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땡전 없는 시대와 청와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땡전’ 한 푼 없다. 파산지경에 이르러 호주머니를 들추며 하는 이야기다. 저 ‘땡전’의 족보가 궁금해진다.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당백전 유래설이다. 조선 후기 경제지식 없는 왕실이 무책임하게 발행했다는 화폐의 이름이다.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가 무색한 악화다.

당백전 발행 이유가 경복궁 중건이었다는 건 교과서에 나온다. 임진왜란 때 전소하여 잡초만 무성했던 그 궁궐이다. 과거 시험장으로 가끔 쓰였다고 실록에는 쓰여 있다. 경복궁 중건의 목적은 왕권 확립이었다고 또 교과서는 설명한다. 왕실 권위가 한순간에 추락할 리 없었으니 단숨에 회복될 일도 아니었다.

전통과 정통 피해의식의 청와대
기와집 외에는 대안이 없던 시대
경복궁보다 더 오래 쓴 문화유산
관광지보다 민주주의 체험장이길

경복궁 중건 30년도 되지 않았을 때 당황스러운 사건이 벌어졌다. 국가재정을 거덜내며 지은 왕궁을 임금이 버렸다. 사용 기간으로 보면 재건축 요구 무성한 요즘의 아파트보다 짧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이 궁궐로 돌아오지 않았고 제국의 간판을 달아 권위를 열망했다. 그 뒤 조선총독부는 임금 떠난 궁궐에 자신들의 정부 청사를 지었다. 우리는 역사 모욕이라 분개하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주인 없는 공간 재활용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조선과 다른 국가다. 그런데 그 대한민국은 경복궁 원형을 복원하겠다고 나선 지 오래다. 도로 선형 바꿔가며 일제 강점기에 사라진 월대도 복원했다. 경복궁 인근의 공간은 역사 정체성 상징이므로 복원 주장에 동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우리가 우리의 기행에는 관대하다는 것이다. 복원한다는 경복궁 동편 경내는 널찍하게 주차장으로 쓰이는 중이다. 서편 경내에는 정체불명 건축양식의 국립고궁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 시대에 또 궁이 버려졌다. 이번 궁은 왕궁(royal palace)이 아니고 대통령궁(presidential palace)이다. 청와대라고 불렀다. 문제 많은 위치의 이상한 배치 건물이라고 지탄의 대상이었다. 문제들에는 대개 동의했으나 해결 변수가 복잡했다. 얽히고 복잡한 문제는 단칼에 풀어야 한다. 쾌도난마. 이 사안도 그렇게 결론이 났다. 대통령은 용산으로 떠났고 건물은 남았다.

‘땡전’ 시대가 있었다. 9시 시보가 땡하고 울리면 이어지는 뉴스의 첫 문장이 항상 “전두환 대통령은…”이었기에 붙은 이름이다. 직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서울올림픽은 남쪽이 북쪽과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판정을 얻은 세계적 이벤트였다. 자존심이 세워졌다. 대통령궁은 당연히 국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건물이다. 그래서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선명한 건물을 올림픽 개최국의 대통령궁으로 계속 사용할 수는 없었다.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어도 선거에 이르는 과정에 ‘땡전’이 걸쳐 있어서 특별히 가시적 표현이 중요했을 것이다. 콘크리트 기와집에 대한 건축계의 반성이 많던 시대였지만 여기서는 별 대안도 없었다. 전통 양식이 아닌 어떤 모양의 건물을 가져다 놔도 비난이 쏟아질 것은 자명했다. 전통은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고 그래서 건축양식은 기와집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내부다. 피해의식이 여전하던 시기였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부심이 과장되어 표현되어야 했다. 청와대 건물에서 선택한 방식은 거대함으로 권위를, 목재로 전통을, 금박으로 성취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사 근정전을 콘크리트로 불러내서 목재 껍질 두른 뒤, 예식장 샹들리에와 시골 호텔 금박 문고리를 달면 청와대가 딱 나온다. 그 결과 과연 건축은 한 시대의 증언이라는 사실의 증언자가 바로 청와대다.

세상이 변해 한국은 이제 선진국을 자임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 대한민국의 안목과 민주주의 정체성은 더이상 그 공간의 구조와 형식에 맞지 않는다. 그런 건물에서 최고 안목의 정상급 외국 손님을 맞는다면 그건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일 사안이었다. 그래서 청와대는 또 버려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맥락이 다르다. 권위를 향한 열망이 아니고 권위로부터 탈출이라는 명분은 대한민국이 100년 전의 대한제국과 다른 국가라는 의미였다. 이제는 열강이 노리는 먹이가 아니라 열강 누구도 어수룩하게 보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다. 청와대는 그 성장을 목격해 온 핵심 건물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 나라님이 아니라 선거로 선출된 시민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선출되었던 대통령까지 탄핵한 국민의 덕에 군사 쿠데타는 꿈도 못 꾸는 국가가 되었다. 청와대는 경복궁보다 오래 사용된 구조물이다. 건물이 촌스러워도 그게 우리의 과거였다. 그 청와대가 관광객의 탐방지가 아니고 시민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확인하는 일상의 성지가 된다면 그건 경복궁을 넘는 가치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세대를 보면 그들이 만들 미래가 밝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일이다. 지난 5년 이 자리에서 독자를 만날 영광의 기회를 얻었던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