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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민우의 시시각각

한동훈식 6.29 선언은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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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부장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향한 “윤석열 아바타”라는 비판에 동의하기 힘들다.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에서 오래 호흡을 맞춰 자타 공히 최측근이자 2인자지만 스타일 등에선 상반되는 점이 많아서다. 윤 대통령이 보스(boss)형이라면 한 장관은 지독하리만큼 깔끔한 관리형이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과의 비동의 강간죄 공방에서 보듯 젠더 이슈에 대한 이해가 높고, 단체 사진 찍을 때면 가장자리에 서는 등 탈권위적 연출도 능하다. 오십을 갓 넘었지만 ‘꼰대’보다는 ‘젊은 오빠’ 분위기다.

군에서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진 고(故)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15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군에서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진 고(故)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15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를 한 적 없는데, 무슨 비대위원장을 하느냐”는 지적도 많다. 글쎄, 법무부 장관으로 1년 반 동안 보인 모습이 사실 정치 아닌가. 현재 여권에서 한동훈보다 센 스피커가 있나. 그렇게 정치 오래해 잘 아는 사람이 많은데 여의도 정치판이 이 모양인 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한동훈은 정치를 잘 몰라 안 돼”라는 비난의 속내는 “내가 한동훈과 연결 고리가 없어 불안해”일지 모른다.

총선 앞 한동훈 비대위 출범할 듯
윤 대통령과의 관계가 성공 좌우
'김건희 리스크'도 피하지 말아야

실제로 여권에서 ‘한동훈 비토론’을 피력하는 이들 중엔 영남 중진이 적지 않다. 겉으론 “선대위원장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게 더 낫다” “대선주자를 벌써 쓰는 건 아깝다”고 말하지만 저변에 깔린 건 공천 불안감이다. 무기력한 김기현 체제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도 ‘낯선 외부 사람이 들어와 내 배지 날아가느니 그나마 알던 사람이 낫다’는 심리가 컸다. 그걸 숨기려다 보니 “용핵관·검핵관이 설칠 것”이라는 민주당 공세를 그대로 따라하곤 했다. 김기현 전 대표가 사퇴 직전 이준석 전 대표와 전격 회동할 때 모 영남 중진도 배석했다고 한다. 다들 살려고 이리저리 줄을 대는 이 시기, 느닷없는 ‘한동훈 비대위’의 출현은 누군가에겐 재앙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한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옹립하는 일련의 과정은 촌스럽기 그지없다. 때론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게 절차적 정당성 아닌가. 지난 3월 전당대회가 나경원ㆍ안철수 찍어 누르기로 흉흉했다면 이번엔 ‘한동훈 몰아가기’가 극심했다. 15일 오전 국민의힘 의총 이후 지도부 한 명이 용산 대통령실에 갔다 오고, 그 뒤 부랴부랴 당협위원장 연석회의가 잡혔다. 누가 봐도 ‘용산 개입설’을 부추길 만한 소재다. 일부 신(新)윤핵관은 “한동훈 내정으로 써도 된다”는 소리를 기자들에게 흘리기도 했다. 이들이 이렇게 총대를 메고 나선 데엔 당무에 어두운 한 장관 대신 향후 공천 국면에서 실권을 휘두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비대위 출범 전부터 ‘한(韓)핵관’이 출몰해 설친다면 혁신은 해보나 마나다.

여권은 한 장관을 내세우는 주된 이유로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비교 우위를 꼽는다. 여야 차기 주자 지지율 1위인 둘을 맞붙여 총선 구도를 ‘낡은 운동권’ 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그보다 세간의 관심은 한 장관과 윤 대통령의 관계다. 바로 현재 여권 위기의 본질이라는 수직적 당정 관계를 어떻게 푸느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은 누구보다 편하게 만날 수 있다. 허심탄회한 대화 속에 수평적 관계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라고 하지만 권력이 언제 그토록 순진했던가. 김건희 여사와도 친밀했던 한 장관이기에 의구심은 더 클 수밖에 없다.

2020년 2월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된 한동훈 장관을 격려 방문했던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2020년 2월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된 한동훈 장관을 격려 방문했던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하여 이 시점, 정작 중요한 건 잡음 없이 한동훈을 추대하느냐가 아니라 한동훈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큰 형님처럼 자신을 품어 주었던 윤 대통령에게 때론 쓴소리하고, 설득할 수 있는지다. 특히 여권엔 금기어가 된 김 여사에 대한 입장 표명이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디올 백 논란에 대해 예전처럼 “잘 알지 못한다”고 꽁무니를 뺐다가는 그날로 ‘한동훈 비대위’는 휘청거릴 게 뻔하다. 김건희 특검법은 용납할 수 없다 해도 ‘김건희 리스크’를 제어할 복안을 제시해야 한다. 제2의 6.29 선언을 하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서둘러 접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