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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신호등도 꺼졌다, 울산 초유의 정전 뒤엔 '빚더미 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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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일 울산시 울주군의 한 마트에서 전날 발생한 정전으로 모니터가 꺼져 있다. 지난 6일 울산시 남구와 울주군 일대에 정전이 발생했다가 1시간50분 만에 복구됐다. [뉴스1]

7일 울산시 울주군의 한 마트에서 전날 발생한 정전으로 모니터가 꺼져 있다. 지난 6일 울산시 남구와 울주군 일대에 정전이 발생했다가 1시간50분 만에 복구됐다. [뉴스1]

30년 가까이 써 오던 변전소 설비에 탈이 나자 울산 시내가 큰 혼란을 겪었다. 6년 만의 대규모 정전 뒤엔 전력 설비 노후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빚 더미에 놓인 한국전력의 설비투자가 주춤하면서 또 다른 정전 사태가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6일 울산에서 두 시간가량 이어진 정전으로 도로 신호등이 꺼지고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등 15만5000여 가구의 일상이 흔들렸다. 2017년 서울·경기도에서 발생한 20여 만 가구 정전 이후 최대 피해다. 7일 한전에 따르면 이런 불편을 만든 원인은 울산시 남구 옥동변전소의 개폐기 내부 절연체 파손으로 추정된다. 전기를 끊거나 넣는 ‘스위치’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이곳은 1995년부터 28년간 운영 중인 노후 변전소다. 한전 측은 “25년 넘은 개폐기는 정밀검사 후 문제가 없으면 더 쓸 수 있다”고 하지만 오래된 설비가 정전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전영환 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현재로는 설비 노후화나 작업 중 실수, 둘 중 하나가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21년 11월 경기도 여주에서도 변전소 노후 개폐기 고장으로 5만여 가구가 정전을 겪었다.

한전의 누적 적자는 2021년 이후 약 45조원에 달한다. 올 상반기 기준 총부채도 200조원을 넘겼다.

6일 울산 시내에 정전이 발생한 가운데 옥동변전소로 소방대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울산 시내에 정전이 발생한 가운데 옥동변전소로 소방대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한전 협력업체 A사 대표는 “기자재는 수명 관리가 중요한데 한전이 지난해 이후 재무 위기를 겪으면서 오래된 제품을 제때 안 바꾸는 경향이 심해졌다”고 밝혔다. 한전에 개폐기 등을 납품하는 B업체 사장도 “한전이 부품을 미리 바꿔주기만 해도 정전 가능성이 매우 작은데, 고장날 때까지 계속 쓰면서 위험이 커졌다”고 말했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이 한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2조5813억원이던 한전의 송변전 투자비는 지난해 2조4976억원으로 뒷걸음질쳤다. 배전 투자비도 같은 기간 3조6316억원에서 3조5159억원으로 감소했다.

전력망 유지·보수에 필수적인 기자재 구매량도 내리막이다. 2020년 1억5100만 건 수준에서 지난해 1억1200만 건 안팎으로 줄었고, 올해도 8500만 건(10월 25일 기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력 생태계까지 위기에 몰렸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문제는 앞으로다. 한전은 지난 5월 25조원대 자구안을 발표하면서 변전소 등 일부 전력 시설의 건설 시기를 미뤄 2026년까지 1조3000억원을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B업체 사장은 “국내 전력 설비 구축이 80년대부터 본격화한 만큼 수명이 30여 년 이상 된 제품도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단지를 비롯해 전력 사용량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점도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설비투자를 미루면 오히려 그 비용보다 정전 등으로 발생하는 피해가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근본 대책으로 꼽히는 전기요금 인상은 잠잠하다. 올 3분기 전기료가 동결된 데 이어 4분기도 산업용(대용량)만 ㎾h당 10.6원 올리는 데 그쳤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은 “이대로면 수년 안에 대규모 정전이 빈발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면서 “한전에 적자가 쌓여서 투자하지 못하는 것이니 답은 요금 현실화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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