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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넥’들의 행진, 미 민주당의 오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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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필규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 특파원

이맘때쯤 미국 곳곳에선 크리스마스 퍼레이드가 열린다. 그중 올해 눈에 띈 것은 루이지애나주 웨스트 먼로에서 열린 ‘레드넥 퍼레이드’다. ‘레드넥(Red neck)’은 강렬한 햇볕 아래서 일하다 뒷목을 벌겋게 그을린 이들을 말한다. 남부의 가난하고 학력 낮은 백인 노동자를 비하하는 용어다.

그런데 이 지역에선 오히려 ‘레드넥’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축제 이름에까지 붙였다. 사슴 머리를 단 트랙터, 전동 바퀴를 낀 안락의자, 트리 장식을 얼기설기 붙인 몬스터 트럭 등, 일부러 레드넥 분위기에 맞춘 듯한 모습이었다.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거리에 선물을 던지면서 축제는 한껏 흥이 올랐다. 휴지나 칫솔, 라면 정도였지만 받는 이들은 열광했다. 30% 이상이 빈곤층인 이 지역에선 나름 진지한 선물일 수 있다고 CNN은 분석했다.

이달 초 미국 루이지애나주 웨스트 먼로에서 열린 ‘레드넥 퍼레이드’. [사진 CNN]

이달 초 미국 루이지애나주 웨스트 먼로에서 열린 ‘레드넥 퍼레이드’. [사진 CNN]

주민들은 ‘2024 트럼프’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나왔다. 자신들의 삶이 피폐해진 것은 지난 3년간 물가를 끌어올린 현 바이든 정권 탓이라고 했다. 내년 대선에서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돈줄 풀기는 트럼프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워낙 공화당 강세 지역이기도 하지만, 민주당 스스로 이런 분위기를 자초한 면도 있다.

민주당 주류 엘리트들은 어차피 ‘레드넥’은 표를 주지 않는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월세를 못 내 캠핑카를 개조해 살면서도 성조기 달아 놓고 트럼프만 바라보는 이들을 ‘트레일러 트래시(Trailer Trash)’라며 비웃었다. 이들이 사는 지역은 ‘플라이오버 스테이트(Fly-over States)’라고 불렀다. 웬만해서는 직접 가볼 필요 없는, 비행기 타고 건너가는 주라는 뜻이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런 민주당 엘리트들의 ‘거들먹거리는 문화’가 주요 선거에서 패하는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경멸의 대상이 된 계층은 물론이고, 이를 지켜본 중도층까지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반감을 만회하려 노조 파업을 지지하고, 중남부 재난 피해 현장도 수시로 찾는다. 하지만 1년 안에 얼마나 마음을 더 돌릴 수 있을진 미지수다.

총선을 넉 달여 앞둔 한국 역시 썩 분위기가 달라 보이진 않는다. 조금만 다른 이야기 하면 프레임 씌워 깎아내리고, 특정 계층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비하하는 일도 여전하다. 거들먹거리면 잠깐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선거 승리와는 멀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