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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의사 공화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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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시험 만점자 인터뷰는 가능한 한 읽지 않았다. 왠지 줄 세우기에 동참하는 것 같고, 부럽기도 하고, 학원 홍보 기사에 가깝고, 시험 성적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취재 현장에서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역대급 불수능 결과 뒤 나온 ‘2024수능 만점자 1명, 서울대 의대 지원 불가’라는 뉴스를 클릭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못 간다는 말인가.

서울대 의대를 가려면 과학탐구에서 물리와 화학 중 하나를 응시해야 하는데, 만점자인 유모 씨는 생명과 지구과학을 택해 다른 의대에 진학한다는 내용이었다. 수능 만점자는 당연히 의대를, 무조건 서울대 의대를 가야만 하는 것이란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뉴스가 될 수 있었던 기사라 씁쓸하기도 했다.

그 뒤엔 ‘만점자 앞지른 표준점수 수석, 서울대 의대 지원 가능’이란 보도가 뒤따랐다. 표준점수가 높고 서울대가 요구한 화학을 택한 이모 씨는 다행히도 서울대 의대를 갈 수 있다는 후속보도였다. 두 응시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예상대로 의대 진학을 희망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11월 정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뉴스1]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11월 정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뉴스1]

대통령에 이어 여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검찰 출신이라며 야당에선 ‘검사 공화국’이라고 핏대를 높인다. 하지만 수능 만점자들의 행보를 보면 앞으로는 ‘의사 공화국’이라는 말이 사실에 더 부합할 듯하다.

재작년 수능 만점자 인터뷰도 다르지 않았다. 만점자 3명 모두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올해 역시도 비슷할 것이다. 반면 2년 전부터 석차가 공개된 변호사시험 수석 합격자들은 대형 로펌행을 택했다. 검사 인기가 확 식었다. 초등 의대반이 더는 신기한 일도 아니다. 의대 진학 희망자들이 많아지며 강남에선 “고3 학생 중 실제 문과생은 10명 정도뿐”이라는 고등학교도 나왔다. 수능 만점자를 연예인 다루듯 인터뷰한 방송과 유튜브 영상도 수십 개다.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다. 180석 가까운 의석을 지닌 문재인 정부도 의사들의 반발을 넘지 못했다. 대한의사협회 지도부는 삭발식을 거행하며 강경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곧 있으면 의사가 대통령이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대중은 언제나 그랬듯 ‘1등’을 선호할 것이다.

정부가 2028학년도 수능부터 찬반 문제가 일었던 ‘심화수학’(미적분Ⅱ·기하)을 도입하지 않기로 해 논란이다. 미적분Ⅱ는 과학 기술에 쓰이는 ‘미래의 언어’라며 국가 경쟁력 하락 우려까지 제기된다.

하지만 모두가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현실에서, 문제의 본질은 아닌듯하다. 어떠한 수학을 가르치든, 결국 가장 잘 푸는 학생은 의사가 될 것 아닌가. 수능 1등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게 차라리 현실적 대책일까. 의사 공화국의 시대, 우린 정말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