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류도 나았다" 혹한 꺾은 어싱 열기…뜨거운 '해운대 마법'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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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한파에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을 맨발로 걷는 시민이 많았다. 김민주 기자

지난 21일 한파에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을 맨발로 걷는 시민이 많았다. 김민주 기자

“약으로도 치료가 안 될 만큼 심하던 우울증세가 싹 사라졌어요.”
지난 21일 오후 1시40분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을 걷던 추모(60·여)씨는 “4개월째 매일같이 바다에 나와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시각 해변 기온은 영하 1도, 체감온도는 영하 6도까지 떨어졌다. 해변 끝 101층 빌딩인 엘시티에서 휘돌아 나온 빌딩풍이 해변 1.6㎞ 전체 구간을 할퀴는 탓에 더욱 춥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추씨 등 수십명이 맨발로 백사장을 걷고 있었다.

‘슈퍼어싱’ 성지 돼가는 해운대

맨발 걷기, 이른바 어싱(Earthing·접지) 열풍이 전국에서 불고 있는 가운데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이 한파 속에도 ‘슈퍼어싱’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면 운동 효과 이외에도 땅과 접지를 통해 피로 해소와 잔병 치료 등 효험을 볼 수 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얕은 파도가 몰려오는 백사장을 맨발로 것은 수퍼어싱(Super Earthing)이라 불린다. 단순 맨발 걷기보다 더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오전 겨울바다를 찾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맨발로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해변을 걷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14일 오전 겨울바다를 찾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맨발로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해변을 걷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날 해운대해수욕장을 거니는 이들은 모두 백사장과 바다 경계 지점에서 찰랑대는 바닷물을 맨발로 헤치고 다녔다. 해운대구 주민 이광영(65)씨는 “지난해 상반기 무렵부터 이곳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자주 나오는데, 통증 완화 등 효과가 꽤 있는 듯하다”고 했다. 자동차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에서 남편과 함께 온 황모(63ㆍ여)씨는 “불면 증세가 심해 매일 처방 수면제를 반알씩 먹는다. 그래도 잠을 못 자 몽롱한 날이 많았다”며 “바닷가를 맨발로 걷는 날엔 불안과 불면 증세가 크게 완화돼 약을 먹지 않고도 푹 잘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지난 21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본지 기자가 맨발로 해변을 걷는 어싱을 체험하고 있다. 김민주기자

지난 21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본지 기자가 맨발로 해변을 걷는 어싱을 체험하고 있다. 김민주기자

취재기자도 호기심에 맨발 걷기를 체험했다.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자 바람에 실려 온 모래가 정강이를 때렸다. 하지만 맨발에 닿는 젖은 모래 감촉은 부드러웠고, 바닷물도 생각만큼 차갑지 않았다. 엘시티 앞에서 시작해 반대편 끝 웨스틴조선 호텔까지 1.6㎞를 걸어가는 31분 동안 새파란 겨울바다빛에 마음이 안정되고, 몸엔 온기가 도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와 관련, 한성호 동아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맨발 걷기의 의학적 효과가 연구 등을 통해 증명된 적은 없는 것같지만, 많은 사람이 심신 안정 등 효과를 체감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어 “다만 발에 상처가 있거나, 당뇨 등 지병으로 감각이 둔한 사람은 세균 감염ㆍ동상 등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맨발 걷기는 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몰리는 맨발족에 상권도 기대감

어싱을 즐기는 맨발족이 해운대해수욕장에 몰리면서 주변 상권엔 기대감이 싹튼다. 해변 맞은편 구남로광장에 식당과 카페 등 상가가 밀집했고, 걸어서 3분 거리에는 전통시장인 해운대시장이 있다. 지난 8~10일 해운대 벡스코에서 가수 임영웅 콘서트가 열렸을 땐 공연을 전후해 관객이 어싱을 위해 해운대해수욕장으로도 몰렸다. 덕분에 이곳 상권이 깜짝 특수를 누렸다고 한다. 장영국 해운대시장 상인회장은 “어싱은 7, 8월 성수기 이외에도 방문객을 불러모을 수 있는 ‘사계절 콘텐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공중화장실 앞에 설치된 세족 시설. 맨발로 해변을 걸은 뒤 이곳에서 발을 씼을 수 있지만, 한파로 인한 출입로 빙결을 막기 위해 지난 20일부터 폐쇄했다. 김민주 기자

지난 21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공중화장실 앞에 설치된 세족 시설. 맨발로 해변을 걸은 뒤 이곳에서 발을 씼을 수 있지만, 한파로 인한 출입로 빙결을 막기 위해 지난 20일부터 폐쇄했다. 김민주 기자

해운대구도 관련 조례부터 정비하며 맨발족 모시기에 나섰다. 해운대구는 지난 12일부터 ‘해변 낚시 금지’ 등 내용이 담긴 해수욕장 관리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바늘 등 낚시도구가 맨발 걷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근 송정해수욕장에서도 해변 낚시가 금지되며, 이를 어기면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한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발을 씻을 수 있도록 세족장을 확충하는 등 어싱 관련 편의시설을 확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맞은편에 있는 구남로광장. 식당과 카페 등 상권이 밀집한 해수욕장 인근 상권에선 맨발걷기 유행에 따라 상권도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 해운대구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맞은편에 있는 구남로광장. 식당과 카페 등 상권이 밀집한 해수욕장 인근 상권에선 맨발걷기 유행에 따라 상권도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 해운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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