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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 이어받은 시진핑 반부패의 역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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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왼)과 시진핑

마오쩌둥(왼)과 시진핑

신중국의 국부로 추앙받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사상은 제3세계 공산주의 운동 세력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공산 혁명의 철학적 토대를 제시한 실천론과 모순론, 서구 민주주의에 맞서 민주집중제를 정당화한 신민주주의론, 그리고 영구혁명론 등이다. 영구혁명론은 변화와 투쟁의 이념은 영구적,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하고, 경제적 토대가 확립되어 사회가 그에 안주한다면 부르주아적 성향이 강해져 종국에는 혁명을 퇴색시킬 것이란 요지다.

마오는 종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영구혁명론을 이용했다. 류사오치(劉少奇), 덩샤오핑(鄧小平)으로 대표되는 관료집단을 공격하는 유용한 도구가 영구혁명론이었다. 관료집단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주자파(走資派)’로 매도당했다. 그들은 상당한 경제적 성과를 이뤘지만 마오의 대중 선동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역시 흡사 마오에게 영감을 받은 듯하다. 영구혁명론은 ‘영구 반(反)부패론’으로 치환됐고, 이를 통해 관료들을 통제하면서 자신의 장기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진핑이 부패 척결을 내세운 끊임없는 숙청 정치로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있지만, 공산당을 무력하게 만들고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가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부패 척결 운동을 벌이며 10년 넘게 공산당에 공포를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시진핑이 2012년 권력을 잡은 이후 공산당의 감찰기구인 기율검사위원회는 약 500만 명을 권력 남용 등 각종 범죄 혐의로 처벌했다. 공식 발표상 2017년 이후 매년 최소 50만 명이 징계를 받았는데 전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시절의 약 4배에 이르는 수치다. 지난 2023년에만 금융, 식품, 의료, 반도체,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고위 인사가 처벌받았다. 친강(秦剛) 외교부장과 리상푸(李尚福) 국방부장이 지난여름 실종됐다가 돌연 해임되면서 숙청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최근엔 입법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정부 자문기구들에서 군과 방위산업계 인사 12명이 축출돼 광범위한 군부 개편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시진핑은 2022년 10월 당 총서기 3연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부패와 싸우는 것은 자기 혁명의 가장 철저한 형태”라고 강조했다. 또 “부패가 일어나게 쉽게 하는 토양과 조건이 계속 존재하는 한 부패와의 싸움은 한 순간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이런 발언은 징계성 숙청을 시진핑과 그의 비전에 충성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무기한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웬웬앙 미 존스홉킨스대 정치학 교수는 “시 주석이 역설적인 정책 도구, 즉 영구적인 캠페인(부패 척결 운동)을 개발했다”고 WSJ 인터뷰에서 꼬집었다.

최근엔 ‘손가락 끝 형식주의(指尖形式主義)’가 중국 관료사회의 화두가 됐다. 책상에 앉아 손가락으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메시지 확인이나 형식적인 보고서 작성에 업무시간을 허비한다는 뜻이다. 보고서를 이곳저곳에 업로드하며 바쁜 척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지난달 18일 시진핑을 위원장으로 하는 공산당 네트워크보안및정보화위원회(網絡安全和信息化委員會)는 “형식주의와 관료주의를 피해야 한다”며 시 총서기의 정신을 관철할 것을 강조했다. ‘손가락 끝 형식주의 방지 및 통제에 관한 의견’이라는 통지문을 통해 “강국 건설과 민족 부흥을 위해 더 많은 간부들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했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달 22~24일 연속 ‘손가락 끝 형식주의’를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다.

시진핑 정부의 이런 반부패와 형식주의 비판을 통한 ‘관료집단 때리기’에 대해 외부의 시각은 대체로 비판적이다. 영구적 숙청으로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고 있지만, 공산당 당원들이 국가 정책에 소신을 가지고 대응하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경향을 강화할 것이란 분석이 대부분이다. 별다른 문제가 될만한 범법 행위가 아닌데도 처벌하는 행태는 관료들의 과도한 보신(保身)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듯 크고 작은 부패가 만연한 중국 관료집단이라 누구든 털기만 하면 꼬투리가 잡히게 된다. 이 때문에 반부패 혐의로 숙청된다는 것은 실제로는 시진핑의 눈 밖에 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손가락 끝 형식주의’ 비판은 마오 시절 벌인 대약진운동(1958~60)을 떠올리게 한다. 익히 알려진 대로 대실패로 끝났지만 지방 관리들은 철 생산량을 부풀려 보고해 서류상 이 운동은 대성공이었다. 마오의 동료였던 펑더화이(彭德懷)가 소신껏 이를 비판했다가 두고두고 고초를 겪었다. 시진핑은 이런 행태를 비판하고 있지만 반부패 드라이브는 제2의 펑더화이 출현을 더 힘들게 만드는 모양새다.

시진핑의 영구적 부패 척결 운동은 최고 권력자의 의지에 의존하는 일종의 인치(人治)다. 부패를 개인의 도덕적 실패 탓으로 돌리면서 중앙집권적이고 불투명한 통치 방식이 강화되고 있다. 비판적 전문가들은 공산당 지도부가 정말 반부패 실현을 원한다면 구조적 변화와 투명성 강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과 정부 고위 간부의 자산 공개와 같은 구조적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현재 청년 실업률 급상승, 부동산시장과 소비심리 위축, 국가부채 증가, 외국인 투자자의 중국 시장 외면 등 경제적 난관에 직면해 있다. 지금과 같은 반부패 드라이브로 관료들의 보신주의, 형식주의가 계속된다면 긍정적 성과를 낳을 가능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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