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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져요"가 19금?…엄마들 당황케 한 방학 '밈 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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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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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초등학교 4학년 담임 A교사는 최근 학급 장기자랑을 앞두고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렸다. “불건전한 내용의 콘텐트로는 공연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학급 학생 25명이 참여하는 장기자랑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 4~5명이 ‘홍박사 챌린지’(challenge·유행하는 영상을 따라하는 것)를 선보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챌린지는 ‘홍박사님을 아세요?’라는 노래에 맞춰 신체 중요 부위를 손으로 강조하고 하반신을 떠는 안무를 반복하는 것인데, 가사에 가슴 크기가 고민이라는 여성이 등장해 ‘19금’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동작이었다. A교사는 “뜻을 모르고 밈(meme·짧은 온라인 유행어)을 따라하는 학생들이 많다. 방학 동안 유해한 콘텐트에 더 많이 노출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방학이 되면 일선 교사와 학부모의 고민은 더 커진다.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길어지고 선정적인 의미를 담은 밈과 챌린지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방학만 되면 더 멀어지는 아이들 

최근 온라인에서 많이 소비되는 영상은 1분 정도의 쇼츠(Shorts·짧은 동영상)가 대세다. 더 자극적이고 기억에 남는 짧은 밈과 동작이 많다. 한 개그맨이 발표한 노래 ‘홍박사님을 아세요’, ‘할 말이 없네’ 챌린지가 대표적이다. 가사 속 “할 말이 없네”는 동물(말)의 성관계를 암시하는 표현이다. 한 맘카페 회원은 “초등학생 아이가 ‘할 말이 없네’에서 말이 ‘말하다(say)’가 아니라 성관계할 상대 말(horse)이라고 알려줘 당황했다. 자극적으로 쓴 가사를 들으면 안 된다고 일러줬다”고 걱정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인 '루피'가 '홍박사' 챌린지를 하는 영상. '좋아요'가 약 3만1000개를 기록하고 있다. '잔망루피' 유튜브 캡처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인 '루피'가 '홍박사' 챌린지를 하는 영상. '좋아요'가 약 3만1000개를 기록하고 있다. '잔망루피' 유튜브 캡처

학생들 사이에선 ‘밈’을 외설적으로 변형하는 게 유행이다. ‘띄어쓰기 챌린지’는 “너 가버렸잖아(→너가 버렸잖아)”라는 식으로 띄어쓰기를 바꾸면 미묘하게 달라지는 상황을 표정과 동작으로 보여준다. 한 소셜미디어에선 한 여중생이 “게임하는데 자꾸만 져요”라는 문장을 “~자꾸 만져요”로 변형하고 손으로는 관능적인 동작을 보이는 영상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초등생으로 추정되는 영상 속의 남학생은 “너무 어둡네, 꼭 지켜줄게”를 “~꼭지 켜줄게”로 변형하며 상의를 젖히기도 한다.

밈은 교실의 일상…“수업 진행 힘들 때도”

교실에서는 밈 따라하기가 ‘일상’이 됐다고 한다. 교사들은 밈 때문에 정상적인 의사소통이나 수업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경기 한 초등 교사는 “대화 중 무슨 말을 하든 ‘할 말이 없네’ ‘영차’ 등 아무 의미 없는 밈이 반사적으로 돌아온다”며 “밈 때문에 학급 분위기가 안 좋아지고, 교사도 지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영차’ 밈은 2015년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에서 부패 정치인 장필우(이경영 분)가 신체 부위를 이용해 술을 섞어 먹는 장면에서 유래했다.

지난 1월 배우 권혁수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영상에서 황제성, 곽범 등 코미디언 동료와 이경영을 패러디한 모습. 이들은 골반에 손을 올린 채 하체를 비틀면서 '좋았어! 영차!'라고 외쳤는데, 이는 밈(meme)이 되어 초등학생에게까지 유행으로 번졌다. '권혁수 감성' 유튜브 캡처

지난 1월 배우 권혁수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영상에서 황제성, 곽범 등 코미디언 동료와 이경영을 패러디한 모습. 이들은 골반에 손을 올린 채 하체를 비틀면서 '좋았어! 영차!'라고 외쳤는데, 이는 밈(meme)이 되어 초등학생에게까지 유행으로 번졌다. '권혁수 감성' 유튜브 캡처

호남 지역의 초등학교 4학년 담임 교사는 “국어 수업에서 ‘족발’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학생 1~2명이 ‘장충동 왕족발 보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결국 모든 학생이 합창해야 끝이 난다”고 말했다. 이 노래는 한 먹방 유튜버가 족발을 먹으며 유행시켰다.

제주 지역 초등학교의 5학년 교사는 “지난 여름방학에 하루 12시간씩 쇼츠를 봤다는 학생은 수업에서 1분도 집중을 못 했다. 길어야 1분짜리 영상에 익숙해져서 40분짜리 수업이나 책 읽는 게 힘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일종의 놀이문화, 막는 게 답 아니다”

광주광역시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이 함께 찍은 '띄어쓰기 챌린지' 영상. '좋아요'가 1.2만 개 달렸다. 인스타그램 캡처

광주광역시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이 함께 찍은 '띄어쓰기 챌린지' 영상. '좋아요'가 1.2만 개 달렸다. 인스타그램 캡처

밈, 챌린지 등의 유행을 놀이문화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교내 릴스 공모전에 학생과 함께 띄어쓰기 챌린지 영상을 찍은 한 중학교 교사는 “릴스나 쇼츠, 밈은 우리 학창시절의 롤링 페이퍼나 편지처럼 하나의 의사소통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교사들도 이를 학생과 친해지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초등학교 2학년 학부모 김모씨는 “아이에게 쇼츠를 보지 말라고 했더니 ‘내가 아는 지식의 70%가 쇼츠에서 온 것’이라고 맞받아치더라”며 “실제로 아이가 공유한 콘텐트를 보니 영어로 학교의 변천사를 설명하는 등 유익한 내용도 많았다”고 했다.

박유신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장(삼광초 교사)은 “학생들도 유해‧혐오 콘텐트가 잘못됐다는 인식은 하고 있다. 뜻이나 맥락을 몰라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교사와 부모가 아이의 놀이 문화를 인정하면서, 유해‧혐오 콘텐트를 가려내는 식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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