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곬 철도인생 과로로 순직/타계한 철도청 김수곤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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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수송대책 지휘중 격무로 쓰러져/2천만원 전세… 부인은 공장 다녀
2대째 철도와 인연을 맺고 31년간 철도인생을 살아온 서울역 김수곤 여객과장이 연말연시 수송대책을 진두지휘하다 15일 과로로 순직했다. 51세.
김과장은 11일 오후3시 철도청에서 열린 수송대책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도중 복도에서 쓰러진 후 중대부속 병원으로 후송돼 수술을 받았으나 나흘만인 15일 오후2시 운명했다.
김과장은 의식을 잃기 직전 앰뷸런스 속에서도 『해야할 일이 많으니 병원으로 보내지 말고 역으로 보내달라』며 수송대책을 걱정할 만큼 철저한 철도인이었다.
김과장은 올해초 구정 수송이라는 큰 파도를 넘긴 뒤 6월8일부터 7월3일까지 예매 전산용량을 늘리기 위해 수작업이 불가피하게 되자 하루도 집에 못 들어가고 철야 진두지휘를 했다.
한시름을 넘기자 7월15일부터 1개월간의 휴가철 특별수송이 시작됐고 9월5일부터는 1개월여의 추석수송이 이어졌다.
남들이 놀 때일수록 더욱 바빴고 휴일도 명절도 없었다. 매일 오전7시에 출근해 밤늦게 귀가할 때까지 역사 2층의 그의 사무실은 항상 비어 있었다.
매표·개표·전화예약 직원 1백13명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며 업무를 독려했기 때문이었다.
철도회원카드 소지자들이 전화폭주로 예매에 어려움을 겪어 집단 항의와 시위를 해오는 일도 그가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할 벅찬 일과였다.
김과장은 서울 신길동 244 단독주택 2층의 2천만원짜리 방 2칸 전세집에서 병석의 노부모와 봉제공장에 다니는 부인 장명분씨(43),봉선(20·감신대 2)·봉규(18·고 3)·봉재(15·고 1) 3형제 등 여섯식구가 살아왔다.
일제때부터 60년대 중반까지 선로보수원으로 외길 철도인생을 살았던 부친 김영준씨(76)는 오래전부터 기억력을 상실,아들의 죽음조차 알지 못해 주위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59년 국립 교통고를 졸업,철도청에 투신한 김과장은 전국의 역을 옮겨다니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음지인생을 타고난 성실성과 책임감으로 보람있게 살아왔다.
81년 교통부장관 표창,90년 철도청장 표창만이 31년 철도인생을 위로한 기념이었다.
부인 장씨는 『그분은 평소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여자가 남자의 직장일을 알 필요가 없다며 의연해 하셨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그를 아는 모든 선·후배 철도인들은 『어떤 힘든 일도 소리없이 앞장서 처리했으며 단 한차례도 부하들에게 화를 낸 적이 없는 분』이라며 『술·담배조차 입에 대지 않고 일에만 몰두했었다』고 가슴아파했다. 한편 철도청은 고인에게 일계급 특진을 추서하고 훈장을 상신키로 했으며 장례는 17일 서울지방 철도청장으로 치렀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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