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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레이마니는 누구…동상 때문에 축구경기 취소, 여객기 격추 사건도

중앙일보

입력

"테러리스트(미국·이스라엘)" "영웅이자 순교자(이란)"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부대인 쿠드스군을 이끌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에 대한 상반된 평가다.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솔레이마니 사령관(당시 62)이 사망한 지 4주기를 맞은 지난 3일(현지시간) 그의 고향인 케르만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폭발이 일어나 95명이 사망했다.

이를 두고 워싱턴포스트(WP)가 사망한 지 4년이 지났어도 그와 관련된 '피의 보복'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WP는 "강력한 사령관이던 솔레이마니는 이란에서 영웅으로 여겨진다"면서 "그의 기일이 끔찍한 폭력을 불러일으켰다"고 평했다.

2020년 1월 7일 이란 테헤란 시내에 걸린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추모 포스터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월 7일 이란 테헤란 시내에 걸린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추모 포스터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생존 당시 솔레이마니는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 이어 이란 권력 서열 2인자로 불렸다. 20대 후반에 이슬람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창설된 이란 혁명수비대에 들어간 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고위직에 올랐다.

1998년부터 혁명수비대에서 해외작전을 담당하는 쿠드스군을 지휘했던 그는 전 세계 친(親) 이란 무장조직들을 지도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예멘 후티 반군, 시리아 정부군, 레바논 헤즈볼라까지 그의 영향을 받았다.

딸 "아빠 복수 누가" 묻자 "이란 국민 모두" 

CNN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솔레이마니를 '혁명의 살아있는 순교자'로 불렀다. '그림자 사령관', '암흑기사'라는 별칭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솔레이마니는 '무자비한 살인자'로 통했다. 미국 정부는 미군에 치명적인 특수 제작 폭탄을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이라크 저항군에게 제공한 게 솔레이마니의 부대였다고 지목했다. 이란 측은 이를 부인했다.

WP는 "이란에서 그는 적과 싸우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전사이자 철학자이자 신화적인 인물로 평가된다"고 전했다. 살아있었다면 2021년 대선에 출마한다는 예상도 나왔었다. 2019년 이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82%가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20년 1월 3일 이란 테헤란 시민들이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 사망에 항의하며 미국과 영국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20년 1월 3일 이란 테헤란 시민들이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 사망에 항의하며 미국과 영국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렇다 보니 그의 추도일엔 '피의 복수'를 다짐하는 분위기가 고조된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사망 후 추도식에서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딸이 하산 로하니 당시 대통령에게 "누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느냐"고 묻자 로하니는 "이란 모든 국민이 선친의 복수를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고 답했다. 이란 교육부는 솔레이마니의 일생과 공적을 교과서에 포함하기로 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지난해 추모식에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우리는 순교자 솔레이마니의 피를 잊지 않았고 앞으로도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미국은 우리가 순교자 솔레이마니의 피에 대해 복수를 할 것이 확실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또한 살인자와 가해자들은 편히 잠들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솔레이마니는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동쪽으로 820㎞ 떨어진 케르만 지역의 '순교자 묘역'에 묻혀 있다. 케르만은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사진은 지난 3일 추도식이 열린 케르만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이 놓인 모습. AP=연합뉴스

솔레이마니는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동쪽으로 820㎞ 떨어진 케르만 지역의 '순교자 묘역'에 묻혀 있다. 케르만은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사진은 지난 3일 추도식이 열린 케르만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이 놓인 모습. AP=연합뉴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진 미국 드론 공격에 솔레이마니가 폭사했을 때, 이란은 '국가가 주도한 테러 행위'라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또 미국과 우방국에 '피의 보복'을 하자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그의 사망 후 닷새 뒤, 이란은 미군과 연합군이 주둔 중이던 이라크 아인 아사드 공군 기지에 지대지 미사일을 퍼부었다. 작전명은 '순교자 솔레이마니'였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 보잉 737-800기종 여객기가 이란 테헤란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지 약 3분 만에 이란 혁명수비대가 쏜 방공미사일 2발에 맞아 추락해 폭발했다. 이 사건으로 승객과 승무원 등 176명 전원이 숨졌다. 당시 이란 혁명수비대는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미국이 쏜 미사일로 오인해 실수로 격추했다고 시인했다.

사망 1주기였던 2021년 1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랍에미리트(UAE)로 향하던 한국 선박이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일도 있었다. 1주기를 맞아 반미 분위기가 거세지고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고조된 때였다. 당시 혁명수비대는 한국 선박이 바다를 오염시켰다고 주장했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한 데에 대한 보복으로 나포했다는 해석이 많았다.

솔레이마니의 흉상이 이란의 축구 경기장에 놓인 모습.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팀이 이란 경기장에서 시합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해당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취소됐다. AP=연합뉴스

솔레이마니의 흉상이 이란의 축구 경기장에 놓인 모습.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팀이 이란 경기장에서 시합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해당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취소됐다. AP=연합뉴스

솔레이마니 사망은 국제경기에도 영향을 줬다. WP에 따르면 그의 사망 뒤 이란 곳곳에 동상·흉상이 세워졌는데 이란과 갈등을 빚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반발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사우디 축구 선수들은 이란 경기장에 솔레이마니의 흉상이 놓여있단 이유로 시합을 거부해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취소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사우디 측은 흉상을 치우지 않으면 출전할 수 없다고 했지만, 홈팀인 이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우디는 자국 남부와 예멘에서 활동하는 후티 반군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그를 원수로 여긴다. 앞서 2019년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 정유회사 아람코의 정유시설을 드론이 공격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배후로 솔레이마니가 지목됐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죽음을 추모하는 이란. 신화통신=연합뉴스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죽음을 추모하는 이란. 신화통신=연합뉴스

한편 솔레이마니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확장을 저지하는 데는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라크에서 IS 격퇴 작전을 벌일 때는 전장에 직접 나가 싸우기도 했다. 외신들은 그가 사망하면서 중동에서 IS를 축출하려는 노력이 좌절됐고, IS의 승리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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