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코로나 3년 '면역 빚' 갚는 중"…유례없는 독감 폭증, 왜

중앙일보

입력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이 이례적으로 연중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환자가 5년 만에 최고로 늘었다. 15일 질병관리청은 “12월 둘째 주(3~9일) 외래 환자 1000명당 인플루엔자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61.3명”이라며 “최근 5년간(19~23년)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질병청이 의원급 196곳을 통해 인플루엔자 의사환자 표본감시를 했더니 11월 셋째 주에만 해도 외래환자 1000명당 37.4명이던 환자가 넷째 주 45.8명으로 늘더니 12월 첫째 주 48.6명으로 올랐다. 그리고 1주일 만에 가파르게 증가해 61명을 넘어선 것이다. 질병청에 따르면 최근 환자 최고점은 2019년 49.8명, 2020년 2.8명, 2021년 4.8명, 2022년 60.7명 등으로 올해 기록을 경신했다.

7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소아과가 붐비고 있다. 뉴스1

7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소아과가 붐비고 있다. 뉴스1

연령별로 보면 13~18세에서 133.4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7~12세(120.1명), 19~49세(78.9명), 1~6세(49.5명), 50~64세(34.5명). 65세 이상(15.3명) 등의 순이다. 병원 218곳을 대상으로 하는 표본감시에 따르면 입원환자도 12월 둘째 주 1047명으로 전주(797명)보다 31.4% 늘었다. 65세 이상이 전체의 40.3%를 차지한다.

통상 독감 유행은 11월 시작돼 이듬해 3~4월 끝난다. 올해는 그러나 이례적으로 독감 기세가 연중 꺾이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해 9월 이후 독감 유행주의보가 1년 내내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건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팬데믹 시기 3년간 쌓인 ‘면역 빚(immune debt)’을 한꺼번에 갚는 것으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 강력한 방역 조치로 코로나19 뿐 아니라 다른 호흡기 감염도 크게 줄었는데 감염으로 얻게 되는 자연 면역력도 덩달아 감소하면서 갚아야 할 빚처럼 한꺼번에 다수가 감염된다는 것이다.

양현종 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 총무이사(순천향대 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10명 중 8명에게 항체가 있으면 그 집단에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중간에 끊긴다”라며 “코로나 기간 독감 환자가 역대 최저로 떨어졌는데 접종률은 그대로이고 자연 감염으로 항체를 얻은 이들은 적다 보니 바이러스가 번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진선 질병관리청 감염병관리과장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인데 지역사회 면역 수준이 떨어진 게 가장 큰 이유”라며 “올 초 방역 수준이 완화되며 대면 접촉이 늘고 개인 위생 수칙에 대한 긴장감이 떨어진 데다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좋은 시기 등이 맞물린 영향도 있다”라고 말했다.

흔히 독감 치료제(항바이러스제)로는 먹는 약인 타미플루와 주사제인 페라미플루를 쓰는데 “어떤 치료제를 선택해야 하느냐”고 고민하는 환자들도 많다.

7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소아과에 독감 예방 무료 접종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7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소아과에 독감 예방 무료 접종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타미플루는 알약이나 현탄액 형태로 하루 2번 5일 동안 10번을 먹어야 한다. 페라미플루는 정맥 주사제로 15분 이상 한 차례 맞으면 된다. 이렇다 보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1회 투여로 호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페라미플루를 좀 더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다. 한 엄마는 인터넷 블로그에 “타미플루약은 의료보험이 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적다”라면서도 “수액 주사는 5일간 약을 먹을 필요 없이한 번에 효과를 볼 수 있다. 해열 효과도 수액이 더 좋다고 한다”라고 적었다. 주사제는 비급여라 병원마다 10만원 안팎 돈을 내야 하지만 이 엄마는 “실비 보험이 있다면 보험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보험이 있다면 주사 맞는 걸 추천한다”고 썼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페라미플루는 제조사에서 2011년 건강보험 급여 등재를 한 차례 신청했다가 철회한 이후 비급여로 유지되고 있다.

정성관 우리아이들병원 이사장은 “설명서를 배부하며 환자들에게 선택권을 드리는데 10명 중 8명은 수액제를 원한다”라며 “먹는 약은 구토 등 위장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수액제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 고열로 병원에 오는데 독감 치료제만 쓰는 게 아니라 해열 수액 등을 같이 맞히니 컨디션 회복이 더 빠르다고 느끼는 것도 있는 듯하다”고 전했다.

“수액이 훨씬 효과가 좋으니 무조건 수액을 맞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효과는 같기 때문에 이처럼 특정 치료제를 맹신하는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예진 대한소아감염학회 부회장(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호흡부전 등으로 약을 못 먹고 구토가 심하거나 입원해야 하는 중한 환자에는 주사제를 써야 할 수 있지만 어떤 약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둘 다 치료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예방 백신”이라며 “인플루엔자는 4월까지 계속 유행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백신을 안 맞았다면 맞는 게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특히 65세 이상과 생후 6~59개월 소아나 임신부 등은 독감 고위험군에 속해 접종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권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