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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아이가 그린 듯 소박한 까치·개·나무…보다 보면 장욱진만의 이야기 보여요

중앙일보

입력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흔히 실재하는 사물과 정말 똑같이 그린 그림을 보면 감탄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현대 미술의 경우 언뜻 보면 무엇을 그렸는지 짐작하기 힘든 작품도 많죠. 예를 들어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1937)는 형태가 불완전한 소와 사람이 화폭에 가득하고, 한국 단색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박서보는 하나의 색으로 화폭을 채운 작품이 많아요. 작가의 의도를 모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작품 구성은 많은 사람이 현대 미술, 특히 회화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로 꼽힙니다.

김민솔(왼쪽)·왕희재 학생기자가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전시 '새벽의 표정'을 찾아, 장욱진의 작품들을 살폈다.

김민솔(왼쪽)·왕희재 학생기자가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전시 '새벽의 표정'을 찾아, 장욱진의 작품들을 살폈다.

우리나라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가진 거장들이 있는데요.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중 한 사람인 장욱진(1918~1990)의 작품 세계는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순진무구한 분위기가 특징이에요. 또 집·까치·가족·개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소재가 작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죠. 장욱진은 왜 이런 그림을 그린 걸까요. 김민솔·왕희재 학생기자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새벽의 풍경'을 통해 장욱진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어요. 김명훈 학예연구사가 2층 상설전시실 입구에서 이들을 맞이했죠.

1910년 일본에 국권을 침탈당한 뒤 일제강점기가 한창이던 1918년 충청남도 연기군에서 태어난 장욱진은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지금의 중고등학교) 그림 그리기를 즐겼어요. 21세에는 전국학생미전에서 최고상인 사장상과 중등부 특선상을 받을 만큼 그림에 재능을 보였죠. 당시 우리나라 미술계에는 서구의 미술 사조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어요.

김명훈(맨 왼쪽) 학예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 장욱진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관해 설명했다.

김명훈(맨 왼쪽) 학예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 장욱진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관해 설명했다.

"조선시대 미술 하면 풍속화로 잘 알려진 김홍도(1745~1806 이후)나 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 등이 먼저 떠오를 겁니다. 종이에 먹으로 그리고 채색한 작품들이죠. 반면 장욱진의 작품은 천 소재인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채색했는데,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 도입된 서구 회화의 영향이에요."

장욱진은 1939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의 제국미술학교(지금의 무사시노 미술대학) 서양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서양 미술의 여러 사조를 배웠어요. 당시 서양 미술계에는 원근법·명암법 및 다채로운 색채를 통해 현실적인 묘사를 하는 것에서 벗어나 화가의 생각·감정을 반영한 형태의 본질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죠. 사물을 여러 시점에서 본 형태를 한 화면에 조합하고, 형태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미술 사조를 입체주의(큐비즘·Cubism)라 해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이 대표적이죠. 또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감정·감각의 표현이며 회화를 구성하는 선·형태·색채 등은 이를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표현주의도 등장했어요. 장욱진은 입체주의·표현주의 등 현대 미술사조를 받아들여 실험을 거듭하며 자신의 화풍을 연구하고 정립해 나갔습니다.

'가족도'(1989) 장욱진의 작품은 언뜻 보면 단순한 형태지만 해당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기 위한 그의 고민이 담겨 있다.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가족도'(1989) 장욱진의 작품은 언뜻 보면 단순한 형태지만 해당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기 위한 그의 고민이 담겨 있다.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유학을 마친 장욱진은 국립박물관 재직 시절(1945~1947)과 서울대 미대 교수 시절(1954~1960)을 제외한 모든 생애를 경기도 덕소·용인, 충북 수안보 등 한적한 시골에 있는 화실에서 보내며 창작활동에만 전념했어요. 전시 '새벽의 표정'에서는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던 장욱진이 새벽에 일어나 산책하면서 주변의 자연물을 관찰하고 포착한 작품을 만날 수 있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두 개의 나무 사이에 집이 있고, 하늘에는 파란 달과 주황색 해가 같이 있는 모습을 담은 '가족도'(1989)를 먼저 살폈어요. 사물의 형태가 매우 단순한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희재 학생기자가 "언뜻 보면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데, 장욱진의 그림이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어요.

'가로수'(1989). 장욱진은 생의 대부분을 시골에 마련한 화실에 거주하면서 자연에서 본 존재들을 그렸다.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가로수'(1989). 장욱진은 생의 대부분을 시골에 마련한 화실에 거주하면서 자연에서 본 존재들을 그렸다.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사물의 형태를 화폭에 최대한 그리는 것이 아닌, 작가가 사물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숲속에서 나무가 쓰러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그 장면을 눈앞에서 봤다면 나무가 '쿵'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고 인식할 거예요. 나무가 낸 소리가 우리 귀를 통해 들어왔고, 우리의 뇌가 그 소리를 '쿵'이라는 글자로 변환했기 때문이죠. 그 말은 우리가 나무가 쓰러질 당시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쿵'이라고 인식된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도 됩니다. 나무가 쓰러진 현상보다 그걸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 중요한 것이죠."

이는 많은 사람이 현대미술, 특히 회화를 어렵게 느끼는 이유이기도 해요. 사물의 형태를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을 반영한 개성적인 형태로 재구성해 화폭에 옮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즉, 얼마나 실제 형태와 비슷하게 그렸는지가 아닌 작가의 감정과 생각을 얼마나 독창적으로 화폭에 구현했는지가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그림을 감상할 때도 많은 상상력과 배경 지식이 필요해요. 장욱진의 작품이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높이 평가받는 까닭도 이와 연결돼 있죠. 언뜻 보면 단순한 형태이지만 그 안에 장욱진이 포착한 해당 사물의 본질을 포함해 여러 고민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초월적 존재인 하늘을 나는 도인이 등장하는 '도인'(1987). 삶과 죽음에서 해탈하고자 하는 장욱진의 마음이 드러난다.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초월적 존재인 하늘을 나는 도인이 등장하는 '도인'(1987). 삶과 죽음에서 해탈하고자 하는 장욱진의 마음이 드러난다.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장욱진은 '사실을 새롭게 보자'는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1947년 김환기·유영국 등 동시대에 활동하던 화가들과 '신사실파'를 결성하기도 했어요. 이들은 자연·사물을 캔버스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사물 안에 내재한 근원적이고 정신적인 본질을 탐구해 작품에 옮기는 것을 중요시했죠. 그래서 장욱진을 포함한 신사실파의 작품은 언뜻 보면 형태가 단순해 보이지만 굉장히 대담한 표현을 추구한 경우가 많아요. "'가족도'만 봐도 나뭇가지 등 세부적인 형태 표현을 생략하고, 나무를 보면서 느낀 자신의 감정을 선·색·면 등으로 화폭에 옮기는 데 집중한 것을 알 수 있어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 작품이 많은 만큼, 장욱진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를 아는 것도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죠. 전시실 한편에는 장욱진의 예술세계와 생애 전반에 걸친 활동 내용을 알 수 있는 '장욱진 라이브러리' 키오스크가 있었는데요. 키오스크를 통해 여러 그림을 살피던 민솔 학생기자가 "까치가 자주 등장하네요"라고 말했죠. 까치는 장욱진이 평생에 걸쳐 그린 유화 730점 중 약 60%에 등장할 정도로 그에게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예요.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는 영리한 까치는 자신을 편안하고 평범한 존재로 표현하고 싶었던 장욱진의 생각과 잘 맞아떨어지는 도상(圖像)이죠. 또한 집은 그에게 단순히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예술적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어요.

'소와 돼지'(1985). 소·돼지 등 여러 동물 사이에서 홀로 있는 검은 개의 모습은 장욱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도상이다.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소와 돼지'(1985). 소·돼지 등 여러 동물 사이에서 홀로 있는 검은 개의 모습은 장욱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도상이다.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김 학예사가 "검은 개 역시 장욱진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도상"이라며 소중 학생기자단을 '소와 돼지'(1985) 앞으로 이끌었죠. 소와 돼지를 포함해 여러 동물이 무리를 지은 모습이었는데, 검은 개는 이들 사이에서 혼자였죠. "장욱진은 시골에 살면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느라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컸어요. 즉, 이 작은 개는 장욱진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표현한 형상으로 볼 수 있죠."

장욱진 라이브러리 옆에 전시된 '동물 가족'(1964)에도 이 검은 개가 나타납니다. 소와 송아지, 닭과 병아리, 돼지 등 동물 가족이 화목하게 그려져 동물에 대한 화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인데요. 검은 개는 이들의 뒤에 아주 조그맣게 혼자 있죠. 열심히 '동물 가족'을 요모조모 살피던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김 학예사가 "작품에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어요. 먼저 그림을 열심히 보면서 '왜 이렇게 그렸을까' 생각해 본 다음, 작품 제목을 확인하거나 작품 해설을 찾아보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면 난해하게만 보였던 근현대 미술품을 전시한 미술관에 가는 게 훨씬 재미있어지겠죠"라고 귀띔했어요.

'새벽의 표정'에서는 만물이 생동하기 직전의 순간인 새벽에 장욱진이 자연에서 포착한 다양한 풍경을 그의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새벽의 표정'에서는 만물이 생동하기 직전의 순간인 새벽에 장욱진이 자연에서 포착한 다양한 풍경을 그의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어렵게만 보이는 예술가의 작품도 결국 자기 생각을 남기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결과물이죠. 앞으로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되는 작품을 만나면 '이 사람은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그러면 화가가 내게 건네는 말이 어느새 내 머릿속에 흘러들어온답니다.

'새벽의 표정'

전시 기간: 2024년 8월 18일(일)까지

전시 장소: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2층 상설전시실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휴무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관람료: 19세 이상~65세 미만 5000원, 8세 이상~18세 이하 어린이·청소년 및 군인 1000원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그간 매체를 통해 화가 장욱진에 대해 접한 적이 있어서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취재에 임했습니다. 장욱진미술관은 입구에서부터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은 곳이었어요. 예쁘게 꾸며진 정원과 미술관 정원을 가로지르는 냇가가 장욱진 화백의 자연 친화적인 작품들과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죠. 전시 '새벽의 표정'을 통해 장욱진 화백이 주로 새벽에 산책하며 보았던 자연·사물과 새벽에 모든 사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운을 표현한 자연친화적 인생관이 담긴 작품들을 볼 수 있었어요. 특히 사물의 본질을 작품에 옮겨 담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죠. 저도 장욱진 화백처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자신만의 표현 방법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민솔(서울 명지초 5) 학생기자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는 어린아이가 단순하게 그린 그림 같다고 느꼈지만, 이번 취재로 숨겨진 의미를 잘 알게 됐어요. 특히 저는 '동물 가족’ 그림이 가장 인상에 남아요. 장욱진 화백이 가족과 떨어진 화실에서 그린 그림인데 닭·소·돼지 등이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고, 그 위로 작은 개 한 마리가 있는데 그게 장욱진 화백을 의미한다고 해요. 작은 개를 통해 장욱진의 외로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잘 느껴졌죠. 장욱진 화백의 그림에는 아주 철학적인 질문이 담겨 있다고 김명훈 학예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그 질문의 의미를 언젠가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숲의 나무가 쿵하고 쓰러져도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었다면 그 소리는 없는 것이 아닐까'라고 학예사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 말의 의미를 다양한 장욱진 화백의 그림에서 찾고 이해하고 싶어요.

왕희재(서울 마포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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