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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요소수 대란 되풀이될까봐”…중국 통관보류에 사재기 조짐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 당국이 한국으로의 산업용 요소 통관을 보류한 가운데 지난 4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인근 도로변에서 대형화물차 운전기사가 요소수를 구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당국이 한국으로의 산업용 요소 통관을 보류한 가운데 지난 4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인근 도로변에서 대형화물차 운전기사가 요소수를 구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물운송업체를 운영하는 황모(46)씨는 최근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다. ‘요소수 대란’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황씨 회사는 전국 공장에서 물품을 받아 컨테이너에 넣은 뒤 화물차에 실어 인천 신항으로 운반한다. 차량 40여 대로 한 달에 18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분) 물량을 옮기는데, 화물차 대부분이 디젤 차량이라 신항 인근 주유소에서 매번 요소수 40~50리터를 사곤 했다.

그런데 최근 중국 정부가 해외 요소 수출 통관 보류 결정을 내리면서 수급에 문제가 생겼다. 벌써부터 일부 요소수 유통업체들이 공급량을 조절하기 시작한 것이다. 황씨는 “2021년 가을 중국 정부가 요소 수출을 사실상 막으면서 벌어진 ‘요소수 대란’ 공포가 업계에 다시 번지고 있다. 운송업체 대표 대부분 전전긍긍하며 구매처에 연락을 돌리거나, 대량 구매가 어려워 조금씩 사재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2년 전 대란 되풀이 우려”

중국 해관총서(한국의 관세청)의 요소 수출 통관 보류로 인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요소수 대란이 반복될 가능성은 작다는 정부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지난 2021년 한차례 악몽을 겪은 이들 사이에선 “사태가 장기화할 수도 있다(요소수 유통업체 종사자)”는 우려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5일 롯데정밀화학의 요소수 제품을 판매하는 홈페이지엔 “일시적인 주문 폭증으로 택배 서비스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긴급 배송 지연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롯데정밀화학은 국내 요소수 시장의 50%을 점유하고 있다. 사진 유록스 홈페이지 캡처

5일 롯데정밀화학의 요소수 제품을 판매하는 홈페이지엔 “일시적인 주문 폭증으로 택배 서비스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긴급 배송 지연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롯데정밀화학은 국내 요소수 시장의 50%을 점유하고 있다. 사진 유록스 홈페이지 캡처

걱정이 가장 큰 건 황씨 회사와 같은 화물운송업체다. 화물차 대부분은 디젤 차량이며, 요소수는 디젤 차량에서 나오는 배출가스의 일종인 질소산화물을 줄이는 촉매제다. 국내 디젤차는 질소산화물을 많이 배출하다 보니 100㎞를 달릴 때마다 요소수 1리터를 보충해야 한다. 화성에서 화물운송업체를 운영하는 박모(49)씨는 “뉴스가 나온 뒤 10리터에 6000원이었던 요소수 가격이 2만원으로 뛰었다. 품절, 배송 불가 알림이 뜨기도 한다. 공급업체가 연락을 받지 않는 등 대량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5일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서울역점에 요소수를 비치한 선반 1칸이 모두 비어있다. 다만 마트 직원은 ″아직까지 사재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5일 롯데마트 제타플렉스 서울역점에 요소수를 비치한 선반 1칸이 모두 비어있다. 다만 마트 직원은 ″아직까지 사재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실제 5일 롯데정밀화학의 요소수 판매 사이트에 접속하면 ‘일시적인 주문 폭증으로 택배 서비스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긴급 배송 지연 공지가 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내 요소수 매대 역시 한 칸이 통째로 비어 있었다. 롯데정밀화학 관계자는 “개인 소비자 주문이 폭증해 택배가 지연되고 있는 건 사실이나 대리점 등 도매 주문은 정상적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화물 업계의 불안을 잠재우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화성에서 레미콘 차량을 운전하는 김모(38)씨는 “공장에 요소수를 넣어두는 1000리터짜리 탱크가 있다. 어제 거래업체에 연락해 요소수를 최대한 공수해 미리 탱크를 채워두기로 했다. 최대한 요소수를 구할 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승용차 운전자들도 비축 움직임

개인 운전자들 역시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디젤 승용차는 보통 요소수 10리터를 넣으면 적게는 5000~7000㎞, 길게는 2만㎞를 달릴 수 있다. 디젤 승용차를 모는 직장인 김모(42)씨는 평소 5개월에 한 번 정도 인근 주유소를 찾아 요소수를 넣었지만, 지난 주말 뉴스를 보고 곧장 인터넷 사이트에를 살피며 요소수 판매가격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요소수 품귀 조짐이 보이자마자 인터넷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김씨는 “비싸지 않을 때 요소수를 미리 쟁여 두려고 한다”며 “다행히 소량 구매는 아직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2019년 디젤 차량을 산 김모(39)씨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김씨는 “2021년에 만 원대였던 요소수 5리터 가격이 10만원까지 치솟았는데 그마저 구하기도 어려웠다. 요소수를 구하기 위해 일부러 AS센터를 찾아서 차량 정비를 했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일부 AS센터에선 차량 정비를 맡기면 요소수를 채워줬다고 한다. 김씨는 “그때처럼 터무니없는 돈을 쓰고 싶지 않다.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으니 미리 사둘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와 운전자들은 “공급 차질이나 사재기 경쟁이 본격화되기 전에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8년간 요소수 유통업에 종사한 A씨는 “보통 매달 초 요소수 8만 리터가량이 들어오는데 지난주부터 물건이 들어오지 않아 현재는 재고가 3만 리터밖에 없다”며 “지난 9월과 달리 이번 사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신속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4일 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합동 요소 공급망 대응 회의’를 열고 ▶조달청을 통한 요소 공공비축 확대 ▶베트남 등 대체 수입국에서 추가 물량 확보 ▶수입선 다변화 ▶중국 정부와 협의를 통한 요소 공급망 안정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차량용 요소수 시장도 면밀히 점검해 생산·유통 체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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