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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김정은과 시진핑, 그리고 푸틴

중앙일보

입력

금문교 앞에서 기념촬영한 젊은 시절 시진핑. 연합뉴스, 바이두 캡처

금문교 앞에서 기념촬영한 젊은 시절 시진핑. 연합뉴스, 바이두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더 밀착하나?

시진핑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군사 대화는 재개했지만, 대만 문제‧첨단기술 수출통제 등은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데 그쳤다. 서로 경쟁이 충돌로 가는 것은 일단 피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중국 SNS에 시진핑이 38년 전 첫 방미 당시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떠돌았다. 미국에 보내는 화해 제스처로 보인다. 시진핑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진핑은 대미 관계에서 배울 선배가 있다. 바로 덩샤오핑이다. 그의 배짱과 통찰력이 시진핑에게 필요해 보인다. 덩샤오핑은 1979년 1월 28일~2월 5일 미국을 방문했다. 미‧중 수교 이후 방문이자 중국 최고지도자의 첫 방미였다. 덩샤오핑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일본에 정통한 랴오청즈처럼 미국에 관해 자문해 줄 수 있는 고위급 인사가 없었다. 미국에서 수년간 살았던 황화 외교부장과 리선즈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장 정도였다. 장시간에 걸친 비행 내내 덩샤오핑은 그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알려졌다.

덩샤오핑-카터 정상회담의 화제는 단연 대만 문제였다. 미‧중 수교 이전에도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수출이 문제였지만, 덩샤오핑이 받아들이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덩샤오핑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덩샤오핑은 “만약 미국과 일본이 대만에 베이징과의 협상을 설득하고 미국이 대만에 무기 수출을 축소한다면 이는 세계 평화를 위한 공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카터에게 베이징은 오직 2가지 상황, 첫째 대만이 장기간 베이징과의 협상을 거절할 경우 둘째 소련이 대만에 관련될 때만 대만에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덩샤오핑은 카터에게 할 말을 다 하고 카터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체면과 명분을 살렸다.

덩샤오핑은 카터를 만나기 전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보좌관을 먼저 만났다. 두 사람은 구면이다. 1978년 5월 베이징에서 만났다. 그들은 첫 만남에서 서로 호감이 갔다. 브레진스키는 당시 “덩샤오핑이 금세 나를 매료시켰다. 나는 그의 목적의식과 사명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그때 덩샤오핑은 브레진스키에게 미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넌지시 알렸고, 브레진스키는 워싱턴을 방문하면 자신의 집으로 만찬에 초대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약속이 이뤄진 것이다.

덩샤오핑이 대만 문제가 중국이 원하는 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미‧중 수교에 응했던 것은 브레진스키의 조언이 컸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정치는 아주 짧은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며 “만약 신속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모른다”고 얘기했다. 닉슨 방중 이후 미‧중 수교는 지지부진했다. 그런데 이제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브레진스키가 그것을 살리라고 조언했고 덩샤오핑이 그것을 잡은 것이다. 미국이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지속하는 상황에서 덩샤오핑 자신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

그 과정을 잘 아는 브레진스키는 “카터가 중국과 수교하면서 미국 내 친대만 로비스트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덩샤오핑은 “나도 그렇다. 대만의 1,700만 중국인들이 반대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시진핑이 이런 덩샤오핑의 배짱과 통찰력을 배웠다면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한편 김정은은 미‧중 정상회담을 어떻게 지켜봤을까? 시진핑이 미국과 신냉전을 벌일 줄 알았는데 샌프란시스코에 간 것이다. 김정은도 2018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손을 잡았으니 피장파장이다. 시진핑은 2018년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죽했으면 김정은이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거절했던 북‧중 정상회담을 했을까. 아마 지금 김정은이 그때 시진핑의 마음과 비슷할 듯하다. 북한이나 중국이나 국익은 어쩔 수 없이 미국에 달려 있다. 북‧중 동맹이 아무리 견고한들 과거와 달리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그럴 수 있냐”고 원망하는 시기는 지났다. 닉슨 쇼크(1972년), 한중 수교(1992년)를 거치면서 혈맹보다 국익이 앞선다는 것은 이미 말할 필요가 없어졌다. 시진핑이 바이든을 만나 국익을 논할 때 김정은은 김정은대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밀월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 15일 평양에서 제10차 북·러 경제공동위원회의 부문별 회담을 열고 의정서를 체결했다. 식량 수출과 지질 조사, 문화 교류 등을 논의했다고 밝혀졌지만,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공동위원회는 지난 9월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서 열렸다.

공동위원회의 양측 의장은 윤정호 북한 대외경제상과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이 맡고 있다. 코즐로프는 김정은이 지난 9월 러시아 연해주 하산역에 도착했을 때 영접하러 나온 사람이다. 그는 천연자연부 장관을 맡기 이전에는 극동과 북극 개발을 담당하는 극동‧북극개발부 장관을 역임했다.

북·러 경제공동위원회는 1996년부터 2019년까지 모두 9차례 평양-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등을 돌아가면서 열렸다. 공동위원회는 산하에 임업‧석탄‧교통‧과학기술‧경공업‧무역‧금융‧채무 등 8대 소위원회를 두고 있다. 제9차 북·러 경제공동위원회가 2019년 3월 모스크바에서 열렸고, 제10차 행사를 2020년 평양에서 개최하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연기했다가 이번에 열린 것이다.

코즐로프는 환영 연회에서 “북한이 지역 및 국제 문제들에서 러시아에 전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은 지금 북·중 보다 북·러에 국익이 더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와 함께 왕따가 되더라도 마이웨이를 가고 있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이 조만간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일본 방위성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기술을 지원받아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한‧일의 예상대로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해 성공하면 동북아 안보에 빨간불이 켜진다. 북·러 밀착이 동북아 안보에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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