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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첨단' 일본 '감성' 중국은 '물량공세'…한중일 테크전쟁 [CES 202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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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9일(현지시간) 세계 최대의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소비자가전쇼(CES) 2024에 관람객이 몰렸다. 로이터=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세계 최대의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소비자가전쇼(CES) 2024에 관람객이 몰렸다.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CES에는 동아시아 테크 기업들이 맞은 지정학적 변수와 기술 경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중·일·대만 모두 인공지능(AI)에 집중하지만, 미·중 기술 패권 전쟁과 반도체 정세 등으로 세운 전략은 제각각이다. 한국은 투명 TV 등 신기술로 첨단을 지향하고, 일본은 기존 강점에 감성·기술을 더했으며, 중국은 한·일을 모방하는 한편 미국 규제엔 우회 전략을 펼쳤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韓, 첨단은 나의 것

8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각각 프레스콘퍼런스를 열었다. 삼성전자의 인공지능(AI) 컴패니언 '볼리'(왼쪽)와 '스마트홈 AI 에이전트'. 라스베이거스=고석현 기자

8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각각 프레스콘퍼런스를 열었다. 삼성전자의 인공지능(AI) 컴패니언 '볼리'(왼쪽)와 '스마트홈 AI 에이전트'. 라스베이거스=고석현 기자

한국은 CES의 양과 질을 책임지는 주요 주자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전년 대비 42% 늘어난 781개 기업이 참가했다.

삼성전자·LG전자는 첨단 AI 제품을 선보이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양사가 공개한 AI 기반 ‘집사 로봇’(삼성전자 볼리, LG전자 스마트홈 AI 에이전트)들은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돼, 알아서 가전을 제어하고 집안 일을 돕는다. TV에선 AI 성능 강화가 눈에 띄었다. 삼성전자는 ‘NQ8 AI 3세대 프로세서’를, LG전자는 ‘알파11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AI 화질·음질 보정 기능을 각각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카메라로 식자재를 자동 관리하는 ‘AI 비전 인사이드’ 기능이 있는 냉장고, 옷감 재질·오염도를 감지해 세탁부터 건조까지 알아서 해주는 ‘AI 맞춤 코스’ 기능이 있는 세탁기도 선보였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현존 최고 성능 제품인 HBM3E를 이번 CES에 전시했다.

日, 강점 살리고, 감성 더하고

올해 CES 참가한 일본 기업은 73개로 중국(1115개)이나 한국(781개)과는 격차가 크다. 일본이 가전의 대명사인 시절도 지났다. 그러나 일본은 기존 산업의 저력을 십분 활용하고, 특유의 감성·디자인을 더했다.

CES 2024에서 소니와 혼다의 합작회사 소니혼다 모빌리티는 전기차 콘셉트카 '아펠라'를 선보였다. 사진 EPA=연합뉴스

CES 2024에서 소니와 혼다의 합작회사 소니혼다 모빌리티는 전기차 콘셉트카 '아펠라'를 선보였다. 사진 EPA=연합뉴스

소니 전시관 입구에는 차량용 안전 센서 시스템이 전시됐다. 카메라 센서가 차량 외부의 사방은 물론, 내부 탑승자의 뼈대를 감지해 정상 조종이 이뤄지고 있는지, 카시트 안의 어린이는 안전한지 등을 실시간 탐지한다. 전 세계 카메라 이미지센서 시장 1위(59%)인 기술력을 십분 활용한 것. 다량의 영화·게임 콘텐트를 보유한 강점도 살렸다. 햅틱과 모션캡처 기능을 활용한 몰입형 놀이동산 체험에는 소니픽처스가 제작한 영화 고스트바스터즈 캐릭터가 등장하고, 소니·혼다의 합작 전기차 ‘아펠라’ 안에서는 소니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1월 9~12일 열리는 CES 2024 파나소닉 부스에 전시된 전기 면도기. 라스베이거스=심서현 기자

1월 9~12일 열리는 CES 2024 파나소닉 부스에 전시된 전기 면도기. 라스베이거스=심서현 기자

테슬라의 전기차 배터리 파트너인 파나소닉은 부스 안에 투명 자동차 모형을 놓고 자사의 충전 기술을 전시했다. 가전 부문에서는 다이슨보다 모던한 헤어드라이어, 아이팟보다 예쁜 면도기 등 일본 특유의 디자인과 감성을 담은 제품들로 주목받았다.

中, 우회하며 추격한다

세계 최대 드론 제조사 DJI나 대륙의 자부심 화웨이 등 중국 빅테크는 미국 정부의 규제 대상 기업이라 CES 참가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올해 CES에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광둥성 선전시 소재의 스타트업들 위주로, 총 1115개 중국 업체가 CES에 참가해 인해전술을 방불케 했다. TCL과 레노버 같은 중국 대형 가전업체는 미국 지사를, 알리바바는 싱가포르 지사를 활용해 ‘국적 세탁’을 하고 CES에 참가했다.

TCL은 “자체 개발한 AI 프로세서 ‘TCL AIPQ’으로 화질·사운드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라스베이거스=고석현 기자

TCL은 “자체 개발한 AI 프로세서 ‘TCL AIPQ’으로 화질·사운드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라스베이거스=고석현 기자

중국은 TV·디스플레이에 AI 기술을 싣고 한국을 추격한다. TCL은 QLED(퀀텀닷발광다이오드) TV를 대거 전시하면서 “자체 개발한 AI 프로세서 ‘TCL AIPQ’로 화질·사운드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가전업체 하이센스도 AI 프로세서 ‘엔진 X’를 공개하며 “디스플레이의 기술 경계를 허물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스카이워스는 CES2024에서 ‘65형 투명 올레드’ 제품을 전시했다. 라스베이거스=고석현 기자

중국 스카이워스는 CES2024에서 ‘65형 투명 올레드’ 제품을 전시했다. 라스베이거스=고석현 기자

스카이워스는 입구에 ‘65형 투명 올레드’ 제품을 전시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올해 전시에 내놓아 화제를 모은 그 투명 디스플레이다. 스카이워스 관계자는 “중국의 독자 기술로 만든 제품이며, 내년 상용화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 제품과 외관은 비슷하지만, 이음새에 본드 자국이 보이는 등 마무리가 조악해 보였다.

中 ‘베끼자’ vs 韓·日 ‘지키자’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가전·IT 전시회 IFA 2023에서 포착됐던 ‘중국의 훔쳐보기’는 올해 CES에도 경계 대상이었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중국 기업 측 인사가 차명으로 출입증을 만들다가 발급을 대거 거절당한 사례도 있다”며 “한국·일본 기업들은 외부 호텔에 별도 VIP 부스를 운영하는 등 보안 수위를 높였다”라고 말했다.

TCL은 전시장 한쪽에 차량 모형을 만들어두고 차량용 디스플레이 등 전장장비를 전시했다. 라스베이거스=고석현 기자

TCL은 전시장 한쪽에 차량 모형을 만들어두고 차량용 디스플레이 등 전장장비를 전시했다. 라스베이거스=고석현 기자

국내 전자업계가 미래 먹거리로 삼은 자동차 전장(전자 장비) 분야에서도 중국의 추격은 감지된다. 올해 삼성전자는 자회사 하만과 공동 부스를 꾸려 차량용 디스플레이와 디지털 콕핏(자동화 운전 공간) 등을 선보였고, LG전자는 전장 기술을 한데 모은 미래 모빌리티 콘셉트 ‘알파블’을 전시하며 전장 사업에 힘을 줬다.

 조주완 LG전자 CEO가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LG전자의 미래 모빌리티 콘셉트 '알파블'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LG전자

조주완 LG전자 CEO가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LG전자의 미래 모빌리티 콘셉트 '알파블'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LG전자

중국 기업들은 전장 사업에서도 ‘가성비’ 전략으로 뛰어들고 있다. TCL·하이센스 등은 전시관 한쪽에 차량 모형과 차량용 디스플레이 제품 라인업을 비치했다. 하이센스 전시관 안내자는 “범퍼·에어컨·타이어부품 등을 이미 벤츠·BYD 등에 안정적으로 납품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국내업계 관계자는 “전장은 안전성이 생명이라, 중국이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깐깐한 품질 기준을 넘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대만 ‘숨기자’ vs 中 ‘주목받을래’

대만은 반도체와 PC 제조 강국이지만 올해 CES 참가 규모는 179곳에 그쳤다. 컴퓨터 부품 조립사인 기가바이트와 PC 제조사 아수스, 반도체 업체인 하이맥스 등이 참가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전용관에 옹기종기 모인 스타트업들이고, 몇 안 되는 대형 업체도 관람객 주목도가 높은 LVCC 센트럴이 아닌 베네시안 등에 자리 잡아 공개 전시보다 비즈니스 미팅에 주력한다. ‘기술 보안’에 민감한 TSMC는 CES에 불참했다.

1월 9~12일 열리는 CES 2024 하이센스 부스. 주방가전 시스템을 홍보하며 전시원들이 소고기를 굽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심서현 기자

1월 9~12일 열리는 CES 2024 하이센스 부스. 주방가전 시스템을 홍보하며 전시원들이 소고기를 굽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심서현 기자

반면 중국 업체들은 어떻게든 관람객의 시선을 끌고자 LVCC에서 각종 이벤트를 벌였다. 하이센스는 고기나 빵 굽기를 맞춰주는 주방 시스템을 전시하며, 아예 LVCC 한복판에서 소고기 스테이크를 구워 나눠줬다. 스카이워스는 전시관에서 부채에 중국어로 글씨를 써주는 이벤트를 벌여 관람객을 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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