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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치유한 갠더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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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원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가 비행기와 충돌해 붕괴한 2001년 9·11테러 아비규환. 누구도 희망을 말할 수 없었던 그 날 캐나다 북동쪽 끝 ‘뉴펀들랜드’의 바위섬 마을 갠더에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인구 1만이 채 안 되는 이 작은 마을에 약 7000명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 38대가 예기치 않게 불시착했다. 테러로 미국 영공이 닫히면서다. 소방관 아들 생사를 몰라 울먹이는 엄마, 중동 출신 탓에 의심받는 무슬림, 수화물 칸에서 굶어 죽을 뻔한 19마리 개·고양이·멸종위기종 등 대규모 승객이 들이닥쳤다. 누구든 타깃이 될 수 있었던 테러의 생존자들을, 갠더 주민들은 자신의 집까지 내주며 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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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10주기인 2011년 한 캐나다 작가 부부가 갠더를 방문해 현지인과 당시 승객들을 인터뷰하며 이런 실화가 밝혀졌다. 이를 토대로 탄생한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사진)’는 흥겨운 켈틱 음악이 잔치처럼 어우러진 따뜻한 작품. 브로드웨를 거쳐, 지난 연말부터 한국어판이 서울에서 공연 중이다. 매 공연 남경주·고창석·최정원·신영숙·차지연 등 주연급 출연진 12명이 갠더 주민·승객의 1인 다역을 쉴 새 없이 오간다. 주민 역할일 땐 ‘굳이 저렇게까지 친절해야 하나’ 싶은 배려가 승객한텐 목숨을 붙드는 동아줄이 된다. 역할 바꾸기가 가르쳐주는 ‘굳이’의 마법이다.

이후 갠더는 떠난뒤에도  잊지 못한 승객들의 재방문·기부가 이어지며 관광명소가 됐다. 관광 자원은 바로 선한 영향력. 각박할수록 먼저 건네는 다정함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된다. 궂은 일 많은 새해 벽초 갠더의 기적을 곱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