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 회장제 도입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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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행장 회장승계 경영액 잇는 이점/역할분담 어려워 옥상옥 비판도
은행의 회장제 도입문제가 금융계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내년 2월 주총때 대규모의 인사태풍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임기가 끝나는 은행장급만 10명에 달해 회장제 도입여부가 이들의 거취와 관련해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6개 시중은행은 이미 공동으로 회장제 도입을 추진,정관개정안까지 만들어 재무부에 건의해 놓은 상태로 성사될 경우 회장·은행장·임원의 승진인사가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은행들이 회장제 도입을 추진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중은행들은 오래전부터 은행장이 퇴임후 회장직에 앉음으로써 그들이 수십년간 쌓은 경험과 전문지식을 은행경영에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또 은행이 금융시장개방을 앞두고 대형화·금융계열화함에 따라 은행장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금융전문그룹으로서의 모습을 갖추려면 회장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명분외에도 회장제가 도입될 경우 은행장들이 중임에 연연하지 않고 단임한뒤 회장직에 물러앉음으로써 인사체증을 덜어보자는 속셈도 깔려있다.
시중은행들이 모범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일본 도시은행의 예.
일본 도시은행들은 수십년전부터 취체역회장제도를 만들어 회장이 은행장(두취)의 경영자문 및 대외활동을 전담케 하고 있다.
또 회장을 지낸뒤에는 은퇴하기전 고문에 추대돼 은행장→회장→고문을 차례로 거치도록 함으로써 경영의 맥을 잇게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국내은행들이 회장제를 도입하는데는 현재로선 걸림돌도 적지 않다.
한일은행의 경우 연초에 정관을 바꿔 회장제를 도입하려 했으나 국회의원을 지낸 정모씨가 회장에 들어앉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무산된 적이 있다.
회장제도입의 목적이 은행장의 회장직 승계를 보장함으로써 경영의 맥을 잇고 인사숨통도 틔워보자는 것인데 외부인사가 자리를 넘보자 백지화시킨 것이다.
또 제일은행과 서울신탁은행은 지난 85년 2월 회장제를 도입했으나 1년반만에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당시 두 은행은 나란히 상근회장제를 도입함으로써 금융계의 관심을 모았으나 회장이 분기마다 한번씩 열리는 이사회만 주재하는등 역할이 모호해 유명무실하게 돼 버렸다.
현재 국내에서 회장제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은행은 장기신용은행 뿐이다.
장기신용은행은 일본 도시은행의 예를 본따 은행장을 지낸뒤 이사회 회장직에 앉도록 하고 있는데 회장은 이사회 및 주주총회의 의장을 맡고 있으며 대외 섭외업무를 담담,은행장과의 역할분담이 큰 잡음없이 이뤄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의 회장제도입은 이같은 전례들 때문인지 무척 조심스럽게 추진되고 있다.
외부에서 또다시 회장자리를 넘볼 수 있는데다 은행장들이 전면에 나서 이를 추진할 경우 「제머리 깎으려 든다」는 비난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연초에 도입한 복수전무제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때 회장직이 「옥상옥」이 될 우려도 없지 않다.
아무튼 내년초 은행인사는 회장제의 도입여부에 따라 모습이 크게 달라질 전망인데 회장제도입이 「자리」하나를 더 만드는데 그쳐서는 안되고 은행경영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게 금융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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