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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지금이 군사정권 때인가? 시대 거스르는 국가대표 ‘해병대 훈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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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지난 2019년 9월 펜싱 국가대표 오상욱(위)이 올림픽 대비 체력·정신력 강화훈련의 일환으로 해병대 공수훈련을 받는 모습. 오상욱은 당시 남자 사브르 세계 랭킹 1위였다. [연합뉴스]

지난 2019년 9월 펜싱 국가대표 오상욱(위)이 올림픽 대비 체력·정신력 강화훈련의 일환으로 해병대 공수훈련을 받는 모습. 오상욱은 당시 남자 사브르 세계 랭킹 1위였다. [연합뉴스]

대한체육회가 6일 보도자료를 냈다. 이기흥 회장, 장재근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장 등 체육회 임원과 국가대표 선수 400명이 오는 18일부터 2박3일 동안 해병대에 입소해 극기 훈련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체육회는 “정신력을 강화하고 2024 파리올림픽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라고 입소 취지를 설명했다. 종목 단체에 보낸 공문에는 국가대표 선수 및 임직원(회장·부회장·전무이사·사무처장 등) 2명 이상의 참가를 요청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기간인 지난 10월 이미 선수들의 해병대 입소는 예고됐다. 대한펜싱협회 최신원 회장이 선수들을 이끌고 해병대 동계 훈련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기흥 회장은 해병대 극기 훈련을 국가대표 전 종목으로 확대하자고 했고, 결국 실행으로 옮겼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가 위기에 빠진 건 사실이다.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에서 종합 16위(금 6, 은 4, 동10)에 그쳐, 5개 대회 연속 종합 10위에 오른다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이어 중국·일본에 뒤진 3위에 그쳤다. 혁신과 변화가 필요한 건 분명하다.

극기 훈련이 정답일까.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 등 현장의 여론은 싸늘하다. 국가대표 선수 A는 “해병대 훈련이 육체적으로 그렇게 힘들진 않을 거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 부상 위험을 안고 굳이 이런 훈련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2박3일 극기 훈련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국가대표 출신의 실업팀 감독 B는 “정신력 강화 훈련의 취지는 인정한다. 그러나 체육회가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건 옳지 않다. 각 종목 별로 훈련 계획을 세웠을텐데 일방적인 지시로 참가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도자나 선수가 스스로 참여하게 권유해야지, 강제로 참가하게 하는 건 효과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구시대’적인 체육 행정이 처음은 아니다. 장재근 선수촌장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한 달 앞둔 지난 9월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선수촌 내 와이파이(wifi)를 끊었다. 국가대표 선수 C는 “와이파이를 끊는다고 스마트폰을 안 쓰겠느냐”며 “꼭 성적이 안 좋으면 ‘정신력 타령’을 한다. 그보다는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체계적인 훈련이나 지원이 우선”이라고 했다. 이날 체육회가 보낸 공문에는 ‘가치있는 스포츠, 같이 하는 인권 존중’ 이란 문구가 씌어져 있었다. 수직적·강압적인 훈련 방식을 종용하는 체육회가 ‘인권’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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