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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렬의 시시각각

말로만 인재 양성, 뿌리 깊은 통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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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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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강조해 왔다. 2022년 6월 7일 국무회의에선 “과학기술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과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가 살아남는 길은 뛰어난 과학기술 인재를 많이 길러내는 것”이라고도 했다(2023년 2월 제1차 인재 양성 전략회의). 타성에 젖은 교육부와 관료주의를 깨부술 기세였다. 그의 인식도, 말도 틀린 것이 없다.

 그런데 정부는 과연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까. 오히려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2028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서 심화수학(미적분Ⅱ·기하)이 빠지는 것도 그중 하나다. 미적분과 기하는 사실상 모든 자연과학과 공학에 활용된다. 미적분을 제대로 모른 채로 어떻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느냐는 이공계 교수들의 개탄은 타당하다. 교육부는 “고교에서 학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물정 모르거나 현실을 호도하는 소리다. 교육 현장에 수능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수능에 포함되지 않는 과목 수업이 충실히 이뤄질 리 없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아이들이 수학에 흥미를 잃거나 수학으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큰 문제”라고 했다. 어렵지만 꼭 필요한 학습이 이뤄지게 하는 게 교육부 역할이다. 교육부는 그렇게 하는 대신 시험에서 빼버렸다. 쉬운 수능이 학생과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올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은 ‘이권 카르텔’로 지목돼 지난해보다 약 15%(4조6000억원) 줄었다. 대학 연구실과 대학원생 연구비 지원은 상당 폭 삭감된다. 그들은 연구비 생태계의 맨 아래에 있고, 가장 목소리가 작다. 대학 연구실 사기는 가라앉아 있다.

대통령 “과학기술이 살 길" 했지만
심화수학 제외는 세계 흐름과 배치
15년 등록금 동결, 연구·교육 위축

 윤 대통령이 집권 초 공언한 대로 했으면 교육을 획기적으로 개혁한 교육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교육부 정책은 다른 방향으로 치닫는다. 또 한 사례가 15년째 이어진 대학등록금 동결이다. 2022년 국공립대 등록금은 연간 419만원, 사립대는 752만원이다. 2011년엔 국공립대 435만원, 사립대 769만원이었다(교육부 자료). 그간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약 20% 내렸다. 이런 ‘상품’에 고품질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싼 게 비지떡’이다. 대학의 연구·교육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사립대 연구비는 18% 줄고(2011년 5401억원→2022년 4429억원), 실험실습비는 26% 감소했다(2011년 2163억원→2022년1598억원, 국회 입법조사처). 구식 실험장비가 흔하고, 비 새는 실험실도 있다. 대기업 사원보다 못한 연봉을 받는 교수가 적잖다. 그사이 한국 대학들의 국제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2월 1일 경북 구미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열린 제1차 인재양성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2월 1일 경북 구미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열린 제1차 인재양성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고약한 것은 교육부가 대학등록금 동결을 지속해 온 방식이다.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엔 국가장학금(Ⅱ유형)을 지원하지 않고, 각종 재정지원에서 불이익을 줘 왔다. 등록금을 동결·인하한 대학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국가장학금 등을 등록금 동결의 ‘통제’ 수단으로 써 온 것이다. 오죽하면 국회 입법조사처가 “법정 한도 내에서 대학이 자율적으로 등록금 인상률을 책정할 수 있는 권한을 제한한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을까.

등록금 동결 정책은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됐다. 그 뒤 진보·보수 정부 가리지 않고 유지했다. 교육부는 올해도 전국 대학에 등록금 동결을 압박하고 있다. 민간 자율을 존중한다는 보수 정부에서 가격 통제가 이렇게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심화수학 제외, 대학등록금 동결은 결국 교육을 하향평준화로 끌고 간다. 당장 편하자고 미래를 저당잡히는 격이다. 한국의 대학은 원하는 학생을 필요한 방식으로 뽑을 수 없고, 혁신에 필요한 재원 마련이 용이하지도 않다. 창의적인 인재 양성은 지난하기만 하다. 교육당국의 뿌리 깊은 통제와 간섭이 그 배후에 있다.
윤 대통령이 외치는 ‘자유’에 국민이 호응했던 것은 그런 후진적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아 달라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런데 영 달라진 것이 없다. 또 하나의 실망이 얹어지고 있다.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