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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넷플서 했으면 떴을까? 이경규가 화낸 '교미 개그' 보라 [문화 비타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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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길 잃은 K코미디

문화 비타민

20년 넘게 처방된 ‘월요병’ 치료제가 있었습니다. 시청률 35%도 넘던 그 국민 치료제가 약발이 떨어져 ‘단종’됐다 부활했지만, 웃음꽃이 필 만한 상황은 아닙니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 한때 국민 코미디 ‘개콘’ 이야기죠. 공영방송엔 소재 제약이 많다고요? 넷플이라고 ‘빵빵’ 터질까요. 이경규가 역정 낸 ‘교미 개그’에서 코미디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봅니다.

넷플릭스 ‘코미디 로얄’은 코미디언 20명이 경쟁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코미디 로얄’은 코미디언 20명이 경쟁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사진 넷플릭스]

한때 전 국민의 ‘월요병’을 달래주던 TV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바로 KBS 장수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다. 1999년 4월 시작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콘은 2000년대 들어 ‘국민 예능’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일요일 저녁이면 온 가족이 TV 앞에 앉아 깔깔댔고, 학교나 직장 회식 자리에선 개콘 유행어를 줄곧 들을 수 있었다. 2003년 8월엔 역대 예능 최고 시청률 35.3%(닐슨)를 기록했다.

20년 넘게 웃음을 주던 프로그램이 2020년 6월 방송 중단을 결정했을 때 출연진은 물론 시청자 역시 아쉬움이 컸던 이유다. 눈물의 마지막 방송과 함께 당시 제작진은 “달라진 방송 환경과 코미디 트렌드의 변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잠시 휴식기를 갖겠다”고 폐지 이유를 밝혔다.

3년 5개월의 긴 공백을 깨고 돌아왔을 때 반가움과 동시에 ‘2023년의 개콘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에 관심이 쏠렸다. 지난 11월 부활 후 첫 방송엔 이런 기대감이 반영돼 시청률 4.7%로 출발했다. 하지만 시청자의 평가는 냉정했다. 그 후 최근 방송까지 부활 전 기록하던 3%대 시청률을 전전하고 있다.

부활한 KBS 개그콘서트에 신설된 코너 ‘데프콘 닮은 여자 어때요’의 한 장면. [연합뉴스]

부활한 KBS 개그콘서트에 신설된 코너 ‘데프콘 닮은 여자 어때요’의 한 장면. [연합뉴스]

돌아온 개콘이 여전히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 이유는 뭘까. “복귀 첫 방송 이후엔 개콘을 잘 안 보게 된다”라고 밝힌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현재 코미디 프로그램은 백약이 무효인 상황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예능의 대세가 관찰 중심의 리얼리티로 넘어갔는데 코미디는 짜인 극”이라면서 “대본을 통해 재미를 유발하는 식이라 요즘 예능 환경에선 쉽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코미디 장르는 최근 몇 년 새 입지가 좁아진 방송을 떠나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지난 4월엔 코미디언 이용주·김민수·정재형이 진행하는 유튜브 코미디 콘텐트 ‘피식쇼’가 웹예능 최초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예능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하 평론가는 “시청층이 전 국민인 TV와 달리 유튜브는 취향별·연령별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콘텐트를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부활한 KBS 개그콘서트에 신설된 코너 ‘니퉁의 인간극장’의 한 장면. [뉴스1]

부활한 KBS 개그콘서트에 신설된 코너 ‘니퉁의 인간극장’의 한 장면. [뉴스1]

과거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개그 형식,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개그 소재 등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신인 코미디언들을 많이 기용했다고 하지만 개그 포맷(형식)과 내용에서 과거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대중의 가치 판단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여성의 외모를 소재로 삼는 등 다문화 감수성이 떨어지는 개그들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KBS 공영방송 이상해. 하지 말란 게 너무 많잖아.”

부활한 KBS 개그콘서트에 신설된 코너 ‘금쪽 유치원’의 한 장면. [뉴스1]

부활한 KBS 개그콘서트에 신설된 코너 ‘금쪽 유치원’의 한 장면. [뉴스1]

2008년 시작한 코너 ‘봉숭아학당’에서 한 코미디언은 공영방송의 현실을 이렇게 풍자했다. 유튜브·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 새로운 매체와 비교했을 때 자극적인 매운맛 코미디나 상업성 짙은 표현을 하는 데에 공영방송은 분명 제약이 있다. 하지만 이런 제약이 코미디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을까. 넷플릭스가 지난 11월 공개한 시리즈 ‘코미디 로얄’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코미디 로얄’은 넷플릭스에서 단독 쇼를 론칭할 기회를 놓고 20명의 코미디언이 승부를 겨루는 코미디 서바이벌 예능이다. 이경규·문세윤·이용진·탁재훈 등 베테랑부터 신인 코미디언과 유튜브 스타까지 쟁쟁한 출연진이 등장하는 데다 서바이벌이라는 새로운 포맷을 도입해 관심을 모았다. 정작 공개 후에는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특히 2화의 ‘원숭이 교미’ 개그 장면은 프로그램 안팎에서 논란이 됐다.

원숭이 분장을 하고 교미 장면을 적나라하게 흉내 내는 모습이 웃음보다는 불편함을 안겼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내에서 “코미디의 기본은 공감대다. 이건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것인데 선을 넘었다”고 역정을 낸 이경규에게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 김 평론가는 “웃음이 터지는 것은 제약 여부보다 상황과 맥락을 잘 이용할 때”라며 “코미디는 성(性)을 비롯해 모든 것을 소재로 다룰 수 있지만, 그 소재로 웃길 수 있는지가 바로 코미디언의 역량”이라고 말했다.

개콘을 연출하는 이재현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시청자 설문조사를 보면 코미디 프로그램 부활이 가장 큰 민원 중 하나였다”며 “다시 모인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 토양이 좀 더 단단하게 굳을 수 있게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좋은 콘텐트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스물한 살의 개콘을 포함한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제 궤도를 찾아 월요병뿐 아니라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특효약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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