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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31년 만에 대중적자…이 곳처럼, 유연해야 수출이 산다 [무역 4.0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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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달 27일 경기 평택항의 기아 수출 부두에 선적을 앞둔 전기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전민규 기자

지난달 27일 경기 평택항의 기아 수출 부두에 선적을 앞둔 전기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전민규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 4ㆍ5 부두에는 에콰도르 수출을 앞둔 기아 전기차 EV6 수십대가 선적 대기중이었다. 지난해 평택항을 거쳐 해외로 나간 수출차 4대 중 1대(17만7264대)가 EV6를 비롯한 순수 전기차였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수출 호조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분기 만에 영업이익 20조를 돌파하며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다시 썼다.

반도체 부진 속에서 한국차의 선전은 돋보인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개발하고, 토요타와 폭스바겐보다 한발 앞서 전기차 시장을 선점했다. 현대차는 이를 활용해 아이오닉5ㆍEV6ㆍEV9 등 세계 시장 수요에 맞춰 다양한 전기차를 빠르게 개발해 냈다. 윌리엄 바넷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세계 경제는 대량생산ㆍ내연기관이 상징하는 선형 경제에서 벗어나 전동화ㆍ탈탄소가 중요한 순환 경제로 이동하고 있는데 이를 가장 먼저 파악한 게 현대차였다“고 분석했다.

중국 중심의 생산기지를 아세안과 인도로 옮기는 승부수를 띄운 것도 성공전략으로 꼽힌다. 미ㆍ중 갈등과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재편이 촉발하자 2021년 10월 중국 베이징 1공장을 매각했다. 이후 2022년 3월에 인도네시아 완성차 공장, 지난해 11월에는 싱가포르에 글로벌 혁신 센터를 가동했다. 또 떠오르는 인도 제조 기지를 연산 100만대 수준으로 키우고 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빠른 의사 결정’과 ‘과감한 투자’, ‘빠른 추격’ 능력이라는 강점이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급변기에 장점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무역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무역 4.0' 시대, 자동차 산업은 한국이 나아갈 해법을 보여준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ㆍ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무역 4.0은 고부가 가치, 제조업 융복합, 신성장 산업 등을 키우고 공급망 같은 대외적 위험에 빠르게 대응하는 무역 구조 대전환을 뜻한다. 1980년대까지의 경공업(무역 1.0), 1990년대까지의 중화학 공업(무역 2.0), 그 후 현재까지 이어져온 IT(정보기술) 산업(무역 3.0) 중심의 기존 구조를 넘어야 한다.

핵심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춘 변화다. 한국의 핵심 수출품은 부가가치를 높이는 변신이 필수다. 반도체는 CXL(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이나 PIM(프로세싱 인 메모리) 같은 차세대 반도체를 키우고, 자동차도 수소ㆍ전기차 같은 친환경 기술을 선도하는 식이다. 글로벌 상품 무역이 둔화하고 서비스ㆍ데이터 이동이 커지는 만큼 지식기반 상품이나 서비스의 수출을 늘려야 한다. 신약으로 대표되는 바이오ㆍ헬스, 소형모듈원자로(SMR) 같은 에너지, 세계적 인기가 높아지는 K콘텐트 등이 ‘미래 먹거리’ 후보군이다. 상품과 서비스가 결합한 방산ㆍ원전 산업 수출을 활성화하고, 석유화학ㆍ담수를 넘어선 태양광ㆍ폐기물처리 같은 친환경 플랜트에 집중하는 등 수출 형태 다양화도 필수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무역 4.0을 위해선 ▶새 컨셉트(양적 확대→가치 창출) ▶새 엔진(수출 성장 엔진 확대) ▶새 타겟(개도국ㆍ아시아 등 신규 수요층 겨냥) ▶새 플레이어(중소기업ㆍ스타트업 글로벌화) ▶새 수단(전자상거래 등 장착) 등 5가지 실행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장 실장은 “핵심 품목 중심의 국내 생산 거점 확보, 석유화학ㆍ철강 등의 그린 전환, 중국과의 보완적 산업 무역 시스템 같은 숙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한국을 둘러싼 무역 환경은 최근 1~2년 새 확 바뀌었다. 미국이 21년 만에 무역흑자 1위로 복귀하고, 중국은 31년 만에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등 양대 수출 시장의 지위는 달라졌다. 공급망 위기가 일상화했고,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확실성도 커졌다. 2년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른바 ‘줄타기ㆍ다변화’도 무역 4.0을 통해 넘어야할 과제다. 세계 주요국이 ‘미국-서방’과 ‘중국-러시아’ 두 진영으로 나뉘어 각자의 무역장벽을 높이는 경우 한국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블록간 보호무역조치가 시행될 경우 한국의 수출은 최대 10% 줄어들 전망이다. 화학과 기계ㆍ전기 등의 수출 감소 폭이 큰 것으로 추정됐다. 대미 수출이 떠오르고 있지만, 보호무역체제가 본격화하면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의미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전문가들은 ’커넥터(연결국)5’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미중 갈등으로 공급망이 양분된 세계에서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에 가까운 입장을 지키는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한 베트남ㆍ폴란드ㆍ멕시코ㆍ모로코ㆍ인도네시아를 지칭한다. 블룸버그는 “이들은 매우 다른 정치적 입장과 과거를 가졌지만 미국과 중국, 또는 중국ㆍ유럽ㆍ아시아 경제의 새로운 연결 고리가 됐다”고 짚었다.

“다들 한국과 우호 관계가 괜찮고 자원 교류 협력이 잘 돼 있는 나라들”(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 “인도네시아 등엔 니켈 같은 원자재가 많아 수출입뿐 아니라 공급망 대안으로도 중요하다”(신윤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미국의 보호무역에 대처하려면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허들 안에 있는 멕시코를 공략하는 게 하나의 방법”(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 특임교수) 등의 평가가 나온다.

실제 한국의 수출입에서 커넥터5가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고 있다. 지난해 폴란드로의 수출은 양극재ㆍ방산 호조 등에 힘입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멕시코는 지난해 중국을 제치고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가장 많은 상품을 수출하는 국가가 됐다. 베트남ㆍ인도네시아는 국내 기업들에 중국을 대신할 생산기지로 꼽힌다.

국내의 한 전기차용 영구자석 생산기업은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 베트남 공장 설립에 나서 올해 완공할 예정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국에 원재료 수입을 의존했다가 유럽ㆍ미국 판매에도 지장이 있을 거라고 봤다. 국내와 베트남 쪽을 모두 키워 원료ㆍ판로 모두 중국과 독립된 공급망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시장으로 무역 4.0의 돌파구를 찾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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