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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김일성 코스프레하던 김정은, 평화통일 ‘유훈’은 내던졌다

중앙일보

입력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한국을 향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입’이 위태하다. 지난해 연말 진행한 노동당 전원회의(8기 9차)에서 한국을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닌 전쟁 중에 있는 교전국가”로 선을 그은 데 이어 10일엔 한국을 주적으로 규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8일과 9일 명칭을 밝히지 않은 군수공장을 찾아 “대한민국이라는 실체를 이제는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제해야 할 역사적 시기가 도래했다”며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고 밝혔다. “우리가 제일로 중시해야 할 것은 첫째도, 둘째도 자위적 국방력과 핵전쟁 억제력 강화”라고도 했다. 지진 피해를 본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위로 전문을 보내고, 미국과 대화의 여지를 남기는 모습과는 판이하다.

김정은 “한국 주적 핵전쟁 각오”
새해 벽두부터 포사격 등 도발
한때 선대 통일유훈 내세우다
이젠 한·미 탓하면서 자기부정

이런 분위기는 이미 지난 연말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한국과 ‘결별’을 선언하며 이미 감지됐다. 집권 10년 남짓 온탕과 냉탕을 오간 남북관계를 직접 이끌었던 그는 전원회의에서 모든 책임을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돌렸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말은 헌법이나 당 규약을 우선한다. 김 위원장 스스로가 이런 언급을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북한의 브레이크 없는 전쟁 분위기 조성 질주는 가속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북한은 지난 5일부터 서해 접경지역에서 사흘 연속으로 대규모 포사격 훈련을 하고, 김 위원장은 “전쟁준비 강화의 대변혁”을 지시하며 말과 행동으로 긴장의 고삐를 죄고 있다.

김일성 떠올리게 하는 ‘영토평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8월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지도하며 소총을 시험사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8월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지도하며 소총을 시험사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2020년부터 직전 연말에 전원회의를 열어 결정한 내용을 신년사로 대신했다. 지난해 12월 31일까지 회의를 하고 새해를 맞아 지난해 성과와 새해 정책을 내놓는 방식이었다. 이번에 눈에 띄는 표현은 “남반부 전 영토의 평정”이다. 핵무기를 동원해 한국의 영토를 평정, 무력으로 복속시키겠다는 북한의 이런 위협은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1994년 사망) 주석을 연상시킨다. 김 주석은 1948년 9월 9일 정부를 수립한 다음 날 열린 1차 최고인민회의(국회 격) 연설에서 정책의 대강인 정강(政綱)을 발표했는데 첫 번째로 꼽은 게 국토완정, 즉 국토의 완전정복이었다. 분단 상황에서 북한 지역을 ‘민주기지’로 공고히 한 후 미군을 철수시킨 뒤 한국을 흡수 통일하는 걸 당면 과제로 제시했다. 김 주석은 이 연설 1년9개월 뒤 옛소련의 적극적인 무기지원을 받아 전쟁을 일으켰다.

북한은 김일성의 국토완정을 영토평정으로 단어를 바꾸며 전쟁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그리고 핵전쟁을 운운하며 무력행사 의지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주한미군 철수와 최근 미군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를 대표적인 적대 정책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김 주석과 흡사한 전략이다. 단, 침묵을 지키다 상대의 취약점을 찾아 뒤통수를 치는 빨치산 전술을 사용해 온 북한이 공개적으로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 핵 개발에 따른 자신감인지, 명분 쌓기 차원인지는 불분명하다.

김일성 주석이 1948년 12월 기관단총을 시험 사격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일성 주석이 1948년 12월 기관단총을 시험 사격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김일성을 연상케 하는 ‘코스프레’를 활용했다. 호리호리했던 김 위원장의 체형이 고도비만으로 바뀐 모습이 대표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20대 후반에 집권한 그가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십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김정일 시대에 지친 주민들에게 상대적으로 불만이 덜했던 김일성 시대의 향수를 소환하려는 차원이다. 한 차례도 육성 신년사가 없었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사망)과 달리 집권 이듬해부터 주민들 앞에 나타나 한동안 신년사를 한 것도 그렇다. 또 현장을 찾아 러닝셔츠 차림을 하거나 땅바닥에 앉아 주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소탈한’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선택적 선대수령 유훈 받들기?

반면에 자신이 직접 나서 공공연히 전쟁을 언급하는 모습은 김일성·김정일 시대와는 확연한 차이다. 김일성은 전쟁에 실패한 뒤 국방에서의 자위라는 원칙을 내걸고 4대 군사노선(전군 현대화, 전민 무장화, 전군 간부화, 전국 요새화)을 독려하고, 청와대 기습·판문점 도끼 만행 등 도발을 이어갔다. 당시 북한 고위 인사들이 서울 불바다 등 전쟁을 언급하긴 했지만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감춘 채 남북 대화를 추진하고, 통일방안을 선제적으로 내놓았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생전 마지막 서명한 문건을 사망 전날인 1994년 7월 7일에 살펴본 남북 최고위급회담(정상회담)과 관련한 문건이라고 선전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면서 2000년과 2007년 각각 김대중·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 남북의 평화 통일과 화해·협력을 위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북한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유훈(遺訓)이다. 북한 『조선말대사전』은 유훈을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생전에 우리 일군들과 인민들에게 남기신 교시”로 정의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직후인 2012년 3월 판문점을 찾아 “우리 함께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필생의 염원을 기어이 실현하자”고 했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전방지역의 군사 충돌 가능성을 차단하겠다고 나선 것을 선대의 통일 유훈을 이행하려는 뜻으로 읽히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공공연히 전쟁을 언급하는 건 본인 스스로 서명한 남북 합의에 대한 부정이다. ‘선대 수령’의 유훈을 어기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수령의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령의 결정엔 오류가 없는 신성한 것이라는 게 전제다. 김 위원장이 5년도 되지 않아 본인의 약속을 뒤집고, 선대 수령의 유훈과 다른 길을 간다면 자신을 신처럼 ‘받드는’ 주민들은 그런 ‘최고 존엄’을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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