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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원소? 스타 학자 이중톈 책 거둬들이는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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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易中天) 샤먼(廈門)대 중문과 교수. 바이두바이커

이중톈(易中天) 샤먼(廈門)대 중문과 교수. 바이두바이커

이중톈(易中天) 샤먼(廈門)대 중문과 교수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스타 학자다. 우한(武漢)대에서 중국 고대문학을 전공했고 국영 중앙방송(CCTV)의 백가강단(百家講壇) 프로그램에서 2005년 초한지, 2006년 삼국지 강의를 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특히 삼국지 강의 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데, 강의 내용을 엮은 2권의 책이 600만부 넘게 팔렸다. 이후 중국에선 '이중톈 현상'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고, 한글로 번역되면서 한국에서도 유명인사가 됐다.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2006년 인세 수입만 2000만 위안(약 36억원)에 달할 정도였다. 그의 강의를 연재 방영하는 한국의 케이블 TV도 있었다.

이중톈이 쓴 책이 최근 구설에 올랐다. 2007년에 저술한 중국 역사서 『이중톈 중화사(易中天中華史)』가 판매 금지됐다는 소식이다. 구체적인 판금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국이 삼국지 인물 원소(袁紹)에 빗대 시진핑 주석을 풍자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 매체 신랑재경(新浪財經)은 『이중톈 중화사』를 출판한 과맥문화(果麥文化)의 관계자를 인용해 “과맥문화가 2022년 이미 자체 심사를 통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이중톈 중화사』를 거둬들였고 현재 수정 중”이라고 전했다. 대만 중앙사(中央社)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중톈 중화사’를 회수한 것은 출판사의 자발적인 조치가 아니라 주무 부처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며 저자의 역사 인식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같은 시기에 인터넷에는 판매금지 통지문으로 보이는 문서가 떠돌았다.

온라인에선 이중톈의 책이 금서가 된 것은 후한(後漢) 말 유력 군벌이었던 원소를 평가한 대목이 시 주석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란 해석이 돌고 있다. SNS인 X 플랫폼에 올라온 관련 동영상에서 이중톈은 원소를 이렇게 평가했다.

“나는 그를 너무나 잘 안다. 야심이 크고, 지혜가 적고, 행동이 포악하고, 담력이 작고, 매몰차고 의심이 많으며, 대인관계가 좋지 않은 것이 그의 특징이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근시안적이었고, 군사적으로는 지략이 부족했으며, 조직 운영 면에서는 무능했다. 그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집안의 정치적 자원을 이용하고 아버지 대(代)의 업적을 밑천 삼은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 대에서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능가하는 명성과 지위를 얻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어리석고 고집스럽고 오만한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의 중국계 문화학자 우쭤라이(吳祚來)는 중화권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이) 이중톈의 작품이 금지된 것은 그가 역사 속의 군주를 비웃고 조롱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현 권력자가 자신을 빗댄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우쭤라이는 현대 중국 문학의 대문호로 추앙받는 루쉰(魯迅)을 예로 들었다. 루쉰의 작품 중 상당수는 당시 북양정부(1912년부터 1928년까지 베이징에 존재한 중화민국 정부)를 비판했다. 그 이유로 당시 중국 공산당은 그를 좌파 작가로 분류했다. 하지만 지금은 루쉰의 작품 대부분이 교과서에서 삭제됐다. 막상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나니 루쉰의 정치 권력 비판이 자신들을 향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은 때문이라고 우쭤라이는 설명했다.

호주 시드니공대 펑충이(馮崇義) 교수는 “과거에는 개인이 역사를 쓰는 데 상대적으로 관대했는데 시진핑 집권 이후에는 이른바 역사 허무주의를 단속하기 시작했다”며 “이중톈이 쓴 책은 당국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서 금지됐다”고 했다. 그는 “중국인들은 현 정권을 고대 제왕과 비교하지만 사실 공산당 총서기는 황제보다 훨씬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과거 황제의 권력은 현(縣)까지 닿았지만, 공산당 권력자는 전 세계로 손을 뻗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중톈 뿐만 아니다. 명나라 역사 전문가 천우퉁(陳梧桐)이 쓴 『숭정: 부지런히 정사를 돌본 망국의 군주(崇禎: 勤政的亡國君)』라는 책이 10월 판매가 금지됐다. “패착을 반복하고 연거푸 실수했다. 열심히 할수록 나라가 망해갔다”는 표지 문구가 시진핑을 연상시킨다는 게 이유라는 분석이 돌고 있다.

중국에선 학자들이 저술한 역사책뿐만 아니라 당국이 편찬한 역사책도 ‘정치심사(政審)’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당국이 20억 위안(약 3600억원)을 투자해 20년에 걸쳐 편찬한 청나라 역사서 『청사(清史)』가 2년 동안의 ‘정치심사’ 끝에 결국 통과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새로 나온 청나라 역사관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았다”는 이유다. 이 소식을 알린 장타이쑤(張泰蘇) 예일대 교수는 “20억 위안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가 정치적 올바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산됐다는 사실에서 중공 학술 심사제도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엔 몽골어-중국어판 『몽골족통사(蒙古族通史)』 발행을 일시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안내문에서 내몽골도서잡지출판협회는 “역사 허무주의에 반대한다”며 회원사들은 랴오닝(遙寧)민족출판사가 출판한 『몽골족통사』의 출판을 중단하고 이미 유통 중인 책은 즉시 판매를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시 주석은 6월 내몽골을 시찰할 때 이른바 중화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몽골족통사』 출판이 중단된 것이 이것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우쭤라이는 지난 2년 동안 시진핑이 여러 차례 언급한 ‘역사적 자신감(歷史自信)’이 학술과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 관점’은 공산당 지도부를 불편하게 하는 역사관을 잘못된 것으로 규정하고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이자 ‘정치적 올바름’에 입각한 용어다. 그래서 마오쩌둥 시기의 반우파 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때엔 비판으로 끝냈던 문제를 이제는 직접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감’을 강조하는 시진핑 정권의 자신감 부족을 반증하는 역설이 느껴진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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