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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은행, 수익성 美절반…"관치금융이 '우물 안 뱅크'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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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최근 ‘이자 장사‘ 비판과 함께 ‘상생 금융‘ 압박이 거세지고 있지만 국내 은행의 수익성이 해외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금융감독원·전국은행연합회 등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순이자마진(NIM· 순수익을 자산 총액으로 나눈 수치)은 올해 3분기 평균 1.63%로, 1분기(1.68%) 2분기(1.67%)에 비해 낮아졌다. 2013년 이전까지 2% 이상을 유지하다 최근 10년간 전반적으로 하향 추세다. 2020년 기준 미국 은행들의 NIM은 3.08% , 중국은 2.25%로 같은 기간 한국(1.72%)에 비해 0.5~1.5%포인트 정도 높다. 한국 은행의 수익성이 그만큼 낮다는 의미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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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서 수익을 냈는지 보여주는 총자산이익률(ROA)도 마찬가지다. 국내 은행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0.4%를 기록했다. 미국(1.5%)·캐나다(1.1%)·싱가포르(0.9%) 등을 한참 밑돈다. 국내 은행의 규모를 감안하면 ‘돈 잔치’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돈을 쓸어 담은 건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은행권에 '앉아서 돈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는 이자이익 중심의 사업 구조 때문이다. 올해 1~3분기 기준으로 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농협 등 5대 은행의 이자이익은 총 30조9366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총이익에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91.8%에 달한다. 지난해 말 글로벌 100대 은행의 이자이익 비중이 60%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1.5배 이상이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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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은행은 ‘이자 장사’ 주홍글씨를 벗기 위해 비이자이익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일본의 경우 데이터나 인력소개 사업, 마케팅과 광고 사업에도 은행이 진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싱가포르의 DBS와 UOB금융그룹도 각각 주택과 자동차, 여행관련 사업을 운영하는 등 비금융 사업 진출이 활발하다. 국내 금융권도 자회사 투자범위 확대, 부수업무 범위 규제 완화 등을 정부에 건의했지만 금융사고 우려 등을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투자일임업이나 방카슈랑스 같은 자산관리서비스를 할 수 없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사실 비이자이익을 높이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수수료 장사’다. 예컨대 미국 은행들은 예금 계좌 유지 명목으로 월평균 13달러의 수수료를 떼어간다. 예금액이 ‘최소 잔액’에 못 미치면 월 25달러 안팎의 비용을 청구한다.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미국 4대 은행(JP모건ㆍ뱅크오브아메리카ㆍ씨티은행ㆍ웰스파고)이 거둔 예금계좌 관련 수수료는 15조 3450억원, 총수익의 4.2%를 차지했다. KB경영연구소는 국내은행이 미국 주요은행 수준의 예금계좌 관련 서비스료(총예수금의 0.27% 수준)를 받으면 비이자이익 비중이 약 9.3%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서울 시내 시중은행 ATM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는 모습. 뉴스1

서울 시내 시중은행 ATM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는 모습. 뉴스1

미국 4대 은행은 금고 대여와 유가증권 보관,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이용 명목으로 거둔 수수료 비중도 11.5%에 달한다. 반면 국내 4대 은행의 이익에서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2% 수준이다. 온라인(모바일) 이체 수수료 0원은 ‘뉴노멀’이 됐고, 일부 은행은 금융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각종 수수료를 면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 관계자는 "당국에선 비이자이익을 늘리라고 압박하지만, 이는 결국 각종 수수료 증대, 저신용 대출 축소 등 소비자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상생금융안 마련을 준비 중인 은행은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 저하도 걱정이다. 은행주의 코스피 대비 초과하락세는 6주째 이어지고 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은행권이 고금리로 대출받은 소상공인ㆍ자영업자의 이자를 일부 돌려주는 캐시백을 충당금 또는 영업비용 형태로 선인식할 경우 4분기 실적은 컨센서스를 대폭 하회할 공산이 크다”며 “이는 배당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해외 기업설명회(IR)를 통해 은행 투자를 독려하기도 민망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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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금융’이 우물 안 개구리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금융 전문지 ‘더 뱅커’가 건전성 지표인 자기자본 기준으로 집계하는 ‘글로벌 1000대 은행’ 순위에서 국내 1위인 KB금융은 60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실 ‘우물 안 뱅크’에 불과하다. 시장의 합리성보다 정부 정책이 우선시되다 보니 금융 시스템도 선진화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횡재세 등으로 압박하면 은행들이 이익을 극대화할 유인이 사라지고, 자영업자ㆍ소상공인에 대한 저금리 대출을 늘리다 보면 부실은 커질 것"이라며 "결국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내고 관치금융이 고착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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