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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209)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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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작자 미상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어 넘는 고개
산(山)지니 수(手)지니 해동청(海東靑) 보라매 쉬어 넘는 고봉(高峰) 장성령(長城嶺) 고개
그 너머 님이 왔다 하면 나는 아니 한 번도 쉬어 넘어가리라
-병와가곡집

“사랑은 이긴다”

사설시조다. 평시조의 정형률을 깨뜨린 사설시조는 많은 경우 지은이를 모른다. 이름 모를 평민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들이다.

고개가 얼마나 높으면 바람도, 구름도 쉬어 넘을까? 오늘날 흔히 쓰이는 표현이 이 시조에서 비롯되었음을 짐작한다.

산지니는 산에 사는 야생 매, 수지니는 집에서 사람 손으로 키우는 매, 해동청은 송골매, 보라매는 새끼를 잡아 길들여 사냥에 쓰는 매를 이름이다. 매가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높이 날아올라야 한다. 먹이를 발견하면 엄청난 속도로 내리꽂힌다. 이 매도 쉬어 넘는다 하니 참으로 높은 봉우리며, 길고 긴 성이 있는 고개다. 그런데 그 너머에 님이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한 번도 쉬지 않고 넘어가겠다 하니 얼마나 그리웠으면 그리할까? 이렇게 강렬한 만남의 의지를 그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전통 유교 사회의 엄격한 남녀 유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연정은 이러하였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