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선2035

남과 비슷한 정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정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진호 경제부 기자

정진호 경제부 기자

저출산은 주된 대화거리 중 하나가 됐다. 정책 당국자와 만날 때뿐 아니라 사석에서도 빠지지 않는 주제다. 중학교 동창들과의 연말 송년회에서도 안줏거리로 올라왔다. 보통은 “나라 망하겠다”는 결론으로 금방 귀결되는데 결혼을 준비하거나 자녀에 대해 고민하는 나잇대에 들어서다 보니 저출산 토크는 사뭇 진지해졌다.

실수령 월 300만원 정도를 버는 A는 1년 전 첫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난 달엔 월급의 2배 이상을 썼다고 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면 호텔 스위트룸 같은 산후조리원, 브랜드 있는 준명품 유아 옷이 기본인 것 같아서 따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둘째 계획은 취소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무자녀 부부에게서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듣기 위해 가진 간담회에선 “아이를 학교에 태우고 갔을 때 아이 기가 죽을까 봐 무리해서라도 외제차로 바꾼다는 부모도 있다고 해 걱정”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달 26일 서울의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 요람이 비어 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또 역대 최저를 기록할 전망이다.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서울의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 요람이 비어 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또 역대 최저를 기록할 전망이다. [연합뉴스]

출생아 수와 합계 출산율은 지난해까지 포함하면 9년째 꾸준히 감소했다. 출산율은 한 해도 빠짐없이 가파른 내리막이다. 2015년 1.24명이었던 출산율은 2016년 1.17명으로 떨어졌고, 2018년엔 0.98명으로 1명대가 깨졌다. 2022년(0.78명)에 이어 지난해는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0.72명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임신 기간을 고려하면 2015년을 기점으로 아이를 낳는 이들이 줄었다는 풀이가 나온다. 2015년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5년은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고, 수도권 집중이 강화한 시기”라며 “또 SNS가 본격적으로 활성화하면서 출산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SNS가 결혼·출산의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건 연말 술자리에 둘러앉은 ‘방구석 전문가’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사진·영상 공유가 특징인 인스타그램은 2012년 12월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고, 2015년에 국내 활성이용자수(MAU) 500만명을 넘겼다.

해외에서도 SNS를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다. 헝가리 오부다대 연구팀이 18~34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스타그램 이용 빈도가 잦을수록 타인에게 더 좋은 모습으로 노출되길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향 비교를 원인으로 지적하면서다. 핀란드 헬싱키대 연구팀은 지난해 논문에서 “2010년대 소셜미디어의 급격한 확산이 출산을 포기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야기했다”고 분석했다.

언젠가부터 ‘남이 하는 만큼’이 선택의 기준이 됐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신혼집, 예식장, 예복 등 선택의 순간마다 무의식적으로 따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비교군인 ‘남’의 실체조차 불분명하다. 올해는 나만의 기준을 세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