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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대전이 노잼도시? 서울 모방 다른 지방도시도 마찬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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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방소멸론을 바라보는 수도권 바깥 학자들의 시선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울·수도권 집중, 지방 소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은 오래됐다. 관련 책들도 많은데,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의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2015년)이 신랄했다. ‘서울민국 타파가 나라를 살린다’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서울-지방간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은 과거 일제 강점기의 동경-경성 간 관계와 너무도 비슷해 깜짝 놀랄 정도”라고 했다. 지방은 정치·경제·문화·교육·언론 등 전 분야에서 서울에 종속된 ‘내부식민지’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식민지 독립투쟁’을 주장했다.

2019년 ‘대전 방문의 해’ 계기로 인터넷 밈이 된 ‘노잼도시’
지역도시, 고유한 지역 정체성 찾는 자기만의 방법이 절실
제2의 도시 부산의 자치구가 소멸우려지역 … 지방소멸 전조

대전의 성심당 본점 건물. 1956년 문을 연 대전의 ‘전국구 빵집’이다. ‘대전의 성심당’이 아니라 ‘성심당의 도시, 대전’이 돼버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대전의 성심당 본점 건물. 1956년 문을 연 대전의 ‘전국구 빵집’이다. ‘대전의 성심당’이 아니라 ‘성심당의 도시, 대전’이 돼버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의 논쟁적인 저서 『지방도시 살생부』(2017년)도 있었다. 저자는 위기에 빠진 지방 중소도시는 정부 예산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고 재정 위기에 직면할 중앙정부는 ‘살생부’를 작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썼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도심 공동화(空洞化)를 가속하는 지방 도시의 외곽 개발을 멈추고 도시 중심에 인구를 모으는 ‘압축도시’였다. 도시 거점을 빽빽하게 만들어 인구 유출 충격을 줄이자는 아이디어인데, 지방의 메가시티 전략과 맥이 닿아있다.

요즘엔 저출산 문제를 논할 때도 수도권 집중이 도마 위에 오른다. 이달에 나온 한국은행 보고서의 이런 주장이 그런 예다.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과 ‘경쟁압력’을 낮추기 위한 지원과 대책이 필요하며 동시에 그 근저에 있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노동시장 이중 구조, 높은 주택가격, 수도권 집중)을 개선하는 ‘구조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한국은행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보고서, 2023년 12월)

최근 지방 연구자의 시각에서 지방 소멸 문제를 다룬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의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와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의 『대한민국 소멸보고서』인데, 전자는 도발적인 책 제목에 끌려서, 후자는 저자가 보내줘서 읽게 됐다. 각 저자의 문제의식이 다르고 제시하는 해법도 제각각이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지방소멸의 분위기가 생생했다.

지방선거 화두된 ‘노잼도시 대전’

지인이 대전에 오면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를 알고리즘으로 그린 이 그림이 인터넷 밈으로 떠올랐다. 어떤 선택을 따라가든, 결론은 성심당이다. [인터넷 캡처]

지인이 대전에 오면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를 알고리즘으로 그린 이 그림이 인터넷 밈으로 떠올랐다. 어떤 선택을 따라가든, 결론은 성심당이다. [인터넷 캡처]

먼저, 대전 얘기부터 해보자. 『대전은…』을 읽기 전에는 대전에 노잼도시 타이틀이 붙어있는지 미처 몰랐다. ‘지인이 대전에 오는데 어떡하지?’라는 질문에 한 소셜미디어 유저가 손글씨로 알고리즘 순서도를 그렸는데 이게 화제가 됐다. 몇 명이 오든, 집에 초대할 수 있든 없든, 지인이 매운 음식을 즐기든 말든(대전엔 유명한 두루치기 식당이 여럿이다), 알고리즘은 ‘성심당 들리고 집에 보낸다’로 끝난다. 이게 모방과 확산을 거듭해 ‘노잼의 도시 대전’을 상징하는 인터넷 놀이인 밈이 됐고 2017년 지역 신문에까지 소개됐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대전의 노잼도시 이미지 탈출이 지자체 후보들의 중요한 정책 어젠다가 됐을 정도다.

주혜진

주혜진

주혜진 박사는 2015년부터 2021년 8월까지 생산된 블로그 포스트를 대상으로 텍스트 마이닝을 했다. ‘노잼 도시’ 키워드를 포함한 문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대전’이었다. 2018년 처음 등장하더니 이듬해인 2019년 이후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됐다. ‘노잼도시 대전’ 이미지가 2019년에 굳어진 거다. 2019년은 대전시 출범 70주년이자 광역시 승격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대전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19년을 대전 방문의 해로 정하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선포식까지 했다. 덕분에 언론의 조명을 받았고 소셜미디어 유저의 관심도 끌었다. 저자는 “아는 사람만 알던 ‘지인이 대전에 온다는데 어떡하지’ 알고리즘이 이 시기, 강력한 확산 동력을 가진 밈이 됐다”고 썼다. “마치 성지순례처럼 밈의 발원지인 대전을 찾아 ‘노잼’을 확인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자신만의 밈을 만들어 널리 퍼트리는 것이다.”

저자는 밈의 복제와 확산에서 유머 코드를 읽어낸다. 난처함과 부끄러움을 담은 일종의 자기비하적 유머와 “이렇게 재미없으면서 ‘대전 방문의 해’를 선포하고 놀러오라고?”라는 식의 조롱도 담겨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노잼인 도시 대전을 놀리려고 의례에 참여한다. 밈의 감정과 유머를 공유하며 대전을 방문한다.”

성심당만 찾고 대전의 다면성 못 봐

김기홍

김기홍

노잼도시를 놀리는 놀이에 참여하기 위해 사람들이 실제로 대전을 찾았다. 하지만 이들은 대전을 복합적으로 경험하지 않고 성심당, 엑스포공원 등 한두 곳만 보고 떠난다고 저자는 추정했다. “확장성 없고, 짧게 머물며, 마치 특정 요소 하나만 소비하고 이를 블로그에 인증하는 듯한 대전 방문의 경향을 포착할 수 있다.”

주 박사는 “성심당만 찾는 사람들은 오히려 대전이란 장소와 더 멀어진다”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모든 도시에는 다양한 공간이 만든 장면과 사람, 사건이 있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이 확실한 사람에게 이러한 도시의 다면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해운대와 회 센터로 부산을, 성심당으로 대전을 기억한다.”

김기홍 부산대 교수는 부산이 고향이다. 산업연구원(KIET)에서 일하다 2003년 부산대로 내려왔다. 그는 “지난 20년은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대한민국 소멸보고서』는 저자도 밝혔듯이 “정교한 사회과학 책”은 아니다. 지방소멸이 얼마나 시급한 문제인지 독자들이 “정서적으로 느끼게” 하겠다는 게 기획의도다. 엄밀한 분석까지는 아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지방 교수의 절절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책의 몇 대목을 옮겨본다.

금수저, 은수저에 서울 수저까지

“청년들은 자조적으로 말한다. 금수저, 은수저와 함께 또 하나의 수저가 있다고. 바로 서울 수저다. 서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취업하고 나서도 자기 집에서 생활하며 부지런히 돈을 모을 수 있는데,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아이들은 저축은커녕 오르는 집세를 감당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이 아이들은 자조적으로 말한다. ‘지방러’라고.”

“대한민국 어디서도 심지어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부산에서도 서울 같은 인프라, 서울 같은 문화적 분위기, 서울 같은 기회를 찾을 수 없다.”

“나의 초라한 고향 부산. 이것은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대한민국 전 지역의 공통적인 문제다. 부산이 이 정도인데 다른 도시는 오죽하랴?”

부산이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2021년 전국에서 최초로 진입했고, 부산 영도구가 2011~2020년 인구 감소율 20.9%로 전체 기초자치단체 중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이 책 보고 알았다. 부산 영도구와 서구는 대도시의 자치구인데도 산업연구원이 2022년 발표한 소멸우려지역에 들어있다. 조선산업이 쇠퇴하면서 영도구 인구가 줄어 전체 학생 수 60명 내외에 선생님 수 15명 내외인 초등학교가 여럿이란다. 농어촌 얘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의 자치구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지방소멸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지방소멸 대책은 지방의 경쟁력을 높이는 거다. 지방 몇 개의 도시의 산업과 인프라를 몰아주는 선택과 집중으로 지방의 거점 도시를 키워야 한다는 지난달 한국은행의 ‘지역 간 인구 이동과 지역 경제’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두 저자의 해법은 좀 달랐다.

청주도 광주도 노잼 도시

주혜진 박사는 지방의 서울 모방을 이제는 그만하자고 주장한다. 끊임없이 서울을 기준으로 대전의 매력을 찾으려다 보니 ‘노잼의 도시’가 됐다는 거다. “대전만 노잼이 아니다. 청주도, 광주도 스스로를 ‘노잼의 도시’라 부른다.(중략) 모방과 노잼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서울이 되려고 서울을 모방해 왔지만, 서울이 될 수 없는 지방 도시들은 노잼일 수밖에 없고, 노잼에서 벗어나려 다시 서울을 좇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주 박사는 ‘고유한 지역 정체성’ 혹은 ‘지역 특색’을 찾는 ‘나만의 방법론’을 개발하라고 조언했다.

김기홍 교수는 저출산 대책보다 지방소멸 대책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그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정책 없이 인구만 증가시키는 정책을 취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도권 일극주의를 더 강화하게 된다”고 했다. 김 교수가 제안하는 핵심 정책은 세종시 이남으로 ‘기업, 대학, 공공기관을 동시에 이전’하는 거다. 쉽지 않은 일이다.

김포시 서울 편입엔 모두 부정적

김포의 서울시 편입에는 당연히 두 책 모두 부정적이었다. 『대전은…』에선 “질문이 잘못됐다”는 출판사 에디터의 글을 실었다. ‘서울시 김포구’는 결국 ‘서울 모방’이라는 지방도시의 잘못된 전략이라는 주장이겠다. 『대한민국 소멸보고서』의 김 교수는 “제발 제발 정신을 차리시라”고 했다. “메가시티는 서울이 아니라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등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추진하는 게 맞다.” 두 책이 전하는 김포의 서울 편입에 대한 입장을 해당 지역의 사투리로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런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냥 좀 냅둬유.” “머라카노? 뭔 소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