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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 없는 아파트도 유찰” 서울 경매건수 9년 만에 최고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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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호 09면

얼어붙은 부동산 경매시장 

부동산 한파로 경매 물건이 쌓이고 있다. 사진은 서울 롯데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부동산 한파로 경매 물건이 쌓이고 있다. 사진은 서울 롯데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자이 전용면적 84㎡는 2022년 10월 감정가 15억8000만원에 법원경매에 나온 이후 두 차례 유찰 끝에 1월 다시 주인 찾기에 나선다. 경매 최저가는 10억1120만원. 최초 감정가의 약 64% 수준으로 떨어졌다. 서울 개포동의 디에치아너힐즈 전용 94.28㎡는 무려 네 차례의 유찰로 감정가인 34억2000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5억5599만원에 낙찰됐다.

경매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법원 부동산 경매건수(누적)는 1만7966건에 달했다. 2014년(2만412건) 이후 9년 만에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는 2022년 연간 경매건수(8812건)와 비교해도 두 배 넘게 폭증한 규모다. 콧대가 높은 서울 아파트도 한파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경매건수는 지난해 1월 125건에서 12월에는 215건으로 200%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예정 물량도 적지 않다. 통상 법원경매는 접수일로부터 빠르면 5개월에서 7개월이 지난 뒤에 개시된다. 경매 시작 전 감정평가 등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설춘환 세종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강남 지역만 해도 현재 경매 진행건수는 40건인데, 경매 예정인 대기 물량은 300건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매로 나오는 집이 늘고 있는 건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옥죄고 있는 데다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대출을 연체하는 집주인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반등하던 집값마저 다시 내림세로 돌아서면서 경매 물건이 낙찰되지 않고 계속 적체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12월 경매가 진행된 서울 아파트 215가구 중 낙찰된 아파트는 64가구로, 평균 낙찰률은 29.8%에 그쳤다. 최근 역전세와 전세 사기 우려로 임대차 시장에서 기피 현상이 심화된 빌라의 상황은 더 암울하다. 지난해 12월 서울 빌라의 평균 낙찰률은 12.8%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1085건의 빌라 매물 중 139건만 겨우 주인을 찾은 셈이다. 설 교수는 “특히 서울에서 권리분석상 하자가 없는 아파트가 3회 유찰되는 사례마저 증가하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집값의 ‘선행지표’인 경매시장 냉각은 향후 집값이 더 꺾일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반영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2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주택가격 전망 CSI는 93으로 전월 102에서 9포인트나 하락했다. 1년 후 주택가격이 지금보다 하락할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상승을 예상한 사람보다 많다는 의미로, 지수가 100을 밑돈 것은 지난해 5월(92) 이후 7개월 만이다.

연구기관들의 전망도 엇갈린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주택 매매가격이 2%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 반면,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1%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권주안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4년 주택시장은 ‘불황형 안정세’로 가격, 거래, 공급이 동반 약보합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최근의 경매시장 위축이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경매는 유찰될 때마다 시작가가 감정가에서 20~30%씩 가격이 낮아지기 때문에, 2~3회 유찰된 경우 운이 좋으면 주변 시세의 반값에 낙찰할 수도 있다. 실제 최근 서울 아파트의 낙찰가율은 80% 수준이다. 통상 감정가가 주변 시세보다 10~20%가량 저렴한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주변 시세보다 30~40% 싸게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유근용 준민자산관리 대표는 “현재 부동산 시세가 2020년 수준으로 내려왔는데, 여기서 경매로 20~30% 더 낮게 낙찰할 수 있다면 향후 부동산 경기가 더 나빠진다고 해도 리스크 방어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현정 즐거운경매 대표도 “경매 물건은 많고, 정부 규제로 투자자의 접근이 어려운 지금이 내 집 마련의 적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경매는 권리분석을 잘못할 경우 시세의 반값에 낙찰했다고 해도 되레 손해를 볼 수 있다. 이 대표는 “현재 서울 아파트 경매 물건의 10건 중 9건은 권리분석상 하자가 없는 편이나, 경매시장에 뛰어들기 전에 충분한 권리와 절차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상가와 같은 상업시설 경매건수도 급증하고 있다. 상가 낙찰률은 지난해 12월 기준 20.1%에 머물고 있다. 인천·경기지역 상가의 평균 낙찰가율은 60%대에 그친다. 서울 상가 평균 낙찰가율은 지난해 12월 95%였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상업시설의 경우 금리가 높다보니 수익률이 떨어지고, 경기 악화로 임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유근용 대표는 “상가는 시세의 최대 80%를 넘어서는 대출도 가능한 만큼 아파트 등 주택에 비해 자금 조달에 유리하고, 낙찰가율도 낮은 편이어서 실수요자라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며 “상가 경매는 그러나 경매에 나서기 전에 권리관계는 물론 입지 등 상권분석까지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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