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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먼저 세우고 나중에 부숴라"…내년 경제 '12자' 지침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일 중난하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당외 인사를 소집해 경제좌담회를 열고 올해 경제 성과를 점검하고 내년도 경제 정책 기조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고 중국중앙방송(CCTV)이 8일 보도했다. 사진 CCTV 화면 캡처

지난 6일 중난하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당외 인사를 소집해 경제좌담회를 열고 올해 경제 성과를 점검하고 내년도 경제 정책 기조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고 중국중앙방송(CCTV)이 8일 보도했다. 사진 CCTV 화면 캡처

“안정 속에서 발전하되, 발전으로 안정을 촉진하며, 먼저 세우고 나중에 부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일 정치국회의를 주재하고 내년도 경제정책 기조로 이같은 뜻의 12자 "온중구진 이진촉온 선립후파(穩中求進 以進促穩 先立後破)"를 제시했다고 이튿날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전했다.

이와 관련, 이날 중국중앙방송(CCTV)의 온라인 뉴스 사이트인 앙시망(央視網)은 “지난해 말 올해 경제 기조를 ‘안정 우선, 안정 속 발전(穩字當頭 穩中求進)’으로 정했던 것과 다르게 ‘발전으로 안정을 촉진하고, 먼저 세우고 나중에 부순다(以進促穩 先立後破)’는 올해 새롭게 등장한 표현”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이진촉온’에 대해선 “발전(進)이 안정(穩)의 목표이자 중국 경제의 안정을 위해 지속적인 동력을 제공한다”며 “물길을 거스르는 배는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고 덧붙였다.

‘선립후파’는 시 주석이 지난 2014년 3월 양회에서 산업구조 조정의 지침으로 처음 언급한 용어다. 당시 광둥성 대표단을 만난 시 주석은 새장을 비워 새를 바꾼다는 등롱환조(騰籠換鳥) 정책에 대해 “등롱은 텅 빈 새장이 아니다. 먼저 세우고 나중에 부숴야 한다”며 “‘새로운 새’가 새장에 들어오고 ‘오래된 새’가 갈 곳부터 연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최근 들어 시 주석은 오는 2030년 중국의 탄소배출량이 정점에 이르고 2060년에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쌍탄(雙碳)' 목표를 제시하며 ‘선립후파’를 다시 언급했다. 지난해 양회에서 “쌍탄 목표는 먼저 세우고 나중에 부수는 식으로 실현해야지 만들지도 않고 먼저 부숴서는 안 된다”며 “손안의 밥그릇을 먼저 버리면 새로운 밥그릇을 손에 넣을 수 없다”고 밥그릇에 빗대 설명했다.

시 주석은 지난 6일엔 당외 인사를 소집해 주재한 경제좌담회에서도 이같은 기조를 강조하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현재 중국 경제 회복은 여전히 결정적인 단계에 처해 있다”며 “정세가 복잡하게 뒤엉켜있고, 국제적으로 정치경제 환경의 불리한 요소가 증가하며, 국내적으로는 주기적이며 구조적인 모순이 중첩됐다”고 말했다. 당국이 기대했던 리오프닝 효과 대신 부동산 경색, 지방정부 부채 등 누적된 경제적 모순의 심각성을 인정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쉬톈전(徐天辰) 이코노미스트는 인터넷매체 제몐(界面)신문에 “과거 일부 정책이 ‘부수기(破)’를 ‘세우기(立)’보다 강조하면서 청년실업률 급증, 부동산 리스크 급증 등 구조적 문제를 초래했다”며 “정치국이 선립후파를 강조하면서 내년 부동산 업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시스템적 리스크 방지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경제는 ‘세우기도 전에 부순(未立先破)’ 폐해가 심각하다는 보도가 나온다. 싱가포르 연합조보에 따르면 ‘세계의 공장’ 중국을 주도했던 광둥성 둥관(東莞) 산업단지는 2018년 미·중 관세전쟁 이후 미국발 주문이 급감했다. 설상가상 올해 ‘제로 코로나’ 방역이 풀리면서 공장의 동남아 이전도 급증했다.

중국 재정적자율 추이

중국 재정적자율 추이

"내년도 대규모 부양책 없을 듯"

내년에도 중국 당국의 대규모 부양책은 없을 전망이다. 8일 열린 정치국회의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은 적절히 힘을 더하고, 품질을 높여 효율을 늘리며, 온건한 화폐정책은 유연하고 적절하며 정확하고 유효하게 한다”고 제시했다. 지난 4월 1분기 경제를 점검한 정치국회의 결정과 비교하면 화폐정책에서는 “유력(有力)”이 빠졌고 재정정책에서는 “적절(適度)”이 새로 추가됐다. 내년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으로 경기 부양에 나서는 대신 미세 조정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싱자오펑(邢兆鵬) 호주·뉴질랜드 은행의 선임분석가는 블룸버그에 “내년도 중국 경제성장률은 올해와 같은 5%로 예상되지만 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내년 이자율과 은행 지급준비율 인하는 올해보다 폭이 적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경제선전·여론지도 강화하라”

복잡다난한 중국의 경제 현황 파악도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국회의에서 “경제선전과 여론지도를 강화하라”고 지시하면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경제학자들은 베이징으로부터 올해 경제를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불평한다”며 “청년 실업의 가파른 증가 이후 국가통계국이 올해 젊은 층 실업률 통계를 발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부정적인 통계 수치의 발표를 중단하는 등 ‘깜깜이 통계’가 증가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해마다 12월 중순 전에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열고 한 해의 경제 성과를 점검하고 다음 해 경제 성장률 및 정책 기조를 확정한다. 회의 내용은 앞서 당외 경제좌담회에서 의견을 구한 뒤 정치국회의에서 결정하는 형식을 취한다. 올해는 시 주석의 베트남 국빈방문(12~13일 예정) 직후인 이번 주말에 열릴 가능성이 높다. 회의에서 확정된 성장률 목표는 내년 3월 전인대에서 총리가 정부업무보고를 통해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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