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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특별한 분위기에 홀려, 1인 5만원 '티 오마카세' 열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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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호 12면

차(茶)에 빠진 MZ세대 

티 오마카세 전문점 ‘코코시에나’에서 겨울 메뉴로 준비한 코스 중 홍도라지 차와 카나페. 김상선 기자

티 오마카세 전문점 ‘코코시에나’에서 겨울 메뉴로 준비한 코스 중 홍도라지 차와 카나페. 김상선 기자

#티 오마카세 전문점 ‘코코시에나’
“이 차는 여린 쑥만을 따서 만든 것인데 향은 진하면서도 마셔보면 바닐라처럼 부드럽고 화이트 초콜릿처럼 달콤한 맛이 납니다. 같이 준비한 다식은 모나카이고 위에는 저희가 직접 만든 팥 앙금과 유자청, 라벤더 향을 입힌 크림을 올렸습니다. 쑥차의 진한 향과 잘 어울릴 거예요.”

#‘르 메르디앙 서울 명동’ 호텔 라운지 바
“이 차는 ‘티의 샴페인’이라고 불리죠. 인도의 대표적인 홍차 다즐링을 오랜 시간 차가운 물로 추출하면 색이나 맛이 샴페인과 비슷해서 그렇게 불러요. 연말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샴페인 잔에 준비해 봤습니다. 함께 낸 음식은 가을 제철 요리인 유자와 감자를 중심으로 감자·당근·완두콩 퓌레와 구운 관자 요리를 조합한 겁니다. 함께 즐겨보세요.”

'르 메르디앙 서울 명동' 호텔 라운지 바에서 준비한 차와 음식. 인도의 다즐링 홍차는 차갑게 우리면 샴페인과 비슷한 색과 달콤한 맛을 내기 때문에 '티(tea)의 샴페인'이라고 불린다. 서정민 기자

'르 메르디앙 서울 명동' 호텔 라운지 바에서 준비한 차와 음식. 인도의 다즐링 홍차는 차갑게 우리면 샴페인과 비슷한 색과 달콤한 맛을 내기 때문에 '티(tea)의 샴페인'이라고 불린다. 서정민 기자

일본식 카페에서 티 오마카세로

'코코시에나'가 준비한 생강 홍차와 딸기를 곁들인 탕수육. 김상선 기자

'코코시에나'가 준비한 생강 홍차와 딸기를 곁들인 탕수육. 김상선 기자

요즘 MZ세대가 즐긴다는 ‘티(tea) 오마카세’ 전문점에선 여러 종류의 차와 함께 간단한 음식을 코스로 즐길 수 있다. 1인당 4만~5만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고, 예약도 미리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젊은 층이 많이 찾으면서 유행하고 있다.

한겨울에도 ‘얼죽아(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를 찾는다고 외국에서도 소문난 한국의 MZ세대가 이처럼 커피가 아닌 차를 찾게 된 첫 번째 이유로는 ‘오마카세’ 열풍을 들 수 있다. 일본어로 ‘셰프에게 맡긴다’는 의미의 오마카세는 주로 고급 스시집에서 통용돼 왔다. 그러다 보니 ‘오마카세=고급 음식’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요즘은 한우를 비롯해 순대·커피·치킨·튀김·김밥 오마카세까지 별별 오마카세가 등장했다. 공통점은 손님이 직접 메뉴를 고르지 않고, 셰프가 알아서 다양한 코스로 음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가나 초콜릿 바’ ‘삼성전자 라이프 그로서리 스토어 바스켓’ 등 팝업 스토어를 통해 기존 브랜드에 흥미로운 콘텐트를 더해온 오프라인 마케팅 서비스 플랫폼 ‘프로젝트 렌트’의 최원석 대표는 “오마카세는 고급 문화라고 생각하는 MZ세대가 스시는 너무 비싸니까 그보다 비용은 저렴한데 분위기는 우아한 티 오마카세를 즐기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MZ세대는 늘 새로운 경험을 찾는데 이제 스페셜티 커피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또 커피는 ‘맛’으로 끝나는 반면 차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마시는 도구나 예법 등 고도로 발전된 ‘형식미’가 있기 때문에 체험하는 재미가 더 특별하다.”
MZ세대에서 그동안 유행했던 음료 스타일을 보면 일본풍 카페, 에스프레소 바, 애프터눈 티 등이 있다. 2019년 코로나19 직전까지도 성수동의 ‘ERT’ ‘가배도’ 등을 중심으로 작은 정원이 꾸며진 ‘일본풍 카페’가 인기였는데 이때만 해도 ‘차’보다는 ‘분위기’가 우선이었다. 한 번에 마신 에스프레소 잔을 여러 층으로 쌓는 인증샷이 유행할 만큼 ‘에스프레소 바’가 유행했지만 워낙에 한국에선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친숙해 매니아층만 즐기는 것으로 그쳤다. 특급 호텔에서 주로 즐길 수 있는 ‘애프터눈 티’ 세트는 코로나 기간 동안 외국 여행을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줬지만 엔데믹 이후에는 파리의 리츠 칼튼 호텔이나 영국의 버버리 카페에서 ‘찐’ 애프터눈 티를 경험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역시 인기가 시들해졌다. 늘 새로움을 찾는 MZ세대의 발길이 ‘차’로 향하게 된 이유다.

다양한 차 체험 ‘티 클래스’도 인기

성수동 찻집 ‘맛차차’ 티 클래스를 찾은 젊은 고객들. [사진 최원석]

성수동 찻집 ‘맛차차’ 티 클래스를 찾은 젊은 고객들. [사진 최원석]

사실 티 오마카세 전문점이 아니어도 여러 종류의 차를 차례로 맛보면서 새로운 문화정보를 얻는 ‘티 클래스’도 인기다. MZ세대가 차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오마카세 유행에 편승한 일시적인 현상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차문화산업연구소 소장인 김세리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실제로 차 수요가 확연히 늘었고, 대학에서도 차 동호회가 늘고 활동도 적극적”이라고 했다. “원래 사람들은 마시는 것에 관심이 많고 늘 진심이다. 커피도 술도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 마시는 음료다. 그런데 코로나19 기간 동안 ‘이왕이면 건강하게 마실 수 있는 음료’에 관심이 많아졌다. 특히 예전에는 ‘차’라고 하면 ‘다도(茶道)’가 먼저 떠올라서 왠지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요즘은 차를 파는 가게가 많아지면서 차도 커피처럼 캐주얼하게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접근성이 좋아졌다.”

의식주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이 준비한 티 클래스. 하동의 ‘도재명차’ 차와 전통 병과를 곁들였다. 서정민 기자

의식주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이 준비한 티 클래스. 하동의 ‘도재명차’ 차와 전통 병과를 곁들였다. 서정민 기자

의·식·주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과 하동의 다원 ‘도재명차’가 함께 열었던 티 클래스에 참가한 디자이너 윤랑(35)씨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집에 혼자 있으면서 잡생각을 덜고 명상을 즐기기 위해 차를 즐기게 됐다”며 “원래 몸이 차가운 성질이라 음료를 마시는 게 늘 까다로웠는데 지인의 소개로 보이차를 마시게 되면서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너무 좋아졌고, 요즘은 국산차와 더불어 중국·인도·유럽의 다양한 차 종류를 찾아 마시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했다.

식음료 업계에서도 이런 ‘웰빙’ 키워드에 맞춰 국내산 웰빙 식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차 음료를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국내산 볶은 팥과 늙은 호박을 주재료로 한 ‘일화차시 호박팥차’, 티젠의 ‘제주 말차 초코 밀크티’ ‘해남 호지차 카라멜 밀크티’ 등이다. 커피를 주 메뉴로 하는 카페 브랜드들도 차를 이용한 신 메뉴 개발에 동참했다. ‘경산대추 생강차’ ‘나주 배숙’ 등 국내산 식재료를 활용한 전통 차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폴 바셋은 올 겨울 추운 날씨에 어울리는 신 메뉴 가을 티·라떼를 출시했다. 국내산 단호박 베이스를 활용한 ‘스윗 펌킨 라떼’와 청송 사과를 이용한 ‘애플 시나몬 티’ 등이다. 과일차 라인업 ‘따 시리즈’ 제품을 내놓고 있는 파리바게뜨는 국내산 사과의 달콤한 맛을 기본으로 하는 ‘따사과’를 내놓았다.

김세리 교수는 차 문화 확산의 또 다른 이유로 “혼자서도 여러 가지 다구를 이용해 놀이처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작정하고 차를 우려 마시려면 찻잔은 물론이고 여러 종류의 다구가 필요하다. 자사호(차를 우리는 주전자), 차판, 거름망, 숙우(주전자에서 우린 차를 담는 그릇), 찻잔 받침, 다건(찻잔에 묻은 차를 닦는 수건), 차통, 차 집게, 송곳(차를 분리할 때 쓰는 도구), 차칼 등이다.

tvN 예능프로그램 ‘바퀴달린 집 3’(2021년)에 출연한 배우 류승룡과 이하늬가 차 매니어임을 뽐내면서 직접 챙겨온 차 도구들로 캠핑장에서 차를 우리는 장면을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던 것도 소꿉놀이 하듯 차를 즐기는 모습 때문이었다.

이처럼 차를 우릴 때는 엄격하면 엄격할수록, 또 캐주얼하면 캐주얼할수록 ‘도구’를 이용하는 재미가 있다. 기계로 내리는 에스프레소와 달리 거름망과 전용 주전자를 이용해 직접 커피를 내리는 ‘드립 커피’가 더 인기였던 것도 같은 이유다.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MZ세대에게 문화는 ‘놀이’로 먼저 인식되는 경향이 크다.

‘코코시에나’ 김은지 대표에 따르면 주말에 준비된 4개 타임에는 주로 데이트 커플이 많이 찾아오고, 평일 3개 타임에는 다양한 고객이 참가하는데 의외로 젊은 직장인들이 단체로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기업의 동호회 비용지원을 이용하는 단체 손님이다. 김 대표는 이들의 체험 후기 중 “커피보다 좀 더 시간을 들여 천천히 힐링 타임을 즐길 수 있었고, 특히 차를 우리고 대접하고 마시는 풍경이 꼭 짧은 연극 공연을 보는 것 같아 즐거웠다”는 의견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놀이처럼 우아한 형식 즐기기

‘르 메르디앙 서울 명동’ 호텔 라운지 바에서 티 오마카세 겨울 코스로 준비한 메뉴 중 기문홍차와 미니 파운드 케이크. 서정민 기자

‘르 메르디앙 서울 명동’ 호텔 라운지 바에서 티 오마카세 겨울 코스로 준비한 메뉴 중 기문홍차와 미니 파운드 케이크. 서정민 기자

여러 종류의 차를 마시면서 어울리는 음식을 페어링하는 경험도 재미가 쏠쏠하다. 대부분의 파인 다이닝 식당은 음식을 메인으로 하고 어울리는 술과 차를 준비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차를 위한 페어링은 차가 우선이고, 이에 어울리는 다과를 준비하게 된다. 때문에 이를 준비하기 위해선 오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덕분에 셰프와 주인장이 장고 끝에 선택한 음식들은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보통 4~5코스로 진행되기 때문에 가벼운 브런치를 대신할 수 있어 가성비를 열심히 따지는 MZ세대에게도 차와 페어링 코스는 괜찮은 선택이다.

특히 여러 종류의 차 페어링 코스를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맛’과도 가까워질 수 있다. 한국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온지음에서 여는 티 클래스의 경우 모든 코스의 페어링 음식을 흑임자 다식, 유자과편, 잣유과, 깨엿, 유자경단 등의 전통 병과로 낸다. 말하자면 부드러운 질감, 자극적이지 않은 맛, 건강한 재료를 이용한 ‘할메니얼’ 입맛의 음식들이다.

‘르 메르디앙 서울 명동’ 호텔 라운지 바에서 티 오마카세 겨울 코스로 준비한 메뉴 중 운남전홍차와 사과·자몽·토마토를 곁들인 새우 요리. 서정민 기자

‘르 메르디앙 서울 명동’ 호텔 라운지 바에서 티 오마카세 겨울 코스로 준비한 메뉴 중 운남전홍차와 사과·자몽·토마토를 곁들인 새우 요리. 서정민 기자

‘할메니얼’이란 식품 업계에서 유행하는 용어다. 할매 입맛과 밀레니얼 세대를 합친 신조어로 밋밋하지만 건강한 맛이 특징이다. 이 신조어 역시 코로나19 영향으로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지면서 복고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뉴트로’ 열풍과 함께 MZ세대를 사로잡았다. 이 취향에 맞추는 한편, 페어링 음식의 다양성을 위해 한식을 같이 준비하는 곳이 많다.

4~5종의 차 코스를 준비할 때도 중국·일본·인도·유럽 차와 함께 한국 차를 섞게 된다. 덕분에 ‘녹차’가 전부라고만 생각했던 한국 차의 새로운 맛에 눈뜨게 되고 자신만의 취향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차 전문가인 김 교수는 “담박하고 심플한 맛이 한국 차의 매력”이라며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유럽의 홍차처럼 향을 많이 더한 화려한 맛은 처음에는 좋지만 매일 마시긴 부담스럽다. 결국 여러 종류의 차를 다양하게 마시다보면 한국 차의 장점을 알게 된다. 또 한국 차는 녹차 유명 산지인 보성·제주·하동 말고도 지역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제조된다. 녹차, 발효차, 홍차, 떡차 등 종류도 다양하고 새로 개발되는 차도 많다. 시작이 중요할 뿐, ‘차’라는 문을 일단 열게 되면 한국의 맛에 점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오마카세’주방장에게 일임한다는 뜻 …‘맡김 차림’으로 하자는 의견도

일본어사전에서 오마카세(おまかせ)는 ‘(사물의 판단·처리 등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공손하게 표현한 말’ 또는 ‘(음식점 등에서) 주방장 특선, 주문할 음식을 가게 주방장에게 일임하는 것’으로 풀이돼 있다. 국내 외식업계에선 셰프가 그날 사온 최고의 제철 식재료로 요리해서 제공하는 서비스 방식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엇갈리는 두 개의 의견이 있다.

우선 우리말 ‘맡김 차림’으로 바꿔 부르자는 의견이 있다. “일식에서만 사용한다면 모르겠지만 요즘처럼 한우·삼겹살·김밥 등 한식을 중심으로 하는 업장에서까지 굳이 일본어를 사용한다면, 경복궁 들어갈 때 기모노를 입는 것과 같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또 한편에선 “일본어라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소믈리에라는 단어를 전통주 앞에도 쓰는 것처럼 외래어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라고 말한다.

‘빵(포르투갈어)’ ‘커피(영어)’처럼 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가 어원이지만 우리말로 동화되어 쓰이는 어휘를 외래어라고 부른다. ‘밀크(우유)’ ‘머니(돈)’처럼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외국의 말은 외국어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아직 오마카세 표준어는 정해지지 않았다. 공공언어개선 ‘다음은 말’ 코너에선 우리말 순화어로 ‘주방 특선’이라 정의해 놓았다. 용례와 의미는 ‘주방장이 만드는 특선 요리. 대부분 주방장이 엄선한 제철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코스로 손님에게 낸다’이다. 2023년 5월 새말모임에서 정한 것이다.

오마카세가 외래어가 될지, 외국어가 될 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언어 사용에서 중요한 것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명료한 의미다. 외계어라 불릴 만큼 말도 안 되는 MZ세대의 신조어가 공공연히 통용되는 이유다. 미식 수준이 올라갈수록 글로벌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그 의미와 적용 사례가 맞는지, 단순히 유행을 좇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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