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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달러 vs 143억 달러…바이든의 ‘친이스라엘’ 의심받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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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형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미국 의회 보좌진 사이에서 요즘 “최악의 업무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철검’ 작전으로 이름 붙여진 이스라엘의 피의 보복이 시작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사석에서 만난 미 민주당 의원실 한 보좌관은 “미국의 친이스라엘 편향을 비판하는 항의 전화,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는 전화가 매일 수십 통씩 몰려온다. 업무를 못 볼 정도”라고 했다. 수화기 너머 아이 울음소리를 들려주며 날카로운 반전 메시지를 던지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코너에 몰리고 있다. 이스라엘을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껴안은 게 흔들림 없는 지지와 지상전 개시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로 해석되면서 미국 내 반이스라엘 시위는 갈수록 격화되는 양상이다. 백악관 앞에서 ‘전쟁 중단’을 외치는 시위대는 계속 불어났고, 지난 1일 애틀랜타에 있는 이스라엘 영사관 앞에선 팔레스타인 국기를 든 한 사람이 제 몸을 스스로 불태워 충격을 줬다. 미국 내 아랍계·무슬림 유권자들이 ‘바이든 낙선 운동’을 선언하고 나서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백악관 앞에서 가자 지구의 ‘전쟁 중단’을 외치는 자말 보우먼 미국 하원의원(왼쪽). [AP=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백악관 앞에서 가자 지구의 ‘전쟁 중단’을 외치는 자말 보우먼 미국 하원의원(왼쪽). [AP=연합뉴스]

언제나 이스라엘 편이라는 미국의 지지 명분은 하나다. ‘방위권 존중’이다.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으로 총 1200여 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런 피해를 본 이스라엘의 자기보호권은 정당하다는 논리다.

문제는 불균형에 있다. 철검 작전 이후 공습과 지상전 본격화로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가 1만52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테러단체로 낙인찍힌 하마스의 소행과 이스라엘의 반격에 비례성의 잣대를 들이대기는 어렵겠지만 어찌 됐든 팔레스타인 희생자 규모는 이스라엘의 10배를 훌쩍 넘는다.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각각 보내려는 지원 예산 규모를 놓고 봐도 차이는 두드러진다. 바이든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1억 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그런데 그가 의회 승인을 요청한 대내외 안보 패키지 예산 총 1050억 달러 중 이스라엘 지원 예산은 143억 달러다. “팔레스타인 지원 자금의 100배가 넘는 돈을 이스라엘에 주려 한다. 바이든을 믿을 수 없다”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의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유럽과 중동에서 터진 ‘두 개의 전쟁’에 대응하느라 힘을 쏟아 온 바이든 대통령이 갈수록 번지는 민심 이반이라는 또 하나의 전선을 마주하고 있다. 삐끗하다가는 재선 가도에 가장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는 전선이다.