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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120만원인데 핫도그가 3만원"…유럽 성탄절 물가지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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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크리스마스를 앞둔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코벤트가든 크리스마스마켓에 사람들이 지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크리스마스를 앞둔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코벤트가든 크리스마스마켓에 사람들이 지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즐기려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야 할 지경"

최근 영국의 지역신문 리버풀 에코에 실린 논평의 일부다. 영국 런던, 리버풀, 에든버러 등에서 열리고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의 터무니없는 상품 가격을 비꼰 것이다. 리버풀 에코에 따르면 햄버거 단품 1개 가격은 12파운드(1만7000원), 독일식 소시지 브라트부르스트(Bratwurst) 가격도 10파운드(1만 6000원)에 달한다. 유럽 국가의 경기 침체와 고물가 기조가 소비자 가격에까지 고스란히 반영됐다.

크리스마스 전후 기간은 소비가 정점을 찍을 '대목'에 속한다. 특히 갖가지 볼거리·즐길 거리를 앞세운 유럽 각국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국내외 사람들을 끌어모아 소매업자들이 막대한 매출을 올리는 기회다. 때문에 유럽 각국에선 성탄절 소비 동향이 이듬해 경기 전망을 가늠하는 잣대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살인적 물가는 물론 경기 회복이 더뎌질 거란 우려까지 증폭되면서 유럽 소비자들은 지갑을 더 닫고 있는 모양새다. 크리스마스 특수가 사라지는 등 암울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내년 유럽의 경기도 순탄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크리스마스 시즌 매출 5% 하락

최근 독일소매업 연맹이 350개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독일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11~12월) 매출은 1200억 유로(172조원)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명목상으로는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 매출은 5.5% 감소하는 셈이다.

독일소매업 연맹은 "올해 가장 소비가 강력하게 일어나야 할 크리스마스 기간에 큰 혜택이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 독일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은 편이다. 독일연방 통계청 데스타티스에 따르면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은 10월 3.8%로 나타났다. 두 달 연속 하락하긴 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다른 나라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컨설팅업체 PWC가 이달 초 내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인 3명 중 1명이 올해 크리스마스 지출을 줄인다고 답했다.

유로뉴스는 특히 고물가 상황이 매우 심각한 헝가리의 크리스마스 마켓 상황을 짚었다. "헝가리 월 평균 임금이 830유로(약 120만원)인데, 핫도그가 21유로(약 3만원)에 달한다"며 "현재 헝가리 일반 가정의 수입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가격"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집계한 유로존(유로화 사용국가 20개국)의 이달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0이다. PMI가 50 이하면 해당 분야 경기 위축을 뜻하는데, 유로존 PMI는 7개월 연속 50 아래를 밑돌고 있다.

영국 버밍엄의 프랑크푸르트 크리스마스 마켓 내 독일식 소시지 브라트부르스트(Bratwurst) 가격이 10파운드(1만 6000원)에 달한다. 사진=X(옛 트위터) 캡처

영국 버밍엄의 프랑크푸르트 크리스마스 마켓 내 독일식 소시지 브라트부르스트(Bratwurst) 가격이 10파운드(1만 6000원)에 달한다. 사진=X(옛 트위터) 캡처

중고품 선물에 더 싼 국가로 여행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은 '대체재' 찾기에 나섰다. 프랑스 현지매체 프랑스앵포는 프랑스인들이 조금이라도 저렴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벨기에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벨기에의 낮은 부가가치세 때문에 프랑스에서 평균 150~200유로(21만~28만원)에 달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벨기에에서는 14유로(2만원)밖에 하지 않아서 트리 원정 구매에 나서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프랑스 물가상승률은 올해 3월 전년 대비 17.7% 치솟아 정점을 찍고, 여전히 10%대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조사기관 CSA에 따르면 올해 프랑스 국민의 평균 크리스마스 예산은 549유로(78만원)로 전년보다 3% 감소했다. 응답자의 24%는 당장 의류 구매 비용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크리스마스 기간 소비를 줄이겠다는 응답은 프랑스 외 유럽 다수 국가에서도 나타났다. 글로벌 구인광고 전문기업 아데빈타가 벨기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유럽 소비자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64%가 크리스마스 기간 지출을 줄이고 새 물건 대신 중고품을 구매하겠다고 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언스트앤영(EY)의 마이클 렌즈 연구원은 "크리스마스 특수를 위해 소매업체가 가격 인하와 할인 캠페인을 통해서라도 소비자 지갑을 열려고 할 것"이라며 "그러나 이는 외려 마진(원가와 판매가 차액)을 잠식하는 등 지속가능한 모델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뉘른베르크 시장 결정연구소(NIM)도 "당분간 민간 소비가 경제를 탄탄하게 뒷받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한 구두 가게 앞에 연말 할인 행사를 알리는 문구가 붙어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한 구두 가게 앞에 연말 할인 행사를 알리는 문구가 붙어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다만 EU 내 유로존 20개국 인플레이션이 진정세로 돌아선 만큼, 내년 초엔 소비심리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달 EU 통계기구 유로스타트가 발표한 11월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같은 달 대비 2.4% 올랐다.

10월 CPI가 전년 같은 달 대비 2.9% 오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낮아진 수치다. 이는 2021년 7월 이후 최저치이기도 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런 추세라면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비자로의 비용 전가가 다소 진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9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바실리카 광장 내 한 크리스마스마켓 상점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사고 있다. AP=연합뉴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9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바실리카 광장 내 한 크리스마스마켓 상점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사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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