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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미옥의 삶의 향기

우리들의 불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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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가끔 여행길에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같은 밤을 맞을 때가 있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경우다. 저녁을 먹은 후엔 호의를 가진 이들끼리 서로 초대에 응했다. 어느 여행에서 시인과 나, 교수 부부를 자기 방으로 초대한 이는 스님이었다. 그날 대화의 주제가 ‘혹(惑’)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녹차를 바랑에서 꺼내 우려주던 스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불가에 입적해서 용맹정진한 인물이었다. 일취월장 공부도 깊어 젊은 나이에 일찍 오를 수 있는 자리에 올랐다. 스님이 인도 불교 성지 여행을 떠난 것은 40대 중반이었다. 순례 중에 만난 영국인 부부와 포카라에서 함께 트레킹을 하기로 약속했다.

40대를 흔드는 유혹·미혹·매혹
사랑과 헤어짐, 그 선택과 결과
공자 시대 불혹은 지금의 노년?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카트만두에서 포카라행 버스를 탔을 때였다. 버스 기사가 돌아보며 싱긋 웃었을 뿐이었는데 고통이 시작되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늘 그리워했던 것 같은 얼굴이 거기 있었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눈을 그에게서 돌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버스가 종점에 도착하자 기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내일 제가 머무는 숙소에 와서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남자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숙소로 돌아간 그녀에게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평생 한 공부가 하루아침에 허사가 될 것 같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그녀 앞에 남자가 나타났다. 그때 그녀는 지금처럼 차를 우려 그를 대접했다. 차를 다 마시고 문을 열어 그를 내보낼 때 돈을 건넸으나 남자는 한사코 돈을 받지 않았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당신을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새벽 그녀는 버스 종점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가 첫차를 운행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남자가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보았고 그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 지켜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오래전부터 기다렸던 것 같은 남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카트만두로 다시 돌아왔을 때 포카라의 숙소에 물건을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텔에 전화했더니 사람을 시켜 보내겠다고 해서 기다렸다. 물건을 들고 온 사람은 버스 기사였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합장했다. 마지막 만남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우연이 겹치는 필연의 상관관계에 대해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스님의 눈빛 때문이었다. 스님의 이야기는 얼마 전 새로 번역된 괴테의 『선택적 친화력』을 떠올리게 했다. 중년의 부부가 사는 저택에 두 명의 남녀가 등장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내용이었다. 그중 유일하게 유혹에서 벗어나는 인물이 부인 ‘샤를로테’였다.

부부가 각자 사랑에 빠지지만, 이성적인 아내는 혼자 울면서 사랑하는 남자를 냉정하게 떠나보낸다. 그녀는 불륜을 규제하는 사회제도가 그녀에게 줄 손해를 냉철하게 계산했다. 남편은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두고 가출하지만, 그녀는 가정과 재산을 지킨다. 본능적인 욕망과 맹목적인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남자는 ‘인간적’이고 이혼을 거부해서 남자의 사랑을 불륜으로 만드는 여자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선택적 친화력’은 화학 용어다. 두 물질이 만나 상호작용하여 선택에 따라 결합하는 현상을 말한다. 괴테는 문학가이면서 동시에 과학자였다. 그런 그가 이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들어 있지 않다.”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모든 순간을 살았다는 고백이었다.

괴테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 숱한 연애로 유명했는데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들을 작품에 등장시켰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를로테는 괴테 친구의 아내로 『선택적 친화력』에서도 동명으로 출현한다. 어쩌면 작품 속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모두를 위해 떠나는 매력적인 건축가는 괴테의 분신이었는지 모르겠다.

스님처럼 혹은 샤를로테처럼 모든 이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모범적인 삶을 살던 이들도 중년에 들어서 난관을 만났다. 빼앗고 싶은 유혹, 정신 못 차리는 미혹, 모든 것을 잊게 하는 현혹과 강렬한 소유욕의 매혹, 영혼을 사로잡는 고혹까지 수많은 혹(惑)이 40대가 넘어서 출몰했다. 모든 욕망은 물질에서 사람까지 이르렀다.

어떤 친구는 자신의 인생에 어떤 불법적인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정색을 했다. 일어날 뻔했던, 일어날 수도 있었던 모든 일을 무사히 지나가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라고. 우리는 결합하고 분리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존재가 아닌가. 글을 쓰다 말고 스님에게 전화했다.

그 버스 기사분 성함이 기억나시나요? “아니, 기억 안 나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란 말씀으로 새겨들었다. 유혹은 머무르지 않고 스쳐 간다. 공자가 살던 시대의 불혹은 지금의 노년이었을 것이다.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