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향한 “윤석열 아바타”라는 비판에 동의하기 힘들다.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에서 오래 호흡을 맞춰 자타 공히 최측근이자 2인자지만 스타일 등에선 상반되는 점이 많아서다. 윤 대통령이 보스(boss)형이라면 한 장관은 지독하리만큼 깔끔한 관리형이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과의 비동의 강간죄 공방에서 보듯 젠더 이슈에 대한 이해가 높고, 단체 사진 찍을 때면 가장자리에 서는 등 탈권위적 연출도 능하다. 오십을 갓 넘었지만 ‘꼰대’보다는 ‘젊은 오빠’ 분위기다.
“정치를 한 적 없는데, 무슨 비대위원장을 하느냐”는 지적도 많다. 글쎄, 법무부 장관으로 1년 반 동안 보인 모습이 사실 정치 아닌가. 현재 여권에서 한동훈보다 센 스피커가 있나. 그렇게 정치 오래해 잘 아는 사람이 많은데 여의도 정치판이 이 모양인 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한동훈은 정치를 잘 몰라 안 돼”라는 비난의 속내는 “내가 한동훈과 연결 고리가 없어 불안해”일지 모른다.
총선 앞 한동훈 비대위 출범할 듯
윤 대통령과의 관계가 성공 좌우
'김건희 리스크'도 피하지 말아야
실제로 여권에서 ‘한동훈 비토론’을 피력하는 이들 중엔 영남 중진이 적지 않다. 겉으론 “선대위원장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게 더 낫다” “대선주자를 벌써 쓰는 건 아깝다”고 말하지만 저변에 깔린 건 공천 불안감이다. 무기력한 김기현 체제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도 ‘낯선 외부 사람이 들어와 내 배지 날아가느니 그나마 알던 사람이 낫다’는 심리가 컸다. 그걸 숨기려다 보니 “용핵관·검핵관이 설칠 것”이라는 민주당 공세를 그대로 따라하곤 했다. 김기현 전 대표가 사퇴 직전 이준석 전 대표와 전격 회동할 때 모 영남 중진도 배석했다고 한다. 다들 살려고 이리저리 줄을 대는 이 시기, 느닷없는 ‘한동훈 비대위’의 출현은 누군가에겐 재앙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한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옹립하는 일련의 과정은 촌스럽기 그지없다. 때론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게 절차적 정당성 아닌가. 지난 3월 전당대회가 나경원ㆍ안철수 찍어 누르기로 흉흉했다면 이번엔 ‘한동훈 몰아가기’가 극심했다. 15일 오전 국민의힘 의총 이후 지도부 한 명이 용산 대통령실에 갔다 오고, 그 뒤 부랴부랴 당협위원장 연석회의가 잡혔다. 누가 봐도 ‘용산 개입설’을 부추길 만한 소재다. 일부 신(新)윤핵관은 “한동훈 내정으로 써도 된다”는 소리를 기자들에게 흘리기도 했다. 이들이 이렇게 총대를 메고 나선 데엔 당무에 어두운 한 장관 대신 향후 공천 국면에서 실권을 휘두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비대위 출범 전부터 ‘한(韓)핵관’이 출몰해 설친다면 혁신은 해보나 마나다.
여권은 한 장관을 내세우는 주된 이유로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비교 우위를 꼽는다. 여야 차기 주자 지지율 1위인 둘을 맞붙여 총선 구도를 ‘낡은 운동권’ 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그보다 세간의 관심은 한 장관과 윤 대통령의 관계다. 바로 현재 여권 위기의 본질이라는 수직적 당정 관계를 어떻게 푸느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은 누구보다 편하게 만날 수 있다. 허심탄회한 대화 속에 수평적 관계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라고 하지만 권력이 언제 그토록 순진했던가. 김건희 여사와도 친밀했던 한 장관이기에 의구심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여 이 시점, 정작 중요한 건 잡음 없이 한동훈을 추대하느냐가 아니라 한동훈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큰 형님처럼 자신을 품어 주었던 윤 대통령에게 때론 쓴소리하고, 설득할 수 있는지다. 특히 여권엔 금기어가 된 김 여사에 대한 입장 표명이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디올 백 논란에 대해 예전처럼 “잘 알지 못한다”고 꽁무니를 뺐다가는 그날로 ‘한동훈 비대위’는 휘청거릴 게 뻔하다. 김건희 특검법은 용납할 수 없다 해도 ‘김건희 리스크’를 제어할 복안을 제시해야 한다. 제2의 6.29 선언을 하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서둘러 접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