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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핵무력 포함 남조선 평정 준비"…대남노선 근본 전환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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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를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했다.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30일 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를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했다.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30일 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이 아니라 '전쟁 중인 적대적 국가’로 재정의하며 대남 정책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선언했다. 또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 한국을 핵으로 공격해 적화통일을 꾀할 수 있다는 의지 또한 숨기지 않았다. 북한은 그간 대남 핵공격 가능성을 꾸준히 내비쳤지만, 김정은이 직접 구체적인 '영토 완정(完整)' 의지를 피력한 건 처음이다.

이는 새해 한·미의 주요 선거를 앞두고 한반도 긴장 수위를 끌어올려 '몸값 높이기'를 이어가는 한편 핵·미사일 개발에 골몰하느라 민생고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결속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대한민국 것들과는 통일 성사될 수 없어"

김정은의 발언은 올해 성과를 결산하고 내년도 과업을 확정하는 연말 전원회의에서 나왔다. 31일 노동신문에 따르면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김정은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 통일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통일',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며 대남 기조 전환을 지시했다.

그러면서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한국)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며 고 강조했다. 직전 문재인 정부를 비롯,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이뤘던 남북관계 개선 성과나 통일 지향 정책 등 선대의 업적까지도 폄하한 것이다.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가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됐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1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전원회의에서 거수로 상정된 의안을 승인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가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됐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1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전원회의에서 거수로 상정된 의안을 승인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특히 김정은의 '핵무력을 동원한 남조선 전 영토 평정 준비' 지시는 윤석열 정부가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며 북한의 위성 발사에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 원칙적·비례적 대응을 하고 있는 데 대한 노골적 불만 표시로 볼 수 있다. 또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현정부의 대북 정책을 둘러싼 남남 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실제 김정은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36년 된 헌법 3조를 새삼 들먹이며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북남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한 립장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절박한 요구를 제기하고 있다"고 사실상 억지 주장을 내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유사시 무력통일, 대남노선 대전환 선언은 김정은이 내놓을 수 있는 역대 최대 대남 압박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특히 최고지도자가 사실상 선대의 통일정책 유훈까지 포기하는 선언을 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이에 따라 통일전선부 등 대남사업 기구들을 정리·개편하라며 조직 정비까지 지시, 이런 기조 전환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참석해 2023년 주요 성과를 총화하고 2024년도 당 및 국가사업발전방향과 방략에 대한 보고를 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참석해 2023년 주요 성과를 총화하고 2024년도 당 및 국가사업발전방향과 방략에 대한 보고를 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강대강, 정면승부"는 대미·대적의 투쟁원칙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강경한 기존 대미·대남 원칙도 재차 확인했다. 관련 부문에 "강대강, 정면승부의 대미·대적투쟁 원칙을 일관하게 견지하고 고압적이고 공세적인 초강경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까지는 현 기조를 유지한 채 핵 능력 강화에 몰두하며, 미국의 대선 결과를 보고 '핵담판'에 나설 전략적 타이밍을 노리겠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은은 최근 이뤄진 확장억제 조치들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한·미 핵협의그룹(NCG) 창설, 한·미·일 3자훈련 정례화, 미 전략자산인 전략핵잠수함(SSBN)과 전략폭격기(B-52H 및 B-1B)의 한반도 전개 등을 빠짐없이 거론하며 "자멸적 시도" "불순한 침략전쟁 기도의 발로" 등으로 비난했다. 또 "미국과 남조선것들이 만약 끝끝내 우리와의 군사적 대결을 기도하려 든다면 우리의 핵전쟁억제력은 주저 없이 중대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핵 전면전 불사'도 위협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이 한·미·일의 억제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을 내놓은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억제력이 사실상 작동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이날 기자단에 배포한 참고자료에서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한 북한의 도발 가능성도 상존한다"며 "향후 대미 강경 입장과 반미·반제 연대를 견지하면서 동시에 국제정세의 변화 기회 조성도 엿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경제 5개년 계획 실천도 강조

김정은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경제 분야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지난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경제발전 5개년 계획'과 관련해 "5개년 계획의 명백한 실천적 담보가 확보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경제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국가적인 행정경제사업 체계와 질서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금속·화학·전력·석탄·기계·철도 운수 등 각 분야에서 수행해야 할 중점 과제를 제시했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 8차 당대회에서 "(7차 당대회에서 내놓은) 5개년 전략이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고 사실상 실패를 자인하며 새로운 5개년 계획을 내놨다. 이 때문에 이번에는 '최고 존엄'의 위신을 세우는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계획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 분야에서 내놓을 만한 성과가 미진하다는 외부의 평가를 의식한 듯 "괄목할 성과"도 과시했다. 김정은은 이날 보고에서 "인민 경제 발전 12개 고지가 모두 점령됐다"며 알곡(103%), 전력·석탄·질소비료(100%), 유색금속(131%), 통나무(109%) 등 12개 항목에서 모두 100% 이상 초과달성 수치를 정확하게 밝혔다.

노동신문은 지난 27일 "각지 농업부문 일꾼들과 근로자들이 지력을 개선하고 물 보장 대책을 강하게 세우며 농기계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는 것을 비롯해 다음해 알곡 증산의 담보를 마련하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여나가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노동신문은 지난 27일 "각지 농업부문 일꾼들과 근로자들이 지력을 개선하고 물 보장 대책을 강하게 세우며 농기계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는 것을 비롯해 다음해 알곡 증산의 담보를 마련하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여나가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그동안 의문점으로 제기됐던 경제 분야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자체 평가 결과를 자신감 있게 밝히는 모습"이라며 "대외적으로 '신냉전' 구도를 활용하면서 내부적으로 조기에 5개년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제재와 코로나19 여파로 아사자가 나올 정도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실상을 고려하면 이런 수치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성과 초과달성을 선전하면서도 방역조치로 인한 제약, 제재 압박, 농사를 잘 짓지 못해 생긴 식량난 등을 언급한 건 신빙성에 의문을 남긴다. 김정은이 보고받은 수치를 그대로 믿고 있거나, 주민들에게 착시를 주입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 고조의 책임을 한국에 전가하며 사실상 도발을 예고한 북한의 이번 전원회의 결과에 대해 국방부는 “김정은 정권이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국방부는 이날 입장을 내고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국가, 나아가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고 내년에도 핵, 미사일 등 전략무기 증강과 정찰위성 추가 발사 등 유엔안보리가 금지하고 있는 도발 행위를 지속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북한의 발표는 권력 세습과 체제 유지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세습독재국가의 속성을 일관되게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주민 고통을 외면한 채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한국에 전가한 점을 겨냥한 것이다. 국방부는 또 “북한이 우리에 대한 핵사용을 기도한다면 한미동맹의 확장억제력과 3축 체계를 활용해 압도적으로 응징하겠다”며 “김정은 정권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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