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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학생 모자라 기업에 못 보내”…‘한국형 아우스빌둥’의 힘

중앙일보

입력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국가경쟁력 떨어뜨리는 취업 ‘미스매치’

지난달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는 1년 전보다 34만 명 늘었다. 그러나 청년(15~29세) 취업자는 지난해 11월부터 12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1년 전보다 8만 명 줄었다. 특히 청년인구 중 41만 명이 특별한 경제활동 없이 ‘그냥 쉬었다’고 밝혔다. 취업에 활기를 띠고 있는 중장년층과 달리, 청년층에서만 유독 일하지 않고 쉬는 이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뭘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올해 7~10월 청년층 2826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쉬었음’ 청년의 57%가 직장 경험이 있고 구직 의욕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경험과 구직 의욕 모두 없는 청년은 14%뿐이었다. ‘쉬었음’ 청년의 다수는 직장을 다니고는 싶지만,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 쉬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청년 실업의 가장 큰 원인은 일자리 미스매치라는 이야기다.

‘일 안하고 그냥 쉰’ 청년 41만
전공·직업 불일치율, OECD 1위

“90% 이상 취업” 아주자동차대
주문식 교육, 대학특성화 주효

초중고 적성교육 활성화 절실
“진로 뚜렷해 인생 낭비 없어”

조훈 전문대학교육협의회 국제협력실장(서정대 교수)은 “미스매치를 줄이려면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묻지마’식 입시공부 대신 자신의 적성을 살려 취업과 연계한 대학·학과를 택하는 진로·적성교육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미스매치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지 현장으로 들어가 봤다.

“원하는 공부 할 수 있어 행복” 

충남 보령시 아주자동차대에선 매년 300여 명의 졸업생이 대부분 졸업과 동시에 취업한다. 토요타·벤츠·볼보·재규어·랜드로버·BMW 등 굴지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곳 학생들을 영입하기 위해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다. 1학년 때는 대학 공통수업을, 2학년 때는 원하는 기업 한 곳을 선택해 자체 교육을 받는다. 그중 한 학기는 기업현장에서 직접 일을 배우는 인턴 활동을 한다.

2학년생 조현호(22)씨도 마찬가지다. 아홉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모터쇼에 갔다 ‘자동차광’이 된 조씨는 중학교 때 자전거로 왕복 4시간 거리의 BMW 드라이빙센터를 보러 다녔다. 친구들이 ‘인서울’ 대학에 진학할 때도 부모님을 설득해 이곳에 왔다. 지난 9월 자신이 꿈꿨던 BMW에 취업이 확정된 그는 “삶의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인생의 낭비가 없었다”며 “지금은 연·고대 간 친구들도 부러워한다”고 했다.

김지현(21)씨는 특성화고 자동차과를 나왔다. “앞으로 자동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개성을 표현하는 기호품처럼 될 것”이라며 “‘드레스업(차량 외관을 꾸미는 것)’ 전문가가 되고 싶어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반고 출신의 황영준(19)씨는 “대학 졸업 후에도 자신이 원하는 걸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미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학생이 일찍부터 제 길을 찾는 건 아니다. 뒤늦게 입학한 김재동(35)씨는 “4년제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공장·건설·물류 등 전혀 다른 일을 했다”며 “좀 더 빨리 자동차 공부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준명(21)씨는 “많은 친구가 성적에 맞춰 진학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돈과 시간 낭비라는 걸 깨닫는다”며 “기술직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개인의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기업이 원하는 일할 사람은 부족

이 대학 장성택 교수는 현대차에서 7년, BMW에서 28년을 근무한 대한민국 명장(자동차정비)이다. 지난해 정년을 마치고 학교로 부임했다. 장 교수는 “‘할 것 없으면 기술 배워라’는 식의 인식이 미스매치의 원인”이라며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과학·기술인데,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미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함께 계주 경기하듯 진로적성교육의 시너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술·제조업 분야의 선진국인 독일은 어릴 때부터 진로교육을 중시한다. 보통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교사가 학생의 적성을 파악해 인문계(김나지움)와 실업계(레알슐레) 진학 중 하나를 추천하고, 학부모들도 이를 대부분 받아들인다. 실업계에선 체계적인 직업교육(Ausbildung·아우스빌둥)을 받는데, 학교 이론교육(30%)과 기업 현장교육(70%)을 병행한다. 이미 진학한 후라도 학생이 원하면 김나지움·레알슐레 간 전학도 가능하다.

2017년부터 한국에서 아우스빌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독상공회의소 김영진 부장은 “한국은 뛰어난 인재와 높은 교육수준을 가졌지만 한쪽에선 실업난이 심각하고 다른 쪽에선 사람을 못 구한다”며 “미스매치는 결국 산업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다”고 했다. “한국 내 독일계 기업들과 아우스빌둥을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주자동차대가 기업과 함께 운영하는 자체 교육 프로그램도 아우스빌둥과 비슷하다. 박장우 취업지원센터장은 “우리 학교의 강점은 기업이 원하는 대로 가르치는 주문식 교육과정”이라며 “2학년 때 학생이 기업을 선택하면 90%는 취업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2학년생 기준 BMW에선 100명을 요청했지만 61명밖에 못 보냈다”며 “학생이 부족해 기업의 구인 수요를 못 맞추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대학과 현장의 괴리 커 

자동차 튜닝 전문 기업인 에스알산업의 박무승 대표는 만성적 구인난에 시달린다. 경찰·소방·구급차 등 특장차 튠업(외관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데 해당 기술을 가진 인력이 부족해서다. 박 대표는 “보통 자동차 기술하면 ‘정비’만 떠올려 대학에서 드레스업이나 튠업을 가르치는 곳이 없다”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산업계의 흐름을 대학교육이 제때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현장과 학교의 미스매치는 산업 전반에서 나타난다.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는 바이오산업의 기술인력 부족률은 6.3%다. 한국바이오협회가 150개 소속사를 조사해보니 인력 부족의 이유로 ‘직무 수행을 위한 자질 부족(18.1%)’, ‘해당 직무 전공자가 공급되지 않아서(17.1%)’ 등을 꼽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도 25∼34세 전공·직업 불일치율은 한국(50%)이 22개 대상 국가 중 1위로 가장 높다.

이수훈(사진) 아주자동차대 총장은 “미스매치 문제의 해법은 특성화”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4년제 일반대학을 나와도 취업하지 못한 청년이 많다”며 “어릴 때부터 다양한 진로로 나아갈 수 있게 적성교육을 강화하고 대학도 전문성을 키워 실용적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생존을 위해 당장 학생 모집이 쉬운 전공을 개설하는 대학이 많은데, 국가 미래를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된다”며 “정부는 국가 전체의 발전 전략을 갖고 대학들이 특성화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력과잉이 미스매치 키운다

학력과잉도 미스매치의 주원인이다. 1980년 23.7%에 불과했던 대학진학률은 올해 72.8%로 3배가 됐다. 그러나 대졸자가 원하는 일자리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 한양대 4학년 최모(26)씨는 “재수를 해서라도 대기업에 가야지, 지방이나 중소기업은 가기 싫다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중소기업이 구인난을 겪는 이유 중 하나다.

블루칼라 업종은 더욱 심각하다. 과거처럼 공고·상고·농고 등으로 진학해 고교 졸업 후 취업하는 청년이 많이 줄었다. 이 때문에 산업 현장에서는 국내 인력이 부족해 외국인이 주력인 경우가 많다. HD현대중공업은 외국인 근로자 1100명이 근무 중인데(7월 기준), 연말까지 700명을 추가할 계획이다.

그렇다고 청년들의 대기업·사무직 선호를 나무랄 수는 없다. 지난 9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체의 월평균 임금은 602만원, 300인 미만은 348만원이었다. 1999~2019년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임금 비중은 71.7%에서 59.4%로 감소했다.(중소기업연구원)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스매치 현상을 해결하기 어렵다”며 “무작정 대학에 진학하고 보자는 맹목적 학벌주의와 여기서 파생된 대학들의 수직적 위계 구조도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글=윤석만 논설위원 그림=윤지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