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네덜란드 '반도체 동맹' 공식 명문화…핫라인도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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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네덜란드가 ‘반도체 동맹’을 공식 명문화했다. 군사안보 분야 ‘동맹’수준으로 경제안보 분야인 반도체 문제에서 평상시 긴밀히 협력하고 공급망 위기 시 공동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양국 정부는 ‘반도체 대화' 채널을 신설하고, 핵심 품목 공급망 협의체 구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계기로 마크 루터 총리와 13일(현지시간) 헤이그 총리 집무실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이런 내용이 중심이 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총 20개 항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정부와 네덜란드 왕국 정부 간 공동성명’에는 반도체 분야 외에 외교·안보 분야와 신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방안이 담겼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반도체 장비기업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반도체 장비기업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반도체 동맹은 경제협력(11~15항) 분야에 명시했다. ‘반도체 가치 사슬에 있어 양국의 특별한 상호 보완적 관계를 인식하고, 정부·기업·대학을 아우르는 반도체 동맹 구축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기술한 대목이다. 한국이나 네덜란드가 국가 간 외교 관계에서 반도체 동맹을 명문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반도체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국가 경제는 물론 안보까지 좌우하는 전세계적인 전략 물자로 부상했다는 공통된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반도체 동맹 구축을 위해 양국은 외교 당국 간 연례 ‘경제 안보 대화’를 신설하기로 했다. 특히 양국 산업 당국은 반도체 정책을 조율하기 위한 ‘반도체 대화’ 기구를 따로 두기로 했다. 아울러 핵심 품목 공급망 협력 양해각서(MOU)를 바탕으로 한 공급망 협의체 구성도 추진된다.

외교 안보 분야 협력(5~10항)도 강화한다. 양국은 기존 외교장관 간 전략대화를 확대해 격년 주기로 외교·산업부 장관이 참여하는 ‘2+2 대화체’를 만들기로 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현지 브리핑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공급망, 경제안보, 수출통제 분야 전략 공조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양국은 외교차관보급 정책협의회를 포함해 한-네덜란드 경제공동위원회, 혁신 공동위원회, 범부처 사이버정책협의회 등 기존에 있기는 하지만 부정기적으로 개최됐던 각종 협의 채널을 연례화했다. 또 ‘국방 협력에 관한 MOU’를 체결해 양국 국방 협력의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양국 간 국방 협력 증진의 구체적 조치로서 한국군은 2025년 네덜란드와 독일이 주최하는 다국적 통합 방공 및 미사일 방어 관련 지휘소 훈련(Joint Protect Optic Windmill)에 옵서버로 참석하기로 했다.

미래전략 기술 협력(16~18항)에 있어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네덜란드 측과 체결한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s Technology) 협력 MOU가 대표적이다. 인공지능, 양자, 차세대 네트워크 분야의 협력 강화가 골자다. 양국은 인적·문화 교류의 증진(19~20항)과 관련해 청년 교류 기회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워킹홀리데이 참가자 수를 연 100명에서 200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박물관 간 소장품 교류, 공동 큐레이션 간 문화기관 교류, 아티스트 단기 체류 지원 프로그램도 더욱 활성화해 나갈 예정이다.

정상회담 뒤 윤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헤이그 빈넨호프에 있는 리더잘(기사의 전당)과 이준 열사 기념관을 방문했다. 리더잘은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곳으로 고종 황제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이준·이상설·이위종 특사를 파견했던 장소다. 당시 이들은 현지에서 을사늑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일제의 침략을 고발했으나 일본의 방해와 열강의 냉담한 태도로 대한제국이 독립국임을 인정받지 못했다. 비분강개한 이준 열사는 당시 머물고 있던 헤이그 드 용 호텔에서 분사했는데, 이곳이 지금의 이준 열사 기념관이다. 윤 대통령은 이준 열사가 사용하던 방과 침대, 고종 황제가 수여한 특사 신임장 등 전시물을 관람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부터),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왕궁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내외 네덜란드 국빈 방문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부터),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왕궁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내외 네덜란드 국빈 방문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선 한국전 참전용사 간담회를 열고 ‘영웅의 제복’을 코르트 레버르 옹(93세)에게 전달했다.

이어 윤 대통령과 빌렘-알렉산더 국왕은 한-네덜란드 비즈니스 포럼의 특별 세션에 참석했다. 이번 포럼은 양국 간 최초로 개최되는 대규모 비즈니스 포럼으로, 한국 측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구자열 무역협회 회장 등이, 네덜란드 측에서는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말튼 디얼크바거 NXP CSO 등 양국 경제인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포럼을 계기로 양국 기업 및 기관들은 첨단산업·무탄소에너지·물류·농업 등 분야에서 총 19건의 계약 또는 MOU를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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