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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21년 검사’ 한동훈의 정치 도전…빛과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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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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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대상홀딩스우라는 생소한 주식 종목이 7일 연속 상한가를 찍었다. 정치 데뷔를 앞둔 한동훈 법무장관이 서울 현대고 동기인 배우 이정재씨와 함께 식사한 뒤였다. 이씨의 여자친구가 이 회사의 2대 주주 오너다.

한 장관의 초임은 2001년 5월 1일 서울지검. 작년 5월 정무직 법무장관이 됐으니 검사 21년이었다. 깜짝 발탁이라 화제였으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주변에 “한동훈이는 (고생도 많았으니) 이제 칼잡이는 좀 그만 시키려고 그래”라고 말했다는 전언이 들렸다. “칼 거둬주고 펜을 쥐어줬다”(장제원 의원)는 낙점 이유에서 대통령의 개인적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존 F 케네디가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를 키우려고 논란 무릅쓰고 법무장관에 앉힌 사례도 소환됐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추미애를 법무장관에 앉혀 차기군을 넓히려 했으나 그만 제 발등에 도끼를 찍고 말았다.

여권 차기 주자 1위의 등판 임박
그 영향력이 총선 주요 변수 부상
‘지지층 과반이 60대 이상’은 한계
관건은 중도 잡을 균형·미래·실용

검사 한동훈은 인정사정없었다. 선배인 윤석열 검사조차 “한동훈이는 수사에 ‘유도리(융통성의 일본 표현)’가 없어”라고 했을 정도였다. “윤석열 빼곤 누구 말도 듣지 않는다더라”는 얘기도 돌았다. 당한 사람들이야 인정이 어렵겠지만 검사로선 뭐라 깎아내리기 힘든 자세겠다. 스카프·넥타이·벨트·안경·가방에 펜까지 70년대생 X세대 출신의 감각도 온라인을 장식했다. 121일 앞의 총선. 변수 중 하나가 그의 총선 영향력이다.

여당의 구원투수로 50세의 장관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정치적 지형임은 분명하다. 사흘 전 “장래 대통령감이 누구냐”는 차기 지도자 선호 조사(한국갤럽, 12월 5~7일) 결과에서 한 장관은 16%로 여권 1위, 전체 2위다. 19%의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여권의 다음은 홍준표(4%), 오세훈·이준석·원희룡(각 2%), 유승민(1%) 순. 지난 대선에서 외부의 ‘정치 신인 윤석열’을 영입하며 가까스로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 이후 총선의 구원투수조차 다시 밖에 기대야 하는 자생력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달 말 원포인트 개각으로 한 장관에게 비춰질 스포트라이트를 극대화해야 할 다급한 구도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퍼부은 국회의 맹폭 장면들로 그는 정치적 자본을 쌓았다. 여의도 정치문법 따윈 깡그리 무시였다. 이 ‘태도 보수’의 저돌적 반란에 “사이다 같다”“똑똑하고 말 잘한다”“자기 흠 없으니 당당하다”는 박수가 나왔다. 동시에 “싸가지없다” “깃털같은 가벼움” “재승박덕”이라는 세평이 엇갈렸다. ‘정치인 한동훈’에 대한 여당의 기대 지점 역시 민주당에 타격을 가할 21년 칼잡이의 선거 전투력이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다. 차기 여권 1위 한동훈 지지층의 과반(54%)은 60~70대 이상 고령층이다. 그들이 오래도록 공과 흠을 다 보아왔던 홍준표·오세훈·원희룡의 노련함보다 뉴페이스에 보수의 차기를 베팅한 결과다. 20·30·40 대의 한동훈 지지는 6%,12%,10%에 그친다. 여당 지지자들은 41%가 한 장관을 압도적 1위로 꼽았지만 민주당 응원자들은 1%만 그를 골랐다. 역시 윤 대통령 직무를 긍정 평가하는 이들의 42%는 대통령의 막내동생 같은 그를 압도적 1위로 올렸지만, 부정평가층에선 3% 바닥이다. 무엇보다 총선의 “야당 다수 승리” 기대가 51% 과반으로 “여당 다수 승리”(35%)를 한참이나 앞서 있다. ‘신인 한동훈’에겐 명확한 빛과 그림자다.

정치의 오랜 딜레마가 하나 있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정치에만 오면 다 바보가 될까.’ 2013년 예일대에서 수학 더 잘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분류해 ‘총기규제와 범죄의 함수’ 문제를 푸는 비교 실험을 해봤다. 그런데 자기 이데올로기와 맞지 않는 문제에는 똑똑한 이들이 더 오답을 내는 경향을 보였다. 바로 ‘이념’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올바른 답보다 늘 자신이 옳다는 걸 뒷받침하는 답을 찾아갔다. 그 좋은 두뇌를 그렇게만 사용해 서로 싸움만 거세지니 “이념의 진영에 갇히면 똑똑한 이들이 더 바보가 된다”는 결론이었다(에즈라 클라인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똑똑한 한동훈’의 성패 가를 잣대는 명확하다. 보수도, 진보도 아니라는 거대한 30%대의 중도층에 어필할 ‘확장성’이다. 검사와 정치는 상극이다. 현실의 정치는 곳곳 선악 분명치 않은 회색 지대다. 무슨 고시처럼 정해진 답도 없다. 검사야 피의자와 타협, 조정할 일도 없다. 그러나 매번 차선, 차악을 골라가야 할 조정과 균형(balance)의 예술이 그가 부닥쳐야 할 정치다.

민주당을 좀 베 달라는 여당의 미션을 그가 피할 순 없을 터다. 하지만 아스팔트 태극기 부대의 환호에 취해 골수우파 진영의 돌격대장에 머문다면 정치적 미래란 없다. 정치의 성공 조건은 늘 ‘모든 것의 밸런스’다. ‘나라의 미래’는 바로 새 시대의 신인인 그가 향해야 할 목표다. ‘이민청’ 같은 자신만의 미래·실용 어젠다 찾아라. 막장에 다다른 우리 정치. 새로운 자극과 혁신의 ‘정치 교체’ 가 바로 갑갑한 이 시대의 이성이다. 그게 한동훈이든, 다른 누구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