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모든 대국민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만드는 게 가능할까.
최근 잇따라 터진 정부 민원서비스 마비 사태는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플랫폼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지난달 17일 공무원용 행정망 ‘새올’에서 장애가 발생한 이후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을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고 위원장은 “이번 장애를 계기로 디지털플랫폼정부의 필요성은 더 확실해졌다”라고 말했다.
전자정부의 패러독스 “20년 간 1만7000개 시스템 구축”
고 위원장은 “정보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방식이 십수년간 답보 상태로 머문 게 이번 장애의 주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현재는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전산 시스템을 각기 다른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이 따로 구축하고 있다. 필요한 일부만 수정할 수는 없는 구 조라, 최신 기술 적용도 제한적이다. 그는 “클라우드·인공지능(AI) 등 최신 기술을 적시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인 디지털플랫폼정부를 구현하기 위해 대통령령에 근거해 지난해 9월 출범했다. 정부 서비스를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플랫폼처럼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지금은 정부24, 인터넷등기소 등 시민들이 필요한 서비스에 따라 각 사이트에 접속해야 한다. 고 위원장은 “내년부터 국민의 사용 빈도가 잦은 공공 사이트부터 하나로 통합해 로그인 한 번이면 다 쓸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말은 쉽지만 2004년 이후 20년간 유지된 ‘전자정부’에 손대는 작업은 만만치 않다. 고 위원장은 “전자정부 내 1만 7000개 사이트에 흩어진 데이터를 한군데로 모아 클라우드로 옮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전자정부 모범 국가로 평가받아 왔지만, 이제는 그 유산이 지금 정부에 필요한 데이터 융합과 클라우드 전환을 어렵게 만드는, 패러독스(역설)에 빠졌다는 설명이다.
교육부·국방부·고용부 데이터가 합쳐진다면?
전자정부 시스템이 쪼개져 있다보니, 부처별 정보 공유가 안 되는 ‘칸막이 현상’도 공공 디지털 서비스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고 위원장은 그간 ‘부처 간 데이터 공유’를 줄기차게 강조했다. 고 위원장은 “교육부와 국방부, 고용노동부가 가진 데이터를 합치면 청장년층의 인생 전 주기를 더 깊이 파악할 수 있다”며 “청년 일자리 정책을 더 세밀하게 만들 수 있고, 맞춤형 지원도 정교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데이터로 학습시킨 거대언어모델(LLM)도 준비 중이다. 국내에서 자체 LLM을 개발한 6개사(네이버, 카카오, LG, SK텔레콤, KT, 엔씨소프트)의 장점을 따져보고 여러 LLM을 쓰는 ‘멀티 모델’ 전략을 택할 계획. 고 위원장은 “내년쯤 공모를 통해 여러 민간 기업과 협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 데이터를 민간 기업의 LLM에 학습시킬 경우, 개인정보 보안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고 위원장은 “개인정보가 포함된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키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책 홍보 자료나 법령 등 공개된 데이터로 1차 훈련을 시킨 뒤, 개인정보가 포함되지 않은 정부 내부 문서를 통해 추가 학습을 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