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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동안 잠든 간토대지진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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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그간 누구도 읽지 않은 기록. 100년간 잠들어있던 기록이 세상에 나왔다. 일본군이 작성해, 세계 2차대전 중 미군 손에 넘어갔던 102쪽 분량의 보고서다. 워싱턴 근교 문서보관소에 잠들어있던 이 보고서가 다시 일본 땅을 밟은 건 1958년 4월이었다. 이후 방위성 사료실에 잠들어있던 것을 깨워낸 건 올해 68세 작가 겸 역사전문기자 와타나베 노부유키(渡辺延志·68)다.

“공부는 죽어도 하기가 싫었어요. 매일 책만 봤어요. 그중에서도 제일 재밌는 게 역사책이었어요. 공부를 안 하니 수학 점수가 5점밖에 안 되니까 도쿄대는 그래서 못 갔어요. 하하하.” 휴대폰 너머로 호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 100년 전 9월, 6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학살당했다. ‘독에 우물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로 시작된 참극이었다. 하지만 이 참상을 일본 정부는 최근까지 부인했다. “기록이 없다”는 거였다.

간토대지진 당시 일어난 조선인 학살을 기록한 일본 육군의 보고서. [사진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간토대지진 당시 일어난 조선인 학살을 기록한 일본 육군의 보고서. [사진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그런데 이런 일본 정부의 오랜 모르쇠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기사가 지난 14일 마이니치신문 온라인에 실렸다. 와타나베 손에서 발굴된 기록이다. 당시 육군성 산하로, 징병과 재향군인 업무를 맡았던 사이타마(埼玉)현 구마가야(熊谷) 연대구 사령부가 작성한 보고서로, 40여 명의 조선인 학살 기록이 담겼다.

이 자료는 어떻게 드러나게 된 걸까. 그는 “마치 약 100년 전 이 기록들이 읽어주길 기다린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013년, 아시히신문 기자로 간토대지진 90년을 맞아 취재를 시작했다. 의문이 싹텄다. 왜, 조선인은 학살당했을까. 자료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매일매일 모아둔 자료를 읽었다. 옛 문서를 뒤져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자 한 글자를 풀어내는 데 며칠이 걸리는 일이 수두룩했다. 그러던 올여름,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아 강연해달란 연락이 왔다.

이왕 하는 발표니 뭐 새로운 건 없을까, 갖고 있던 자료를 뒤졌다. 그에 손에 들린 건, 2년 전 일본서 출간해 지난 8월 우리말로도 발간된 『관동대지진, 학살부정의 진상』에도 언급했던 자료였다. 너무 읽기 힘들어 그간 읽지 않았던 이 보고서에 매달렸고, 결국 세상 밖에 알려졌다. 그는 이 내용을 또다시 책으로 엮어낼 참이다.

오랜 시간, 그가 일본의 부(負)의 역사 기록들과 마주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확실히 밝혀내지 않으면 또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어요. 이제 할 일은 이 자료에서 무엇을 해석하느냐고 봅니다. 거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