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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입시 불균형에 뒤틀리는 교육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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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국적인 문과반 축소 추세…문과 소멸 걱정할 판

난이도 조절 실패의 왜곡과 후유증, 보완책 시급

대학입시 정책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고등학교 교육현장마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자립형 사립학교인 휘문고의 3학년 10개 학급 중 문과는 2개뿐이다. 내년에는 한 반이 더 줄어 운동부를 제외하면 문과생은 10명 수준이라고 한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문·이과 구분은 없지만, 대입 시험 수학 과목 중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면 문과, 미적분 및 기하를 선택하면 이과로 분류한다.

휘문고 등 강남·서초구의 자사고 5곳 59개 반 중 44개 반이 이과다. 이런 현상은 일반고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2019학년도 수능까지 30% 안팎이던 이과생 비중이 2024학년 수능에선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과로 수능시험을 치른 학생들이 대학의 문과에 대거 합격하는 ‘문과 침공’ 논란을 넘어 ‘문과 소멸’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학생들의 적성과 선호의 추세가 변화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 첨단 사회로 갈수록 이과 분야에 좋은 직장이 많아지니 이과생이 늘어나는 흐름을 탓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 기름을 부은 요인은 입시정책의 실패란 측면이 크다.

이미 이과 쪽으로 학생이 늘면서 내신은 물론이고 수능에서도 모수가 큰 이과 과목 선택 학생들이 더 좋은 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2022년 통합 수능 도입 이후 수학에서 이과 과목을 선택한 학생이 같은 원점수를 받아도 문과 수학을 선택한 학생보다 표준점수가 2~3점 높은 추세가 이어졌다. 이번 수능에서는 차이가 최고 11점까지 벌어졌다.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를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할 표준점수가 난이도 조절 실패로 오히려 혼란을 증폭시킨 셈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11점 차이가 난다면 학생 입장에선 처음부터 이과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는 가장 기본이 돼야 할 학생들의 선호·적성과는 거리가 멀다.

꾸준히 줄던 외고와 국제고 경쟁률이 올해 급등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일반고의 문과반 학생이 워낙 적어지다 보니 좋은 내신등급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한 학생들이 규정상 이과 과목 편성이 어려운 외고·국제고로 대거 유턴한다. 이들이 나중에 다시 문·이과 교차지원 전형을 통해 이과 전공으로 진학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니 단단히 꼬인 상황이다. 일찌감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도 증가 추세다.

최근 국가교육위원회가 의결한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에 따르면 2028학년도 수능부터는 수학의 선택과목 자체가 없어진다. 하지만 그 이전에라도 교육당국은 학생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준 난이도의 실패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 해 30만 명에 이르는 학생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