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난으로 쓰러진 기업도 있다.|올 도산 원인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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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경쟁사회에서 모두가 살아남을 수는 없다.
기업사회도 예외일수는 없고 올 한해도 적잖은 기업이 경쟁에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사람으로 치면 사망에 해당할 기업 도산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기업 도산은 호황보다 불황일 때가 더 많다. 도산의 원인은 판매 부진에 따른 자금압박이 가장 크지만 불황일수록 그 동안 누적된 경영실패 원인이 한꺼번에 커져 기업을 패망의 길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올해 도산한 기업을 보면 인력난이 도산 원인으로 등장한 것이 새로운 현실이다.
부족한 인력을 채우지 못해 생산에 차질음 빚어 문을 닫은 기업도 있고 인력난을 자동화로 풀어보려다 자금압박에 못 견뎌 넘어간 회사도 있다.
작업복을 만들어 관공서·회사들에 납품해온 S상사는 지난해 30여명이 넘던 종업원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 올 들어서는 18명만 남았다.
이 때문아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일이 점점 잦아지게 됐고 주문량을 스스로 줄여 받기도 했으나 그나마 주문량 중 20∼30%가량씩은 으레 납기를 넘겨 1∼2%씩의 지체 벌금을 내야했다.
무리한 작업 일정으로 불량률도 급격히 높아졌다.
특히 처음엔 이해를 해주던 거래선도 한두 곳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단골 중심으로 이뤄져 온 고정 판매망이 무너져 가는 것을 본 이 회사의 송모사장은 결국 폐업결정을 내린 뒤 그 동안 자신을 도와준 종업원에게 회사를 헐값에 처분하고 말았다.
중소기협중앙회에 따르면 올 들어 회원업체 중 4곳이 인력난에 따른 생산차질로 문을 닫았다.
일손 부족이 폐업의 직접적인 이유가 된 것은 처음으로 기존의 판매부진·자금난 등외에 인력 문제가 새로운 기업경영의 복병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손부족에 대처하기 위한 자동화추진, 인력 확보를 위한 인건비 부담 증가 등을 포함하면 인력문제가 기업경영에 미치는 파장은 훨씬 더 크다.
합섬직물을 생산하는 P섬유와 폴리에스터 원단제조업체인 D실업은 일손부족을 자동화로메우려다 자금난에 따른 도산의 덫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말았다.
P섬유는 87년, D실업은 86년 각각 6억∼8억원 어치씩의 워터세트·에어제트 등 최신 기계를 사들였으나 이에 따른 이자부담을 견뎌내지 못해 올해 초 각각 문을 닫아야했다.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저임금 장시간 노동체계가 불가능해지면서 물건을 파는 것 못지 않게 물건을 만들어 내는 능력 자체가 기업생존의 관건이 됐다.
판매 쪽의 경우 올해는 특히 수출부진에 따른 수출주력업체들의 고전이 뚜렷해진 깃이 특징이다.
상장기업으로 지난 9윌 법정관리 신청을 냈다가 법원의 기각으로 사실상 파산한 대도상사가 좋은 예다.
섬유·의복업체의 경우 이 같은 현상이 특히 심해 지난10월말 현재 19곳이 휴업 중으로 전체 중소기업 휴 업체 수 2백16곳 중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또 폐업 체도 올 들어 10월까지 33곳에 이르러 전체 중소기업 폐업체 수 1백26곳 중 25%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 8월의 중동사태는 수출감소 외에 원자재 값 인상을 유발,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10월 폐업한 N섬유는 중동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업체.
메리야스·트레이닝복 등을 염색해 주는 것이 주력사업인 이 업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흰색염색의 경우 ㎏당 염색료를 1천원씩 받을 수 있었으나 올 들어 섬유경기 퇴조에 따른 주문 감소로 7백∼8백원으로 낮춰 받는 출혈경쟁을 벌인데다 중동사태이후 원료 값이 크게 오르는 바람에 채산을 맞출 수가 없었다.
수출부진은 내수 쪽에도 큰 여파를 미쳤다.
수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내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신사복 전문업체인 부민사는 지난달 15억원의 부도를 냈다.
지난해 1백억 원의 매출을 기록, 국내 40여 신사복 업체 중 7위 권에 올랐던 이 회사는 지난해이후 내수 판매강화를 위해 국내직매장을 60여 곳으로 늘렸으나 업체간의 가격 경쟁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
올 들어 2만6백 개 중소기협중앙회 회원 광공업체 가운데 지난 10월까지 1백26곳이 폐업했고 2백35곳이 휴업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는 지난 80년대의 휴 업체 수 8백8곳, 폐업체 수 5백14곳에 비해서는 상당히 순 것이나 87년 삼저 호황 때의 휴 업체 수 2백35곳, 폐업체 수 70곳에 비해서는 크게 늘어난 깃이다.
업종별 폐업체 수는 섬유·의복이 33곳으로 가장 많았고 인쇄·출판(25곳), 음·식료품(21곳)의 순으로 나타나 불황이 심했던 업종일수록 폐업도 많았다. <민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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