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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그대, 어떻게 살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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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황주리 화가

황주리 화가

기분이 막막해지는 날이 있다. 어른이 되면 이런 기분은 없어질 줄 알았다. 세상의 논과 밭의 풍경이 놀이터였다는 내 친한 친구가 어린 시절이 늘 행복했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늘 신기한 생각이 든다. 앞이 확 트인 논밭 풍경이나 바다를 마당으로 둔 아이들은 막다른 골목을 놀이터로 둔 아이와 행복감이 다를 것도 같다.

광화문 한복판의 골목길에서 인생을 배우기 시작한 나는 그 깊은 골목의 막막함을 먼저 배웠다. 집을 나서면 골목길에 다리가 성하지 않은 아버지와 어린 딸이 동냥하고 있는 풍경, 다운 증후군을 앓는 사내아이가 웅얼거리며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던 뒷모습, 길게 느껴지던 골목길을 빠져나와 큰길로 한참 걸어가면 의수와 의족을 파는 가게, 뱀들이 얽히고설켜 커다란 유리병 안에서 꾸물대던 뱀사탕 집, 이렇게 우울한 풍경이 내 어린 마음에 막막함을 심어주었던 걸까. 아직도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막막해질 때가 가끔 있다.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복수극
주변 사람 험담 즐기는 사람들
세상 밝히는 착한 마음 그리워

그림=황주리

그림=황주리

누군가 막막할 때는 쉬운 일부터 하라 한다. 안 그래도 막막한 날에는 나는 늘 영화를 본다. 딱 내 마음 같은 제목에 이끌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았다. 그 질문은 지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는 영원한 질문이다. 며칠 뒤 약속 시간에 좀 일찍 도착해서 책방에 들어가 책 구경을 하다가 같은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책을 어린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선물 받았다 한다.

책을 펼치니 저자인 요시노 겐자브로는 20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편집인이라고 쓰여 있다. 책 내용은 영화와 전혀 달랐다. 군국주의와 히틀러와 파시즘을 우상화하는 나쁜 시대의 영향으로부터 일본 청소년들의 정신을 구하자는 교육적 취지와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 책은 1937년에 출판되어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된 이후 금서가 되기도 했다.

소년들의 우정에 관한 내용을 읽다가 문득 내 어린 시절의 일화가 떠올랐다. 어릴 적 동네에 살던 짓궂은 사내아이가 나만 보면 발을 걸어 넘어뜨리기 일쑤였다. 어느 날 오후 학교 갔다 돌아오는데 다른 아이들과 싸우다가 넘어진 그 애가 울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누워 있는 게 아닌가. 때는 이때다 싶어 나는 그 애의 눈에다 모래를 한 줌 가져다 뿌렸다.

눈도 못 뜨고 더 세차게 울어대는 꼴을 보고 집에 돌아와 기세등등하게 어머니께 자랑하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애 어머니가 아버지도 없이 힘든 일 하며 근근이 둘이 살아가는데, 네가 그런 짓을 하다니.”

나의 개인적인 부끄러운 과잉 보복의 추억이다. 세상의 크고 작은 전쟁도 어쩌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모른다. 분노의 끝없는 윤회가 지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한 축제라고는 없던 1980년대, 최루탄 연기로 눈물을 흘리며 학교 앞의 어둡고 조용한 찻집으로 숨어들던 시절, 거의 매일 만나던 친구가 있었다. 같이 듣던 레너드 코헨과 멜라니 사프카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연하다. 나는 말이 없는 믿음직한 그녀에게 내 마음을 속속들이 털어놓곤 했다.

그리고 그 고해의 사소한 내용은 부풀려져, 세월이 많이 흐른 뒤 그녀의 사적인 축제에서 떠들어댈 심심풀이 먹잇감이 된다. 다른 이들에게서 전해 들은, 언제부턴가 완전히 멀어진 그 친구의 험담 중 팔십 프로는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떠드는 악의적인 ‘뻥’이다. 만일 내가 복수를 계획한다면 과잉 보복이 될 것이다. 남에 대한 지나친 험담을 취미로 둔 사람은 대개 그 험담의 주인공보다 결함이 훨씬 많기 일쑤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친구여, 몇 해의 크리스마스를 함께 지낸 우리 고독했던 젊음의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문득 1990년대 뉴욕 맨해튼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린다. 눈부시게 화려한 백화점 크리스마스 장식이 그때는 좋은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멀리서만 보아도 좋다. 반짝이는 것은 다 좋다. 반짝이는 트리의 알록달록한 전구, 어쩌다 만나는 선하게 반짝이는 마음도 너무 좋다. 미운 마음을 겪어봐서 아름다운 마음을 알아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젊을 때 못 가본 설레는 크리스마스 축제에 가려면 오래 줄을 서야 한다. 엄두가 안 나서 가지 못하는 몸 대신 마음으로라도 줄을 선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젊음은 늘 불행할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녹녹하지 않고, 아무리 끝까지 살아보아도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 같은 작은 행복이 없다면, 삶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대, 진짜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늘 내게 되돌아온다.

황주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