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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중국 회사에 존재하는 또 다른 권력 체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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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익 추구다. CEO(최고경영자)가 총대를 메고 돈을 좇는다. 그런데 한 기업에 CEO 계통이 아닌 다른 명령 체계가 존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중국이 지난달 29일 ‘기업법(公司法)’을 개정했다. 그중 이런 규정이 나온다. ‘종업원 수 300명 이상의 주식회사는 이사회에 반드시 종업원 대표를 포함해야 한다.’ 기업의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 종업원 대표를 참여시키라는 얘기다. 외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 SK, 현대차 등 중국에 대규모 사업장을 둔 국내 대기업이 긴장하는 이유다.

중국의 기업법 개정으로 외자기업에 대한 당국의 경영 개입이 더 노골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사진 셔터스톡]

중국의 기업법 개정으로 외자기업에 대한 당국의 경영 개입이 더 노골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사진 셔터스톡]

문제는 ‘종업원 대표’가 실제로는 공산당 조직인 ‘공회(工會)’의 대표라는데 있다. 공회가 종업원 관련 모든 활동을 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업원 대표’ 역시 공회가 뽑거나, 아예 공회 수장이 겸임하기도 한다. 기업법 개정안은 결국 투자 결정, 구조조정, 사업 철수 등 기업 의사 결정 과정에 당이 관여하겠다는 뜻이다.

오래 진행되어온 작업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지난 2017년 2기 집권을 시작하면서 당 건설을 강조했다. ‘당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당조직을 만들라’고 민영기업과 대형 외자기업을 압박했다. 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고, 국가의 기업 장악력은 더 세졌다. 이번 기업법 개정은 그 작업의 완결판이다.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공회는 당 노선을 기업에 전파하는 조직이다. 공산당 당장(黨章)은 공회의 역할을 ‘당 노선과 방침의 관철’, ‘기업의 법 준수 지도와 감독’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업이 당 노선을 잘 지키는지를 감시하겠다는 얘기다. CEO로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이사회 내용은 공회를 통해 당으로 보고되고, 공회를 통해 당의 지령이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공회가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 작은 기업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쓰레기 청소, 건전한 문화 조성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곳도 많다. 그러나 CEO 라인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권력 체계가 회사 안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업에는 부담이다.

시진핑 지도부는 요즘 개방 확대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빠져나가는 외국인 투자를 잡기 위해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간첩법으로 기업인 활동을 억제하고, 기업법으로 경영에 간섭하려 든다. 외자기업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그들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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