다. 다이빙복 같은 두툼한 내복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건 뒤늦게 알았다.

추억 속 도시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최근 불고 있는 ‘하얼빈 붐’ 때문이다. 하얼빈은 매년 이맘때면 거대한 얼음 도시로 변한다. 러시아풍 건물이 들어찬 명물 거리 중양다제(中央大街)에는 눈과 얼음으로 만든 조각상이 입구부터 2㎞ 가까이 이어진다. 백미는 1999년부터 이어져 온 빙쉐다스제(冰雪大世界)다. 중국 인민망에 따르면 올해는 역대 최대인 81만㎡ 대지에 무려 1만3000㎥에 달하는 눈과 얼음을 쏟아부었다. 건물 16층 높이 주탑을 중심으로 얼음 건물과 조각 1000개가 전시됐다.

하얼빈빙쉐다스제(哈爾濱冰雪大世界) 전경. [하얼빈 빙쉐다스제 공식 웨이보 계정 캡처]

하얼빈빙쉐다스제(哈爾濱冰雪大世界) 전경. [하얼빈 빙쉐다스제 공식 웨이보 계정 캡처]

하얼빈시 문화관광국에 따르면 새해 연휴 사흘 동안 찾은 관광객만 304만 명이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관광 수입은 우리 돈으로 1조830억 원이다. 모두 역대 최고치다. 관영 매체들은 앞다퉈 ‘핫한’ 하얼빈을 내수 진작과 경기회복을 위한 모범 사례로 치켜세웠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국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보도했고 국영 방송사 CCTV는 “하얼빈 붐은 설 연휴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하얼빈 띄우기’는 뒷맛이 쓰다. 중국 경제에 드리운 그림자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부동산 위기와 높은 청년 실업률, 소비 부진 등이 한 번에 덮쳤다. 올해도 암울하다. 한국은행은 중국 경제성장률을 지난해보다 낮은 4% 중반으로 예측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신년사에서 심각한 경제난을 이례적으로 인정하면서 경기 회복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중국 경제를 향한 쓴소리는 온데간데 없다. 방향 전환을 촉구한 사설, 문제점을 비판한 글들은 얼마 안 가 삭제됐다. 경제 성장률 목표와 국정 운영 방향을 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는 지난해 12월 “광명론(光明論)을 노래하라”고 지시했다. 방첩기관인 국가안전부는 ‘경제 위기’를 입 밖에 내면 처벌이 가능하다고 으름장을 놨다.

‘겨울 왕국’도 개구리의 겨울잠을 깨우는 봄바람이 불면 녹아내리기 마련이다. 쇠붙이처럼 단단하던 얼음 바닥이 뚫리면 결국 새싹은 자란다. 중국 경제에는 언제쯤 봄날이 올 것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